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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지킴이 Nov 28. 2023

6장 이별. 마침내 풀린 비밀

마침내 풀린 비밀  

   

  내가 코아라는 사실과 중독이 중독자뿐 아니라 그 가족에게도 장기적이고 파괴적인 심오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 나는 어쩌면 평생 갈 수도 있는 긴 치유의 길로 들어섰다.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았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신분석을 비롯한 상담도 받아보았다. 꾸준히 치유에 관련된 책도 읽었다. 2009년에 생명나무 치유 사역이라는 것을 접하게 됐다. 일주일에 한 번 강의를 듣고 나눔을 하고 기도하며 상처를 드러내고 치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나는 애도하지 않은 상실의 아픔과 혼자 남겨지는 데 대한 가공할만한 공포, 동반 의존, 과도한 성취욕, 파국적인 사고 등 치유해야 할 상처 목록에 압도되었다. 몇 년간 이어진 치유 과정을 통해 치유란 극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대부분 매우 느리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배웠다. 치유에 있어서 애도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게 됐는데 애도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이 글을 쓰는 것도 애도 작업의 일환이다.

  2010년 러시아의 트베리라는 작은 도시에서 대전으로 와 살고 있는 이야라는 고려인 여성을 만났다. 신앙심이 깊었던 이야는 친구를 통해 한국 남자를 소개받아 결혼했다. 그녀의 남편은 과거 환각과 환촉까지 경험했을 정도로 지독한 알콜 중독자였다. 그는 살기 위해 대전에 있는 라파라는 중독자 공동체를 스스로 찾아갔다. 피나는 노력 끝에 중독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그 후 건실한 생활인이 된 그는 이야와 결혼해 딸을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 나는 이야에게서 그녀의 남편과 라파 공동체에 대해 듣고 흥분했다. “중독자가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구나. 그런 공동체가 다 있었다니!” 당장 그곳에 가보고 싶었다. 

  라파 공동체는 당시 보문산 아래 자리하고 있었다. 교회와 공동체가 함께 운영되고 있었다. 도로에서 구불구불하고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마지막으로 계단이 나왔다. 그 계단을 올라가면 작은 문이 나타났고 그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담한 라파 공동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마당 왼쪽으로 교회 건물이 있었고 오른쪽으로 중독자들이 생활하는 공간이 있었다. 생활공간은 직접 들어가 보지 못했지만, 얼핏 보아도 아주 작은 방이 몇 개 이어져 있었다.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한 소박한 공간이었다. 공동체가 세워진 지는 벌써 십 년이 넘었다. 그동안 무수한 중독자들이 공동체를 거쳐 갔는데 목사님은 열 명 중 두 명 정도가 중독에서 벗어났다고 했다. 나는 경이로웠다. 중독은 치료할 수 없고 오로지 격리만 가능하다는 비관적인 생각이 여지없이 깨졌다. 중독에서 회복되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니. 꿈이요 기적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었다.

  공동체에서 일주일에 몇 번 교육이 진행되었다. 나도 중독자의 자녀라는 자격으로 매주 한 번씩 교육에 참석할 수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병원 밖에서 중독자들을 만났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처음이었다. 중독자들이 그렇게 말을 잘하고, 자신의 상태를 그렇게 잘 알고 있고, 중독에 대한 이해가 그렇게 깊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은 그들의 갈망은 처절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 아버지도 젊었을 때 저랬을까. 아버지도 저렇게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가망 없는 인생으로 보였던 중독자가 노력하기에 따라서 회복될 수 있는 망가진 보석 같은 존재라는 인식에 처음 눈을 떴다. 술을 먹지 않을 때 그들은 너그러웠고 유머 감각이 풍부했으며 인간다웠다. 나는 그들 사이에 끼어 마냥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만 싶었다. 무용담처럼 펼쳐지는 중독의 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새롭고 다채로웠고 슬펐다.         

  라파 공동체를 알고부터 오랫동안 내 안에 잠재된 물음이 되살아났다. 도대체 아버지는 왜 중독자가 된 것일까. 공동체 안에서 중독자들은 그들이 중독에 빠지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알고자 교육받고 자신을 성찰하고 있었다. 그 원인을 밝혀내는 것이 회복에 결정적이었다. 자신에 대해 알아가고 중독의 원인을 찾아내고 회복의 여정을 걷고 있는 그들이 아버지의 모습과 겹치면서 그리 부러울 수가 없었다. “아버지도 젊었을 때 이곳에 오셨다면 회복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물음을 할수록 가슴이 진하게 아려왔다.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평생을 중독의 노예로 살아온 아버지가 가여웠다. 누군가 아버지를 제대로 도와주었더라면 다른 인생을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제는 너무 늦어버려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나는 한번 아버지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아버지의 중독의 원인만큼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아버지를 면회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잠시 나누다 나는 느닷없이 질문을 던졌다.

“아버지, 아버지는 왜 그렇게 술을 드셨어요?”

“세상이 내 맘대로 안돼서 마셨지.”

“세상이 내 맘대로 안된다고 다 술 마시나? 혹시 아버지 어렸을 때 무슨 가슴 아픈 일 있었어요?”

다른 때 같으면 “그런 거 없었다.”고 했을 아버지였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갑자기 아버지가 먼 과거를 회상하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아버지의 입에서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전쟁이 나서 이북에서 아버지, 어머니, 형하고 나, 그리고 동생이 피난을 떠났어.”

“어, 동생이 있었어요? 큰아버지만 계셨던 거 아니에요?”

아버지의 동생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다.

“있었지. 내가 열세 살이고 동생은 다섯 살이었어. 피난 오고 나서 여름에 동생하고

강에서 헤엄을 치고 놀았어. 그런데 동생이 갑자기 꼬르륵하더니 물속으로 가라앉았어. 내가 손을 써볼 틈도 없이.”

“네? 진짜요?”

나는 귀를 의심했다. 아버지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왜 지금까지 누구도 말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런데 더 놀랍게도 그 이야기를 하는 동안 아버지의 메마른 눈가가 촉촉이 젖고 있었다.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야기하는 내내 눈 아래에 눈물방울이 고여있었다. 지어내는 이야기로 눈물을 흘릴 수도 있는 걸까.

“그래서요?”

“그래서 동생이 죽었어. 그 애가 아주 똑똑해서 아버지가 이뻐했어. 큰 인물 될 거라고. 그 애를 묻고 오면서 아버지가 대성통곡을 했어. ‘네가 죽고 그 애가 살아야 했는데...’ 하면서.” 

  아아. 내 눈앞에 그림이 펼쳐졌다. 강에서 헤엄치다 죽은 아이. 자신의 온 희망이었던 아이를 안고 오열하는 할아버지. 아이를 묻고 오면서 북받쳐오는 슬픔을 감당하지 못해 차마 해서는 안 될 말을 입 밖에 낸 할아버지. 내가 어릴 때 알았던 할아버지와 전혀 연결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정말이냐고 묻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래서 아버지가 그렇게 된 거였어. 우리 아버지 너무 불쌍하다.”

나는 아버지의 눈에 고인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었다. 그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아버지의 마음속에 맺혀있는 사건이 있음에는 틀림없었다. 그 사건은 아버지가 중독자가 된 이유를 설명하고도 남았다. ‘네가 대신 죽었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아버지가 그 후 무슨 목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아버지가 왜 그렇게 대통령이 되겠다는 터무니없는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살았는지 그 의문도 풀렸다. 똑똑한 동생을 대신해 할아버지의 희망을 성취시켜주어야만 했던 아버지는 자신의 인생을 살 수가 없었던 거였다. 할아버지의 말은 아버지에게 ‘너는 너로 살면 안 된다’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삶을 살 수 없었던 아버지가 중독 외에 갈 곳이 어디 있었겠는가. 내 눈에서도 눈물이 나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아버지, 힘들었겠다. 그것도 모르고. 진작 얘기해주지.”

아버지는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꺼내서 후련한지 얼굴이 한결 밝아 보였다.    그 이후로 나는 다시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큰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아버지의 이야기가 사실인지 확인할 길도 없었다. 사촌 언니들도 들은 바가 없다고 했다. 두 형제는 같은 아픔을 가지고 살아온 걸까. 큰아버지는 아버지의 상처를 알기에 성인이 된 아버지를 끝까지 돌보려고 하셨던 것일까. 아버지의 큰 비밀을 알아버린 나는 그 어릴 때 사건이 아버지 중독의 원인이었다고 지금도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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