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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리를 찾아서 Oct 05. 2023

종교인은 아니지만 기도는 합니다.

대부분의 탈북민들은 북한에 가족들이 있다. 

직계가족이 전부 한국에 왔다 하더라도 사촌들은 북한에 있다. 

또 그렇지 않더라도 그들의 무덤은 북한에 있다. 


나의 부친은 내가 11살 되던 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내가 16살, 19살 되던 해 돌아가셨다. 



이번 추석 연휴는 참 길게 느껴졌다. 돌아가신 가족의 묘나 납골당에 가는 것은 꼭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나에겐 부러울 따름이다. 

연휴 첫날 저녁 지인들과 늦은 오후부터 술자리를 가졌다. (아 물론 지인들 모두가 남한 출신)

오후부터 술자리를 가지다니...낮술은 부모님도 못 알아본다던데


이번 모임은 나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지인 중 한명이 친히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00아 추석 때 할거 없으면 우리 시골집에 가자"

추석이 아니었으면 기꺼이 따라 나섰을 것을 그쪽도 온 가족이 모일텐데...

또 낯선이가 가면 "친척이 없냐?, 고향이 한국이 아니냐" 등등의 질문들을 할 것이 뻔하다. 


"아니 ㅋㅋ내가 왜 니네 시골에 가. 나 그냥 집에서 밀린 드라마나 볼래"


이 지인이 나를 위해서 친구들 몇명이랑 해서 술자리를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추석이다 보니 시골에 가네마네, 사촌들은 오네마네 나와는 무관한 이야기들로 화기애애 하다. 


몸을 가누지도 못할 정도로 취해 집에 들어왔다. 

집은 아주 고요했다. 이틀이 멀다하게 쿵쾅거리던 윗집 녀석도 오늘은 어디론가 갔나보다. 

그냥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무것도 아닌 무언가를 향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었다.

사진이라도 있으면 좋을텐데...생전에 나에게 잘해주었던 기억이라도 있으면 좋을텐데...

아무것도 없다. 

 

북한을 탈출한 20살 이후로는 묘지에 가지 못했다. 

내 부친의 묘를 가보지 못한 지도 올해로 13년이 되어 간다. 


내가 옆에 있었으면 그래도 일년 한번은 찾았을텐데.

나에게 잘해준것도 없지만 그래도 내 몸에 당신의 피가 흐르고 있기에.

북한에서 태어난 당신의 인생이 왜 그렇게 기구하기에.

당신을 향해 그 어떤 욕을 해도 당신은 기어코 내 아버지이기에...


이 기도가 누군가에게 전달되기를...

'무덤위에 잡초도 무성할 텐데 마음씨 좋은 옆 묘지 가족분들 계시면 

우리 아버지 벌초 좀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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