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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땡선녀 Aug 27. 2024

정님 씨의 치매 예방법 화투

어릴 적부터 정님 씨는 종종 화투장을 가지고 놀았다.

안방구석엔 수건이 든 작은 쟁반이 있었고 수건 속엔 항상 화투가 숨어있었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화투를 열심히 하신 건 또 아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두 분이 함께 화투를 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화투는 오로지 엄마만의 놀잇감이었으니까.


어린 시절 엄마가 호기심 어린 내게 몇 번 화투를 가르쳐 주려고 하였으나

나는 도무지 화투의 놀이법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나마 배운 것이 같은 그림끼리 짝 맞추는 것뿐이었다.

지금도 나는 화투놀이를 할 줄 모른다.


요즘도 엄마 집 거실 한편엔 의자 위 수건에 접힌 화투장이 숨겨져 있다.

옛날엔 우리 모르게 혼자서만 가지고 놀던 것이 지금은 아침에 외출 준비를 끝내고 난 뒤나

아무 일정 없어 심심할 때마다 혼자 화투를 하신다.

옛날엔 사위 보기가 부끄러워 숨기던 것이 이제는 틈날 때마다 당당하게 펼쳐놓는다.


이거 나 치매 예방하는 거야.
이런 거 가지고 놀아야 치매 안 걸리지.


하면서 큰소리를 치신다.


물론 아무도 뭐라고 안 했다.

지금도 화투를 이해 못 하는 나는 그러려니 할 뿐이다.


혼자 하는 정님 씨 화투 놀이는 아마도 '띠기'인가 보다.

죽 펼쳐놓고 한 장씩 맞춰서 다 없어질 때까지 하는 방식이다.

그걸 맞추면서 중얼중얼 신세타령을 늘어놓거나

돌아가신 아버지부터 쑥고개 할머니까지 두루두루 흉을 보기도 한다.

그렇게 맞추다 보면 종종 한두 장씩 짝이 안 맞고 남는 것 같다.

그러면 운세가 안 좋네, 망했네 하면서 또 역정을 내신다.

질리지도 않고 수십 년째 같은 화투 놀이를 하는 걸 보면  엄마도 한두 가지 화투 놀이만 아는 모양새다.


TV를 켜 놓고도 화투를 꺼내 운세를 점치는 정님 씨의 치매 예방법은 참 진지하다.

슬쩍 봐도 여전히 그림 맞추기 정도로만 보이는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세계다.

수십 년째 엄마 혼자 화투 놀이를 하는데 이상하게도 자식들 누구도 관심이 없다.

워낙 어릴 때부터 봐 와서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정님 씨는 아버지 가시고 난 뒤로 심심해서 하는 거라고 자꾸만 우긴다.

마치 그전에는 그런 거 모르고 살았던 사람처럼.

누군가의 기억이 자꾸만 왜곡되고 있다.


이걸 또 꼬집어 이야기하자니 엉뚱한 데서 화내고 삐질 것 같아 그만 네네 하고 물러서고 만다.

이제는 엄마 말에 토 다는 것도 무섭다.


왜곡된 기억을 맞다고 우기니 그러려니 할 뿐이다.

정님 씨는 점점 미운 일곱 살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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