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C의 시선
2004년 개봉되었던 “디어 프랭키(Dear Frankie)”는 아기자기한 한 편의 소품(小品) 같은 느낌을 주는 영국 영화로, “Rudy”나 “Grace and Beauty” 등 한국 관객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들을 만든 영국의 여성 감독 쇼너 오어비치(Shona Auerbach)가 연출을 맡고, “노팅힐(Notting Hill)”에서 단역으로 그리고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소피” 역할(목소리 연기)로 출연했던 에밀리 모티머(Emily Mortimer)가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작품입니다. 영화 중반쯤부터 등장하며 작품 안에서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은 채 엔딩 크레딧에도 “낯선 사람(The Stranger)”으로만 소개되는 남자 주인공 제라드 버틀러(Gerard Butler)는 그에 비하면 상대적인 ‘유명’ 배우로, “300”이나 “백악관 최후의 날(Olympus Has Fallen)” – 이후 “London Has Fallen,” “Angel Has fallen” 등 소위 “Has Fallen” 시리즈로 이어진 – 같은 액션 영화로 지명도가 높아졌으며, 특히 영화 “300”의 “레오니다스 1세(Λεωνίδας Α΄)” 역에서 포효하듯 외친 “This is Sparta!”라는 대사 때문에 한국 관객들에게는 “스파르타”라는 ‘애칭’으로 알려졌을 만큼 친숙한 인물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영화의 제목에도 이름이 등장하는 “프랭키(Frankie)”는 엄마, 외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9살 소년입니다. 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데다 잦은 이사로 인해 친한 친구를 사귀는 일조차 쉽지 않은 그는, 그럼에도 밝은 모습을 잃지 않으며 학교 공부에도 열심인 똑똑한 학생입니다. 큰 배를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선원이라는, 단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해양 생물에 특히 관심이 많고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을 만큼 잘하고 좋아하는 학과목도 지리 과목입니다. “재산 목록 1호”로 가장 아끼는 물건은 편지로만 만나는 아빠가 보내 주는 우표들이고 말이지요. 늘 갑작스레 짐을 싸서 이사를 떠나는 일의 반복으로 할머니는 많이 지친 듯 보이지만, 영화의 시작과 함께 새로 옮겨 온 스코틀랜드 해안가 지역에서 일자리를 얻게 된 엄마는 나름대로 ‘정착’하며 활기 띄는 모습을 보입니다. 처음부터 프랭키에게 아무런 편견 없이 다가와 주고 엄마에게도 호의를 보이던 이웃 “마리(Marie)”가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시간제로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지요.
그럭저럭 평화롭게 지날 만하던 이 가족의 일상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은 프랭키를 괴롭히는 한편 그를 좋아하기도 하는 듯한 급우 “리키(Ricky)”가 신문에 실린 사진 한 장을 그에게 건네주면서부터입니다. 잦은 이사와 늘 뭔가에 쫓기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엄마 “리지(Lizzie)”에 대한 궁금증이 관객들의 마음에 조금씩 생겨날 무렵, 영화는 프랭키가 아빠에게 열심히 써서 보내는 편지를 엄마인 리지가 받아 읽는 이해 되지 않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잔잔하고 평온한 분위기의 영화 속에 포함된 뜻밖의 반전들 중 첫 번째 것이 바로 이 대목으로, 배를 타고 다니느라 거주지가 일정치 않은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는 큰 항구가 있는 “글래스고(Glasgow)”의 사서함으로 보내야 하는 줄로 아는 프랭키가 그 주소로 편지를 써 보내면 리지가 정기적으로 그곳에 가서 편지를 찾아 온 후 그에 대한 답장을 본인이 직접 써 왔다는 의외의 사실이 관객들에게 알려지는 것이지요. 영화의 제목인 “디어 프랭키(Dear Frankie)”도 엄마가 아빠인 척하며 쓰는 그 편지들의 시작 부분을 따서 붙인 이름이고 말입니다.
프랭키가 의심 없이 믿도록 하고 싶었던 리지는 아빠가 타고 다니는 배에 대해 설명하면서 우표에서 본 적이 있는 “아크라(Accra)”라는 이름을 아들에게 가르쳐 주었었는데 하필 그 배가 며칠 후 “호왓(Howat)” 항구로 들어온다는 신문 기사를 리키가 보고 전해 주는 바람에 일이 벌어지게 된 것으로, 어려서부터 아빠를 만난 적이 없다는 저간의 상황으로 볼 때 가까운 항구까지 와도 아들을 만나러 오지 않을 사람이라 확신한 리키가 그 여부를 두고 내기를 하자고(아빠가 혹시 온다면 자신의 보물인 “트럼프 카드”를 줄 테니 오지 않는다는 자기 말이 맞으면 프랭키의 보물인 우표와 주머니칼을 달라며) 프랭키를 자극하자 프랭키도 ‘계약’에 동의하면서 엄마 리지까지 그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후 고민에 휩싸인 리지는 궁리 끝에 배가 들어오는 날 하루 동안 아빠 역할을 해 줄 남성을 찾아 나서기 시작하고, 결국 이웃이자 친구인 마리에게 상대에 대해 아무것도 알 필요 없는 -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없는(no past, no present, no future) - 사람을 구해 달라고 부탁하게 되지요.
‘일당’을 받고 아빠 노릇을 해 주겠다고 나타난 남성은 리지와 먼저 만나 이야기 나눌 당시의 서먹함이나 어색함과는 달리, 그녀가 건네 준 프랭키의 편지를 읽은 후 아이를 처음 만나는 날 제일 좋아할 만한 해양 생물 도감을 사 들고 와서 주저하던 프랭키의 마음을 활짝 여는가 하면 “물수제비” 잘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적당한 조약돌을 찾아 주기도 합니다. 예정보다 늦은 시간까지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밤 늦게서야 집으로 바래다 준 그 “낯선 사람”은 자신의 배가 출항하는 날까지 하루가 더 남아 있다며 다음날은 리지를 포함한 세 사람이 함께 시간을 보내자는 제의도 합니다. 잘 알지 못하는 남자의 의외의 제안을 강경하게 거부하던 리지는 프랭키의 성화와 “언젠가는 누군가를 믿어야 한다(You have to trust someone, someday)”는 그의 말에 마음이 누그러져 결국 약속을 하게 되고, 다음날 그들 셋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함께 보냅니다. 다시 늦은 밤이 되어 잠든 프랭키를 집까지 안고 와서 작별 인사를 건넨 그가 떠난 후, 리지는 ‘일’의 대가로 그에게 건네주었던 돈봉투가 자기 외투 주머니에 그대로 돌아와 있는 것을 발견하지요.
프랭키의 아빠가 왜 그들을(그렇게 사랑스러운 아내와 아들을) 버렸는지 의아해 하는 낯선 사람의 질문에 주어진 리지의 대답이 또 하나의 반전으로 작용하는데, 아이가 장애를 갖게 된 것은 선천적 원인이 아니라 친부인 “데이비(Davey)”의 폭행에 의한 결과이고, 당시 두 살이던 프랭키를 남편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데리고 도망 나온 것이라는 사실이 질문에 대한 그녀의 대답으로 밝혀지니까요. “낯선 사람”을 아빠로 알고 따르며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 프랭키 때문에 고민하던 리지와 할머니 “넬(Nell)”은, 수년 전 데이비를 피해 도망친 자신들을 찾는 신문 공고를 보고는 그가 심각한 질병으로 죽음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프랭키를 만나려 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를 아들과 직접 만나게 할 수는 없었던, 게다가 낯선 사람을 계속 아빠로 속일 수도 없다고 생각한 리지는 프랭키에게 아빠가 중병에 걸렸다고, 그리고 곧 이은 사망 후에는 숨졌다는 사실을 전해 주는데, 얼마 뒤 사서함을 정리하러 갔던 리지가 - 아빠가 죽은 걸 아는 프랭키가 이제 더 이상 편지를 쓰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 아들이 보낸 편지를 발견하는 장면에서 마지막 반전이 일어납니다. 프랭키가 “낯선 사람”에게 편지를 써 보냈고 그가 친아빠가 아님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며, 그럼에도 자신에게 사랑과 정성을 보여 준 그를 ‘친구’로서 다시 만나고 싶어 한다는 사실 말이지요. 그 “낯선 사람”이 마리의 남자 형제(brother)임을 알게 되는 것 역시 ‘작은’ 반전의 역할을 합니다.
영화의 내용 중 제가 가장 주목하게 되었던 부분은 “가족 간의 희생적 사랑”으로, 아들을 지키고자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 하는 힘겨운 상황을 감수하며 사는, 또한 아이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하루 짜리 아빠를 찾기 위해 남성 전용 주점에 들어갔다가 매춘부로 오해까지 받는 프랭키의 엄마 리지는 물론이지만, 그런 딸과 손자를 향한 사랑과 염려 때문에 늦은 나이에도 그들을 열심히 ‘쫓아다니며’ 나름대로 ‘보호’의 노력을 하고 있는 할머니 넬과, “인간 말종”이라고 불려 마땅할 프랭키의 친부 데이비가 중병으로 사경을 헤매는 긴 시간 동안 그의 병상을 지키며 마지막으로 리지와 프랭키를 만나게 해 주려 애쓰는 - 반드시 옳은 일이라고만은 할 수 없겠지만 - 데이비의 누나 “자넷(Janet)”을 보며 하게 되는 생각입니다.
두 번째로 부각되는 측면은 “연약한 이웃에 대한 배려”로서, 강한 자존심과 아들에 대한 보호 본능으로 극히 폐쇄적이던 리지가 마리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 수 있었던 것은 귀가 들리지 않는 프랭키에게 처음부터 아무런 편견 없이 - 그렇다고 지나친 ‘동정’을 표하며 상대를 ‘부족한’ 사람처럼 여기는 듯한 태도도 취하지 않으면서 -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대해 주던 그녀의 일관된 자세 덕분이었습니다. 난생 처음 만난 아빠를 낯설어 하면서(나중에 알고 보니 ‘완벽한 타인’임을 알고 있어 그랬던 것이겠지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던 프랭키의 마음을 열기 위해 그가 가장 좋아하는 해양 생물에 관한 책을 준비해 가고, 아이가 채식주의자임을 알고선 자신도 “피쉬 앤드 칩스(Fish & Chips)”에서 생선을 빼고(!) 달라고 주문할 만큼 상대방을 배려하는 “낯선 사람”의 마음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물수제비를 가르쳐 주던 도중 아이가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깜빡 잊는 대목에선 역시 인간이란 자신의 제한된 입장 안에서 타인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인정하게 되지만, 친아빠가 아닌 걸 이미 알고 있던 프랭키가 그가 골라 준 조약돌을 주머니에 넣어 소중히 간직하던 모습을 돌이켜 생각할 때, ‘타인’이라는 위치가 주는 실수와 부족함이 있다 해도 역시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무는 것은 ‘따뜻한 진심’이라는 사실 또한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아빠가 보내는 답장처럼 속이며 아이에게 편지를 쓰는 동안 느꼈던 죄책감에 대해 “매일 거짓말을 하는 일이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말하는 리지에게 낯선 사람은 “매일 거짓말 한 것이 아니라 매일 아이를 보호한 것”이라는 위로를 건네고, 그런 그에게 리지는 “매번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다짐과 언제까지 이런 거짓말을 해야 하나 하는 갈등도 처음에는 있었지만 나중에는 그것이 아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에 편지를 쓰라고 스스로 종용하게 되었다”고도 고백합니다. 이토록 절박한 상황에서 아이를 키우지는 않았던, 더욱이 아이의 청량한 목소리를 직접 들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충분히 ‘감격’하지 못했던 엄마의 입장에서 새삼 회개와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는 한편, 정말로 귀하고 소중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만큼이나 육신의 귀를 통해서도 들리지 않음이 당연하리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고(unseen) 손에도 잡히지 않는(intangible) 것처럼, 또한 그분이 건네시는 말씀이 우리 육신의 귀로는 결코 들리지 않는(inaudible) 것과 같이 말이지요.
딸 J의 시선
샤오나 오에르바흐(Shona Auerbach) 감독의 2004년 작 [디어 프랭키](Dear Frankie)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표현을 붙이고 싶은 작품 중의 하나로, 추석 명절에 어울릴 ‘따땃한’ 영화를 생각하던 중 자연스럽게 떠올라 이번에 다루게 되었다.
영화는 9살 소년 "프랭키"(잭 맥엘혼)와 그를 홀로 키우는 20대의 어린 엄마 "리지"(에밀리 모티머), 외할머니 "넬"이 스코틀랜드의 항구 도시 "그리넉"(Greenock)으로 이사하는 모습을 비추며 시작된다. 그저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처럼 보이는 프랭키는 사실 귀가 거의 들리지 않는 청각장애인으로, 엄마 리지는 혹시라도 아이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무시 당하거나 해를 입을까 봐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돋운 채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독순술(lipreading), 즉 상대의 입 모양을 보고 내용을 유추하는 능력이 뛰어난 프랭키는 전학 간 학교에서도 곧 친구를 사귀고, 심술궂은 같은 반 아이가 시비를 걸어 와도 해맑게 넘기는 등 뛰어난 적응력까지 보인다. 이 가족이 사는 아파트 근처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다정한 이웃 "마리"(샤론 스몰)의 배려로 리지 또한 그녀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자주 주거지를 옮기고 이사를 다니느라 어떤 곳에서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 듯 보였던 가족은 점차 이 투박하지만 따뜻한 도시에 정을 붙이게 된다.
수어나 필담을 통해 타인과 소통하면서 ‘과묵한’ 아이로 지내는 프랭키는, 바다를 항해하는 선원인 아빠에게 쓰는 편지에서만은 수다쟁이처럼 말을 쏟아붓는다. "HMS Accra"라는 배에서 일하는 프랭키의 아빠는 아들에게 꼬박꼬박 답장을 보내며 전 세계를 누비는 자신의 모험담을 전하고, 우표 수집에 취미를 붙인 아이를 위해 편지마다 새로운 우표를 하나씩 넣어 보낸다. 목이 빠져라 아빠의 편지를 기다리는 프랭키는 자기 방 벽에 붙인 커다란 세계 지도 위에 HMS Accra의 항해 경로를 표시하거나 지리 과목과 바다(특히 해양 생물)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방식으로 사진 한 번 본 적 없는 아빠를 향한 그리움을 표현한다. 편지를 받을 때마다 행복해 하는 아이를 보며 엄마와 할머니는 함께 미소 짓지만, 프랭키의 아버지, 그러니까 리지의 전남편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어딘가 불안하고 불편해 보인다.
그러던 가운데 뭔가 석연치 않아 보이는 평온을 어찌어찌 이어 가던 가족의 일상에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한다. 프랭키와 같은 반의 남학생인 - 프랭키를 괴롭히고 싶은 건지 친해지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 "리키"에 의해 HMS Accra가 그들이 사는 도시 그리넉에 곧 정박할 예정이라는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너희 아빠가 널 보러 올 리는 없다"며 약 올리는 리키의 '계략'에 넘어 간 프랭키는 트레이딩 카드 묶음(그 또래 남자아이들 사이에선 큰 자산일 것으로 추정되는)을 걸고 리키와 내기를 하고, 그리넉에 도착하면 자신을 만나러 와 줄 수 있겠느냐는 부탁을 편지에 써서 아빠에게 보낸다.
그리고 이 편지는 리지의 손에 그대로 들리게 되는데, 이것은 지금까지 프랭키가 ‘아빠’와 주고 받았던 편지들 모두가 사실은 그녀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리지는 폭력을 휘두르던 전남편을 피해 아이와 도망친 상황이고, 그에 대한 진실을 프랭키에게 숨기고자 아빠가 선원이라는 거짓말을 한 뒤 자신이 아빠인 ‘척’ 프랭키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라도 프랭키에게 아버지에 대한 ‘진실’을 알려 줘야 한다는 할머니와 달리 리지는 어떻게든 이 ‘판타지’를 이어 나갈 방법을 찾고, 결국 사정을 전해 들은 마리를 통해 하루 동안 프랭키의 아빠 노릇을 해 줄 남자(제라드 버틀러)를 소개 받게 된다.
계획대로 프랭키 앞에 나타난 남자는 아이의 축구 시합을 응원하고 마리의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거나 해변에 내려가 프랭키에게 물수제비 놀이를 가르쳐 주는 등으로 평범하지만 행복한 하루를 선물한다. 약속된 하루가 저물 무렵, 남자는 프랭키는 물론 리지와도 함께 - 셋이서 - 하루를 더 보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하고, 기함할 듯 놀라며 거부하던 리지는 '아빠'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들로 인해 결국 계획을 변경하게 된다. 전남편의 이름인 "데이비"로 불러 달라며 자기 이름조차 밝히지 않는 남자를 리지는 줄곧 경계하지만, 프랭키에게 진심으로 다가서서 아이가 아빠와 해 보고 싶었을 일들을 함께하고 ‘꿈’을 이뤄 주기 위해 노력하는 그를 보면서 점차 마음이 열리게 된다.
거의 20년 만에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오래전 옛 친구와 우연히 마주친 듯도, 어렸을 때 좋아했던 이불을 다시 찾아내 따뜻하게 둘러싼 듯한 느낌도 들었다. 프랭키와 비슷한 나이에 처음 봤던 영화를 극중 리지의 나이가 넘은 시점에 다시 보며 감회가 새롭기도 했고 말이다. 예전에 영화를 봤을 때는 리지와 ‘낯선 남자’ 사이의 수줍고 조심스러운 로맨스에 주목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는 그보다 프랭키 가족의 관계에 - 리지와 프랭키의 관계, 그리고 프랭키와 그의 (가짜) 아빠의 관계에 - 더 관심이 갔다는 사실도 재미있었다.
대중과 평론가들이 자극적 요소나 심각한 갈등이 없는 영화, 거대한 스케일이나 특수 효과를 사용하지 않는 독립 영화 등을 "잔잔하다"고 표현할 때가 많지만, 이 작품은 그런 비유적 의미에서뿐 아니라 글자 그대로도 정말 ‘잔잔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는 ‘정적’과 ‘고요’가 작품의 어떤 테마, 또는 중요한 서술적 장치로 사용되면서 긴 대사 대신 배우들의 표정과 행동을 통해 서사를 발전시키고, 몇몇 주요 장면에서는 아예 음성을 소거하는 등 의도적 공백을 남겨 자칫 ‘과잉’될 수 있는 감정을 절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빈틈 채우기를 관객의 몫으로 남기려는 선택일 수도 있겠으나, 다른 한 편으로는 상대방과 ‘언어’로의 소통이 어렵다 보니 대화나 감정 표현을 간소화하게 되는 프랭키의 입장을 영화 속에서 구현해 낸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듯하다.
사실 프랭키의 ‘아빠’가 전 세계를 항해하는 선원으로 설정되었다는 점, 그에 따라 프랭키가 바다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전제뿐 아니라 이 가족이 바닷가에 위치한 소도시로 오게 된 배경까지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다’가 본질상 거대한 ‘고요함’과 연결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프랭키가 좋아하는 해양 생물들은 ‘소리’를 내지 않는 생명체인 데다 더욱이 물속에서의 소리는 둔탁하게 왜곡되거나 아예 전달되지 않기에, ‘소리’를 듣지 못하는 프랭키의 장애가 바다에서는 별다른 '특별함'이나 '불편함'을 갖지 못하는 셈이다. 그런 맥락에서 프랭키에게 있어 ‘바다’는 ‘아버지가 있는 곳’, 더 정확하게는 ‘아버지 자체’를 대변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프랭키가 지금의 모습으로도 온전하게 여겨질 수 있는 곳, ‘특별’하거나 남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존재로 ‘받아들여짐’(acceptance)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어찌 보면 프랭키가 정말 원했던 것은 싱글맘인 리지의 부담을 덜어 줄 ‘아버지’ 그 자체였다기보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 존재할 수 있는 자리, 무언가를 바꾸거나 아쉬워 할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인정 받는 관계였을지 모른다.
바다에서, 그러니까 물속에서 ‘소리’는 잘 전달되지 않을지언정 음파는 빠르게 퍼진다는 사실도 작품의 내용과 관련된 은유가 아닐까 싶은데, 이 영화 안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언어’는 그다지 중요한 ‘소통’의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랭키는 영화 내내 거의 입을 열지 않지만, 아빠에게 쓰는 편지에서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는다. 여기에서 프랭키의 편지 내용이 내레이션으로 서술되면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아이의 ‘목소리’가 구체화되는 연출 방식도 무척이나 신선하다. 프랭키는 다른 사람들처럼 구두(orally)로 대화를 나누지는 못하지만 자신만의 ‘목소리’를 분명히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프랭키의 이 ‘목소리’를 이끌어 내는 것은 리지의 사랑, 다시 말해 진심 어린 관심과 아이에 대한 인간적 호기심이다. 실제로 리지는 ‘남자’와 대화를 나누던 중, 자신이 프랭키에게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아빠인 척 계속 편지를 쓰는 이유는 그를 통해서만 아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말하자면 리지는 아버지에 대한 끔찍한 진실로부터 프랭키를 지켜 주려는 의도는 물론, 아이가 쓴 편지들을 통해 그 속마음을 듣고 생각을 이해하며 아들에 대해 더 잘 알고 싶다는 바람(프랭키와의 ‘소통’에 대한 갈망) 때문에 그처럼 계속 편지를 나누는 것이다. 실제로 리지는 편지 안에서 프랭키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전해 듣고, 리키가 집에 놀러 왔을 때 "네가 그 리키구나"하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을 만큼 아들의 삶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며, 프랭키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이해 덕분에 골동품 가게를 자주 방문해 새로 나온 우표를 사는 등 아들의 관심사와 행복의 추구에도 직접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어떻게 생각해" 같은 질문을 할 때마다 세세히 표현하는 일이 어려워 어깨를 으쓱하고 마는 프랭키에게 이런 식으로 다가가지 않았다면 결코 가능하지 못했을 깊이의 이해와 교류를 이뤄 낸 셈이다.
프랭키의 아빠 역을 하게 된 ‘남자’ 역시 아이에 대해 진심 어린 관심을 보여 준다. 그는 리지가 별 기대 없이 건네 준 프랭키의 편지들을 자세히 읽고 첫 만남에 아이가 좋아하는 해양 생물에 관한 책을 선물로 가져오는데, 난생 처음 만난 ‘아버지’의 등장에 어색해 하며 쭈뼛거리던 프랭키가 책을 받은 후엔 안심이 되는 듯 그를 꽉 껴안는 장면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아이가 채식주의자라는 마리의 귀띔을 듣고 자신이 주문한 피쉬 앤 칩스에서도 생선을 빼 달라는 주문을(호빵에서 팥을 빼는 격이 아닌가 싶지만) 했을 때 프랭키가 "우리 아빠예요"라는 ‘자랑’을 글로 적어 마리에게 보여 주는 모습도 참 뭉클하다. 프랭키가 항상 혼자 바라보던 수족관 앞에서 ‘남자’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몸을 굽힌 채 나란히 물속 생물들을 구경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고(개인적으로 1996년 작 [로미오+줄리엣]에서보다 훨씬 더 로맨틱한 ‘수족관 씬’이라고 생각한다), 둘 사이에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지만 아이와 같은 세상을 보기 위해 노력하는 남자의 경탄 섞인 눈빛과 두 사람의 미소 짓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이들이 진정한 ‘소통’과 ‘교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게 된다.
‘상대’에게 집중하는 리지와 남자의 태도는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프랭키의 친부 "데이비"의 행동과도 극명하게 대비된다. 그는 자신의 병이 위중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로 누나인 "자넷"을 통해 리지와 프랭키를 찾으려 들고, 결국 병원을 방문한 리지에게 나긋나긋하게 굴며 아들을 데려오라는 부탁을 하지만, 어린 프랭키를 폭행해 청력을 잃게 한 장본인인 데이비에게 리지가 절대 아이를 만날 수 없을 거라고 못 박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된 그는 끔찍할 만큼 태도를 돌변시킨다. 온갖 욕을 퍼부으며 ‘내’ 자식을 내놓으라고 뻔뻔하게 외치는 그의 난동으로 여태껏 깊은 바닷속처럼 고요하던 영화에서 가장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연출되는데, 프랭키에게 영원히 치유 불가능의 상처를 남긴 데이비에겐 ‘자신’의 평안과 안정, 그러니까 죽기 전에 ‘자기’ 자식을 보고 ‘자신’이 후회할 여지 없이 삶을 마무리 짓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여태껏 데이비를 두려워하며 도망 다녔던 리지가 본성을 드러낸 그에게 주눅 드는 대신 참았던 분노를 터뜨리면서 당신은 프랭키의 아빠가 아니며 이제 아이에게는 ‘다른 아빠’가 있다고 외치는 장면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며 프랭키를 입에 올리는 자넷과 데이비에게 맞서느라 한 말이겠지만 실제로도 그닥 틀린 말은 아니라고 느껴져서였다. 프랭키가 아빠에게 쓴 편지를 읽고는 아이가 좋아할 만한 선물을 고르고, 아이의 식습관에 맞추면서 원하는 것들을 함께해 주는 ‘남자’야말로 프랭키의 ‘아빠’ 자리에 더 적합한 사람일 테니 말이다.
여기에서 의미 깊게 느껴졌던 부분은 프랭키가 ‘남자’와 함께 보내는 시간들 중 ‘해마’의 이미지가 여러 번 사용된 것으로, 수컷이 새끼를 낳는 해마가 아버지, 혹은 ‘부성애’의 은유로 쓰였다고도 해석될 수 있을 듯하다. 프랭키는 남자와 함께 보낸 마지막 밤 '다시 올 것인지'를 육성으로 물으며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자신의 실제 목소리를 들려줄 뿐 아니라 자기가 만든 해마 모형을 그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친부에 대한 사실을 아이가 이미 알고 있었음이 영화 마지막에 밝혀진다는 점에서 프랭키가 모든 정황을 알고서도 ‘남자’를 자신의 아버지로 ‘인정’하며 ‘선택’한 것이라고 이해할 만한 대목이다. 리지가 데이비에게 소리쳤듯 실제로 프랭키에게 새로운 ‘아빠’가 생긴 것, 그러니까 ‘내’가 아니라 ‘상대’를 위한 정성과 노력으로 쌓아 올린 애정과 신뢰가 진정한 연계와 연대, ‘혈육’이라는 끈보다 더욱 두텁고 소중한 ‘가족'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생각한다. ‘척’을 하는 가짜로 시작했을 망정 ‘거짓’은 아니었던 진심이, 사랑과 소통, 이해와 배려 안에서 결국은 ‘진실’이 된 셈이다.
사랑은 결국 상대에게 ‘귀 기울이는’ 일이리라는 생각을 영화를 다시 보는 내내 하게 되었다. ‘귀가 들리지 않는’ 아이에게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리지와 할머니, ‘남자’와 마리를 통해 어떤 방향 제시를 얻은 듯한 느낌도 함께 들었고...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말’이 오고 가지만 막상 의미 있는 ‘소통’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 사회를 살며 진정한 생각과 마음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절실히 느끼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프랭키와 나란히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평온하고 다정한 침묵을 만끽하는 리지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누군가에게 깊은 바다까지는 되어 주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함께 바다가 보이는 곳에 앉아 조용히 곁을 지켜 주는 사람은 될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하게 된다. 추석을 보내고 난 후의 모든 시간에도 상대에게 조용히 귀 기울이며 진정한 소통을 이루는 잔잔하고 아름다운 순간들이 이어지시길, 또한 모두가 아프지 않고 평안히 일상으로 돌아오셨기를 마음 다해 기도한다.
P.S. 별 생각 없이 영화를 틀었다가 "마리"가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울컥 눈물이 나와서 스스로도 조금 놀랐다. 그동안 피쉬 앤 칩스를 먹을 때마다 마음이 가득 차는 듯했던 것도 그녀가 인심 좋게 담아 주던 영화 속 음식이 떠올라서였던 모양이다. 헐리우드 스타가 된 제라드 버틀러의 ‘리즈 시절’(개인적으론 성공할수록 인지도와 매력이 반비례한다는 생각으로... 아쉬움을 느끼게 되는 배우이다)과 훌륭한 배우인 에밀리 모티머의 신인 시절을 볼 수 있다는 묘미도 있지만, 이 영화의 VVIP는 역시 '마리'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