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재봉틀을 끼고 앉아 옷을 수선하던 정님 씨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가 어렸을 적엔 참 머리가 좋았어.
그런 걸 대여섯 살 때부터 일을 시켰어.
마당에 콩대를 한가득 던져주고 콩깍지 까라고 부려먹었어.
조그만 어린애가 조막만 한 손으로 언제 그 많은 콩을 다 까누.
빨리 못 한다고 할머니가 부지깽이로 머리통을 쥐어박아서 피가 났어.
한번은 할아버지가, 할아버지가 나를 참 예뻐하셨는데…그때는 치매 걸려가지고 뭐 가져오라 시켰는데 빨리 안 가져온다고 지팡이로 머리를 내리쳐서 또 피가 철철 났어.
그때부터 좀 멍한 게 머리가 나빠졌어.
내가 참 기억력이 좋고 빠릿빠릿했는데 그때부터 흐리멍덩해졌어.
내가 부모를 잘못 만나 고생을 참 많이 했어.
어릴 때 피죽도 못 먹고 자랐는데 죽어라 일만 시켰어.
얼마나 배를 곯았는지 학교 갔다 오는데 집 문지방을 못 넘고 푹 주저앉았더랬어.
힘이 하나도 없어서.
나 좀 학교도 더 보내주지.
가르쳐달라고 해도 보내주지 않았어.
나는 그게 너무 원망스러워.
내가 이렇게 재봉하는 것도 다 혼자서 그냥 하는 거야.
어깨너머 본 걸로 이리저리 짐작해서 나 혼자 그냥 하는 거야.
어디 배울 데가 있나.
못 배웠어도 그냥 보고 이리저리하는 거지.
이렇게 고치는 거 보면 나도 참 천재야.
어쩜 이렇게 배우지도 않은 걸 혼자 잘 하는지.
부모를 잘 못 만나 그렇지 내가 제대로만 배웠으면 뭔가 한자리를 해도 했을 거야.
그걸 공부 좀 시켜주지.
이렇게 무지렁이로 만들어놔서.
나는 참 복도 없지.
부모 복도 참 없어. 쯔쯔.
정님 씨가 종종 외치는 비운의 천재설이다.
혼자 익힌 재봉 솜씨로 옛날에는 어린 큰 딸 바지며 원피스며 만들어 입혔던 정님 씨.
지금은 다 잊어 옷 수선만 할 줄 알지만
새로 산 옷을 본인 체형에 맞게 수선해 입는다.
오래된 재봉틀이 덜덜 거려 새 재봉틀을 사 드렸지만 신기능을 익히지 못한 정님 씨는 도로 옛 것을 쓴다.
익숙한 것이 편하고 새 옷도 본인 취향에 맞게 수선하니 거의 모든 옷이 비슷한 모양이다.
재봉에 취미 있는 정님 씨를 위해 이것저것 수선거리를 가져다 드리면
간단한 길이 수선, 옷 폼 수선, 소매 수선 등은 가능하지만 청바지 밑단, 시보리 교체 같은 건 또 못한다.
요즘은 노래 공연에 입고 나갈 무대의상을 만들고 꾸미느라 바쁜 정님 씨.
빨간색, 검은색, 오묘한 자색의 한복스러운 치마가 완성됐다.
왜 똑같은 디자인이냐고 물으니 다른 모양은 만들 줄 모른다며 울상이다.
비운의 천재는 간단한 수선만 가능한 것이었다.
어디 예쁜 무대의상 옷본이 있나 한번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