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지상주의자인 나의 엄마 정님 씨는 평생 키 작은 것이 콤플렉스다.
키만 작았지 손도 발도 흰 피부까지 모두 다 예쁘다는 정님 씨는 큰 딸을 두고 어릴 적부터 예쁜 점은 하나도 안 닮고 하필이면 키 작은 것을 닮았다고 누차 말해왔다.
다 클 때까지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아왔는데 한 번은 황당한 이야기를 듣고 말았다.
30년 넘게 인천에서 살다 부천으로 이사 간 부모님은 새 이웃과 친목을 다지느라 나름 이미지 관리를 하신 모양이다.
어느 명절 모처럼 부모님 집에 모인 온 가족이 모였다.
뭐 좀 사러 나갈까?
엄마, 같이 장 보러 갈래요?
아니, 난 안 가.
너희들끼리 갔다 와.
그런가 보다 했다.
저녁때 즈음, 동생이 "여자들끼리 사우나 갈까?" 했더니 정님 씨가 펄쩍 뛰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 난 안 가.
위층 사는 00 엄마라도 만나서
'엄마 닮아서 저 집 딸들이 키가 작구나.'
하고 흉보면 어떡해?
나는 깜짝 놀랐다.
으익?
엄마,
엄마는 내가 부끄러운 거야?
야,
나는 너, 나 닮아서 키 작다 소리 들을까 봐
여기 이사 와서는 사람들한테 큰 딸 있다는 얘기도 안 했어.
헐!
무슨 엄마가 이래?
왜 나를 부끄러워하냐고요!
직장 다니느라 바빴던 나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도 부모님 집에 자주 가지 않았다.
큰 아이만 우리 집과 부모님 집을 들락날락할 뿐 난 갈 일이 별로 없었고,
정님 씨가 우리 집에 오는 일이 흔했다.
생각해 보면 정님 씨하고 함께 쇼핑도 안 했고 동네 산책도 안 해봤다.
나란히 서서 함께 걷는 일조차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제야 온 가족이 외식이라도 함께하는 날이면 종종걸음으로 멀찌감치 떨어져 걷던 정님 씨 모습이 떠올랐다.
평소에도 눈치가 없던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거였다.
나 또한 사춘기 때 잠깐 작은 키를 고민하긴 했다.
그렇지만 한 번도 엄마를 닮아서 내 키가 작다고 한탄하지 않았고 작은 키가 부끄럽지도 않았다.
물론 키가 더 크면 좋았겠지만 그건 내가 어떻게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하여 일찌감치 키에 대한 고민을 마쳤다.
하지만 키 작은 큰딸을 동네 사람들한테 보일까 남부끄러워하는 엄마의 모습은 정말 서운했다.
키 작은 것도 서러운 데 말이다.
하지만 나이 팔십 넘은 정님 씨는 오늘도 키높이 깔창에 굽 있는 신발을 신는다.
그리고 160Cm 중, 후반대인 키 큰 이모들과 함께 쇼핑을 다닌다.
종종 150Cm대 후반인 작은 딸과도 백화점에도 만난다.
동생은 엄마보다 키가 크니 나보다는 낫다.
감사하게도 150 초반인 큰 딸과도 간혹 함께 나간다.
정님 씨는 내게 운동화 바닥에 2Cm 두께 깔창을 꼭 넣으라고 충고한다.
나는 그냥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