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정정할 적에는 외식의 주도권이 두 분한테 있었다.
두 분은 푸짐한 오리 보양식, 바닷가 칼국수, 포구 횟집 등을 선호했다.
진흙으로 구웠다는 커다란 오리 보양식은 좀 많이 질겼다.
산 밑 어드멘가 오리구이집 비좁은 방에 십여 명이 들어가 먹어야 했고
더운데 산속이라고 선풍기만 돌았다.
어린아이들은 짜증을 냈고 오리를 먹는지 소음을 먹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고 땀만 줄줄 흘렸던 기억이다.
서해 짠 바닷바람을 맞으며 비좁은 평상에 둘러앉아 먹는 바지락칼국수는 맛있었던 것 같기도.
늘 사람 바글바글하고 빨리 먹고 일어서야 하는 분위기인데 애들은 왔다 갔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이가 화장실이라도 간다고 하면 또 왜 그리 불편한지.
화장실에서 성질내며 나가겠다 징징대는 꼬맹이 때문에 진땀을 뺐었다.
그런 제부도 칼국수 집엔 여러 번 갔던 기억이 있다.
포구 횟집도 비슷했다.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별로 먹을 것도 없는데 비린내 심한 껍데기는 또 왜 그렇게 많은지.
손이고 옷이고 주변이고 온통 비린내투성이었다.
아이들 데리고 열명 넘는 대식구가 어디 가서 밥을 먹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쩌면 그때의 음식점들이 불만스러웠던 건 손 많이 가는 꼬맹이들을 데리고 어른 입맛을 찾아다닌 불편함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자라고 자식들이 장소를 고르면서부터는 부모님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한정식은 달랑 한 입 거리를 커다란 접시에 담아 찔끔찔끔 내온다며 싫어하셨고,
유명 소갈비 집은 비싸기만 하고 갈비 양이 너무 적다고 불평하셨다.
값비싼 해물 뷔페를 가면 종류만 많고 먹을 게 없다 하고
생선초밥 뷔페는 종류도 별로 많지 않은데 사람만 많다고 싫어하셨다.
사실 이제 연로하신 어른들은 웬만한 요리는 다 드셔보셨고, 왔다 갔다 골라 드시기엔 몸 움직이는 게 귀찮은 거였다.
엄마 혼자되신 지 이제 3년,
여전히 정님 씨는 거의 모든 음식점이 별로다.
돈 아깝다 맛이 별로다 라며 중얼중얼 트집을 잡는다.
그러고는 또 하나도 안 남기고 다 드신다.
심지어 집에 와서 다음날 비스므르한 음식을 만들어 드신다.
"엄마 그거 별로라며?"
물으면,
"내가 언제? 나 그거 생전 처음 먹어봤어."
그러신다.
"으에, 지난번에도 나랑 백화점 가서 먹었잖아, 엄마."
라고 동생이 말하면,
"내가 언제?
아냐. 나 이거 처음 먹어봤어."
라고 우긴다.
살짝 치매인가 걱정했지만 그건 또 아니다.
정님 씨는 잊고 싶은 건 다 잊고 기억하고 싶은 건 또 또렷이 기억하는 ‘내 맘대로’를 장착했다.
그러니 모든 판단은 그날의 정님 씨 맘이다.
대체로 속상하고 기분 나쁜 일은 두고두고 잊지 않고 자꾸만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매번 좋았던 일, 행복했던 기억은 하나도 없다고 하신다.
그래서 맛있게 먹은 음식에 대한 기억도 별로 없다.
지금도 두고두고 불평하는 음식 중에 큰 딸이 예약해서 간 한정식이 꼭 들어간다.
엄마 인생에 최고로 별로였던 음식이었나 보다.
그걸 나는 세 번인가를 예약해서 갔더랬다.
눈치도 없이.
그럼 어쩌겠나.
두 손 두 발 다 든 남동생이 다시는 엄마 모시고 식당 안 갈 거라며 선언했는걸.
그래도 이제는 조금 안다.
정님 씨는 거의 모든 식당과 음식에 불만이지만 이제는 음식점에서 먹는 남이 해주는 음식을 더 좋아한다는 걸.
거의 굶다 먹는 사람처럼 허겁지겁 드셔서 우릴 놀라게 하지만
여러 종류 음식 중 그날 맘에 든 음식만 많이 드신다는 걸.
집에서 혼자 먹는 것보다 남이 제대로 차려준 밥상을 더 맛있어한다는 걸.
옛날 밥상 투정하던 아버지처럼 집밥보다 요리를 더 좋아하신다는 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