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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땡선녀 Jun 11. 2024

아버지 칠순 잔치에 야단맞은 정님 씨

엄마는 또 누가 예쁘게 한복 입은 모습을 어디서 본 모양이다.

그것도 색도 고운 주황색으로 말이다.

당신 키가 작아 아래위 같은 색으로 입어야 한다는 정님 씨는

마침 아버지 칠순 잔치 계획 중이라 본인 한복부터 떡 맞췄다.



문제는 자식들 누구도 주황색 한복을 입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누가 봐도 쉽게 소화하기 힘든 색 아니던가.

주황은.



말로는 남동생이 알아서 하라며 본인들은 뒤에 서겠다 하신 어르신들.

실제로는 당신들 뜻대로 모든 것을 결정한 부모님의 마지막 고비는 잔칫날 입을 옷이었다.

주황색 한복을 미리 맞춘 정님 씨는 곱게 편 한복을 걸어두고 잔칫날만 기다렸고,

주인공 아버지는 새 양복이 필요하다고 고급 양복을 맞췄다.

아버지의 양복 또한 정님 씨 고집이었다.



양복 맞춘 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지만 전 과정을 준비하는 남동생은 그렇지 않았다.

한복 대여점에서 고른 자식들 옷은 투표로 하늘색과 흰색이 조화로운 남녀 한복으로 결정됐고(주황은 있지도 않았다.),

집집마다 꼬맹이들까지 같은 색으로 통일해 입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주인공인 아버지가 양복을 입고 계실 게 영 어색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어서 아버지도 한복을 입으시라고 권했다.

문제는 나의 엄마 정님 씨였다.



본인은 주황색 한복을 입을 테니 너희는 너희 옷을 입어라.

그럼 아버지는?

아버지는 양복 입으면 된다.

우리는 다 한복 입었는데 왜 아버지만 손님처럼 양복 입는데요? 안 되겠다. 아버지도 한복 입으셔요.

엄마는?

엄마는 죽어도 주황색 한복을 입으시겠다고.


그리하여 마침내 열린 아버지 칠순 잔치.

아버지는 자식들과 나란히 하늘색 한복을 곱게 입으셨다.

나의 엄마 정님 씨는?

정님 씨는 혼자 주황색 한복을 입었다.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후일담.

그날 정님 씨는 큰 딸에게 야단맞았다.

엄마가 주인공이냐고, 아버지가 주인공인데 왜 엄마가 주황색 옷 입고 혼자 튀냐고.

그렇게 정님 씨는 큰딸에게 야단맞고 밤새 눈물 흘리며 큰 딸을 욕했다고 한다.


문제의 주황색 한복은 아직도 엄마 옷장에 있을까.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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