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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땡선녀 May 27. 2024

손녀와 싸우는 할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혼자되신 엄마를 두고 고민이 많았다.

고3 딸을 설득해 인서울로 입학하면 외할머니 집에서 다니기로 약속했다.

다행이었다. 동생들도 기뻐했다.

그리고 기쁨은 첫 주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스무 살 손녀와 팔십 살 할머니는 사사건건 부딪혔다.



가는 귀가 먹었지만 결코 귀먹지 않았다고 우기는 정님 씨는 TV 볼륨을 크게 틀어놓는다.

즐기는 프로그램은 트로트 가요와 북한 탈북민 이야기, 해외여행 프로그램.

트로트 노래는 큰소리로 따라 부르고,

북한 탈북민 이야기는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출연진 얼굴만 나와도 그 히스토리를 전부 읊을 지경이다.

여행 프로그램을 보면서는 혼자 말씀이 얼마나 많은지 풍경을 보면서도 안 들리고 안 보이는 지경이다.

TV 없이 살아온 조용한 지방 시 출신 손녀는 제 방으로 문콕 닫고 들어가기 일쑤다.




음식 취향도 다르다.

외모가 첫째로 중요한 정님 씨는 많이 드시지도 않고, 음식도 가려 드신다.

아침엔 사과 반쪽, 삶은 달걀 한 개, 견과류 한 줌과 커피 반 잔이 전부였다.

점심은 지인들과 밖에서, 저녁은 간단히 된장찌개에 나물 아니면 주로 비빔밥, 점심을 푸짐하게 드신 날은 과일 한 쪽이 다였다.

손녀는 음식을 한솥 가득 끓여두고 한 달 내내 드시는 할머니 입맛에 두 손을 들었다.

다양한 MZ 입맛을 지닌 손녀는 음료 한 잔도 배민 이용객이다.

요리에 자신 없는 할머니는,


"네가 알아서 해 먹어라. 나는 네 입맛 못 맞춘다."


며 정말 밥만 지어놓으셨고, 난생처음 자취 아닌 자취를 하게 된 손녀는 당혹스러워했다.





정님 씨는 큰 딸에게 전화해 외쳤다.


"넌 딸을 왜 이렇게 까칠한 애로 키워놨냐.

TV도 시끄럽다 하고, 음식도 냄새난다 뭐라 하고.

나 메주 만드느라 콩 삶아 삭히는데 냄새난다고  문 콕 닫고 방에 들어가서 안 나온다.

제 방에 빨래며 긴 머리카락이 뒹구는데 들어가지도 말란다.

알아서 치운다는 데 도대체 언제 치우는 거냐."



손녀는 엄마한테 전화해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할머니는 김치도 가끔 손가락으로 집어 드셔.

그릇에 덜어서 젓가락으로 드세요. 그러면

속이 좀 느끼해서 조금만 드시는 거라 괜찮대.

엄마, 할머니가 뭐 만드시는데 식탁 밑에서 구린내가 나.

학교 갔다 집에 오면 문 열자마자 온통 구릿한 이상한 냄새가 나.

내 옷장에 된장 구린내 다 베면 어떡해."






그렇게  한 학기를 아웅다웅하던 두 사람은 결국 서로를 이해는 못 하지만

각자의 삶은 인정하기로 했다.

비록 까칠한 손녀지만 이뻐 죽겠다는 정님 씨는

눈치 보며 TV를 보고, 전화 통화는 안방에 들어가서 하신다.

손녀 방은 마음대로 치우지도 빨랫감을 내 오지도 않는다.

집주인이 할머니임을 자각한 손녀는 살찌는 것에 민감한 할머니지만 가끔

손녀가 먹는 처음 보는 요상한 음식을 궁금해한다는 걸 알고 할머니에게도 권한다.

말로는 이런 거 먹으면 살찐다며 안 먹는다 하지만

한 번 더 권하면 못 이기는 척 다 드신다는 걸 안다.

다코야키며 와플이며 밀키트 부대찌개며 그렇게 할머니와 나눠 먹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동거인이 되었다.

요즘도 여전히 투닥거리며 싸우다 풀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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