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적응 초반에 있었던 일이다.
어려서 어머니와 헤어져 성인이 되서 만났으니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도 다툼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북한 사람을 멀리 하라는 것이었다.
한국에 금방 와 적응하기도 바쁜 사람이 친구라고 해봤자 함께 넘어온 북한 사람들 뿐이다.
아저씨들도 있고 또래 친구들도 있었다. 그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친구가 없고 한국에 대해 아는것이 없다보니 우리끼리 만나 술 한잔 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어머니는 잔소리가 없는 분이다. 그런데 북한 친구들을 자주 만나지 말라는 얘기를 여러차례 하는 것이다.
처음엔 웃으며 '한국에서 나의 유일한 친구들이에요'라면서 넘어갔지만 한 두번으로 그치지 않으니 나도 화가 났다.
나는 북한 출신인 대한민국 사람이다. 유일한 친구들이 북한 사람이고 이들을 만나지 않으면 나에겐 더이상 친구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친구들을 만나지 말라니....
사회 생활을 하면 그 상황에 맞게 친구들을 사귀게 된다.
이후 학원과 대학생활을 하면서 한국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지만 당시 그들은 나의 사회 친구들이었다.
지금은 북한 친구들이 손가락에 꼽을 정도가 되었다. 멀어지고 싶어 멀어진것이 아니다. 다양한 사회 생활을 해보니 같은 북한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어긋나는 부분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한가지 예로 나이가 같다는 이유로 베프가 된 북한 친구가 있었다. 거의 10년이라는 기간을 베스트 프렌드로 생각하고 살아왔다. 우직하고 고집도 여간 쎈 친구여서 대화 할 때면 어려움을 느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어느날도 친구와 얘기하다 그에게 사투리를 좀 고쳐보라는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한다는 말이 '내가 왜 사투리를 고쳐?'였다. 그래도 한국에 온지도 10년이 되가는데 언제까지 북한 사투리로 살것이냐고 우리도 완벽하진 못해도 사투리 정도는 고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사투리를 고친다고 니가 북한 사람이 아닌 것이 되냐? 우리는 평생 죽을때까지 탈북자로 살다 죽는거야.
고향을 버리고 온 놈이 무슨..." 친구의 말이었다.
사투리를 완벽하게 고친다고 해서 북한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없어 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이 사회에 적응을 잘 하려면 문화를 배우고, 문화를 배우기 위해서는 언어부터 고쳐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날 이 주제로 친구와 오랫동안 다툼이 있었다. 친구는 원래 고집이 있고 나도 이날은 더 이상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너와 이젠 멀어질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야 넌 평생 그렇게 살어라... 그리고 3번이나 연락을 안 받았으면 이젠 눈치 좀 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