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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조닉 Jul 12. 2024

다수는 왜 소수 권력자에게 대항하지 못하는가?

명령을 내린 히틀러, 수행한 나치. 누구 잘못인가?

오늘은 디즈니가 풍자하는 모습 중 하나인 권력에 굴복하는 약자 모습을 설명하겠다. 대표가 카드병사다. 절대권력을 가진 하트여왕이 두려워 그녀가 내린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병사 이야기를 하며 해당 주제를 생각해 보자.




잘못된 걸 알지만 명령을 따르는 병사



하트여왕이 붉은 장미를 심으라 했는데 실수로 흰 장미를 심어 카드 병사는 장미에 붉은 페인트를 칠한다. 페인트 칠하면 장미가 죽는 걸 알지만 흰 장미인걸 들키면 자기 목이 날아가니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페인트칠을 한다. 꽃에 페인트 칠하며 미안하다고 말하고 잘못을 저지른다는 걸 자각해도 행한다. 권력이 무섭기 때문이다.


군주국, 독재국, 전쟁에서 해당 현상을 보기 쉽다. 전쟁이 벌어지면 지휘관은 천막이나 건물 안에서 명령을 내리고 병사는 전선에서 사람을 죽인다. 싫어도 전진하고 계속 죽인다. 해당 행위를 지휘관이 그만하라 할 때까지 반복한다.


거기에 병사는 자유의사를 표하지 못한다. 양심 때문에 명령에 거부하면 배신자, 겁쟁이 등 타이틀이 따라다니고 군법에 넘겨져 처벌을 받으니까. 반대로 부당한 명령이라도 이행하면 칭찬하고 보상을 주며 본받으라 칭한다. 지휘관이 휘두르는 강압에 병사는 자유의사를 억압받으며 다른 약자가 가진 자유를 억압한다.


심하면 권력자가 하는 결정이 자신이 원하는 결정과 같다 느끼며 권력자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현상도 나온다. 이는 종교와 같다. 정치가 종교와 같아지면 집단광기는 이성을 누르고 멈추지 못한다.



이는 병사뿐 아니다. 대부분 권력에 무릎 꿇고 권력에 따라 악을 행하는 존재도 이런 처지다. 권력자 사상을 믿어서가 아닌 위에서 명령을 내렸기에 어쩔 수 없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지만 따르고 악을 행한다. 그럼 따른 자는 죄가 없는가?


홀로코스트를 주도한 아이히만, 나치 잔당은 2차 대전 당시 자신은 상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며 변호했다는 걸 기억하자. 모든 가해자는 책임을 높은 쪽에 돌려 가벼워지려는 성향을 보인다.


아돌프 아이히만


나는 권한이 없는 배달부에 불과했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 크건 작건 아돌프 히틀러나 그 외 어떤 상급자 지시에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고 성실히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다.
-아돌프 아이히만(홀로코스트 총책임자)-


부정을 알고도 방관하고 따르며 타인이 가진 생명과 자유를 짓밟는 행위는 정당하지 못하고 해서도 안 된다. '몰랐다. 어쩔 수 없다.'라는 식으로 핑계 대고 도망쳐서는 안 된다. 결국 권력에 맞서 싸워야 하느냐? 그게 정답이지만 아쉽게도 현실에서 불가능하다.



아랫사람은 무엇을 하는 게 가능한가?


뭘 하느냐? 간단하다. 몰래 풀어주는 게 가능하면 풀어주고, 사과할 기회가 찾아오면 인정하고 사과하자. 핑계가 아닌 죄책감을 가지며 기억하고 교육하자. 설령 피해자는 용서해 주기 힘들어도 제삼자나 후손은 기회를 주고 용서해 줄 확률이 오른다. 가장 빠르지만 어려운 방법이 인정과 사과라는 걸 명심하자. 


폴란드 유대인 희생비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하는 발리 브란트 전 서독 수상


처음에는 비난, 비판이 따라와도 지속되는 사과와 시간은 과거는 잊지 않아도 슬픔과 분노 같은 감정을 희미하게 해 준다. 물론 위 두 가지 만으로 모든 걸 용서하긴 힘들고 악행을 정당화하긴 불가하다. 아쉽게도 아랫사람에게 선택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솔리니, 히틀러, 일본 천왕, 스탈린 등 독재자에게 반대한 자국 군인과 국민은 찾기 힘들었다. 대항할 힘도, 용기도 없기에 국가 주권을 독재자에게 넘기고 정당화했다.


정상인 다수는 힘이 없다. 소수 권력자가 어떤 방식을 원하느냐에 따라 국가라는 전체는 소수를 따라간다. 민주주의 국가는 모두가 주권자라는 개념이라 시위 자유, 출판 자유, 언론 자유가 보장되니 독재자가 함부로 날뛰기 어렵지만 그런 개념이 희귀했던 과거에는 선택권이 없다. 주권은 권력자만 소유했다.


전쟁이 아니어도 살면서 부당한 명령 때문에 양심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한 번쯤 생긴다. 때가 되면 우린 어떤 선택을 할 텐가? 저항하는 용기가 없더라도, 정당화하지 않고 잘못이라 인정하는 의사를 가졌다고 모든 게 용서받는 게 가능할까?




오늘은 카드 병사를 통해 권력을 따르고 굴복하는 존재를 설명하며 우린 어떤 방식을 추구하고 저항이 가능한지 생각했다. 여러분은 아무리 강력한 독재 앞에서도 우리가 무엇을 포기하면 안 되고 무엇만은 끝까지 행동해야 한다고 여기는가? 동시에 과연 그걸 우린 지키는 게 가능한지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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