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C의 시선
꽤 오래전에 본 이후 한동안 잊고 있던 한국 영화 “육혈포 강도단”을 이번 편에서 다루기로 딸과 ‘합의’하게 된 것은 최근 유명을 달리 하셨음을 알게 된 배우 김수미 씨가 출연했던 몇 편의 영화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육혈포 강도단”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이 영화에서 코믹 연기의 달인으로 불리는 그의 ‘유쾌한’ 연기를 감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일용 엄니”라는 이름으로 대변될 만큼 웃음과 눈물이 교차되는 역할에 능한 그의 연기의 진면목을 접할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말이지요. ‘평균 연령’ 65세인 세 명의 할머니가 – 개봉 당시였던 2010년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요즘 사람들의 기준으론 그 나이의 여성을 ‘할머니’라고 부르는 것이 조금 어색한 일이기는 하지만 –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총을 든 범법자‘가 되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을 보다 보면 여성 영화의 고전 중 하나인 “델마와 루이스(Thelma & Louise)”의 장면들이 문득 스쳐 지나가기도 합니다.
화장실 청소, 김치 공장 직원, 기계 수리 등으로 생계를 이어 가는 “정자,” “영희,” “신자”라는 이름의 세 할머니는 평생 속만 썩이다 죽은 남편들이 남겨 놓은 곤궁한 상황 속에서도 죽기 전 함께 하와이로 여행을 떠나겠다는 공통의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여행 경비 “837만원”을 모으기 위해 자신들이 개발한 기이한 방법으로 – 동네 마트에서 함께 모의해 물건들을 훔쳐 낸 후 그것을 골목에서 ‘경매’를 통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 목표했던 금액을 모으기까지 8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으나, 동전까지 포함된 현금을 싸들고 의기양양하게 찾아간 여행사에서는 여행을 위한 경비 납부가 은행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말을 전해 줍니다. 그 말을 듣고 경비를 입금하러 갔던 은행에 하필 강도가 들면서 입금 직전의 돈을 강탈 당하는 이들은, 감당하기 힘든 허탈감은 물론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자식들로부터의 구박 등 ‘팍팍한’ 현실에도 다시 직면하게 됩니다.
궁리 끝에 자신들의 돈을 훔쳐 간 강도를 직접 잡겠다며 찾아 나선 그들이 우여곡절 끝에 만나게 되는 것은 범행에 참여는 했지만 공범으로부터 배신 당하고 빈털터리 신세로 남겨진 “방준석”입니다. 돈을 다시 찾을 가능성이 없음을 깨닫고 모두가 실의에 빠진 가운데 지병인 암이 폐에까지 전이되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 정자는, 강도 당한 돈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은행으로부터 자신들의 돈을 훔쳐서라도 받아 내자는 제안을 합니다. 준석의 약점을 이용해 협박을 가하며 자신들의 ‘은행 강도’ 모의를 돕도록 만든 이들은 실제로 은행에 찾아가 잃어 버린 금액만큼 도로 내놓으라며 강도 행각을 벌이고, 출동한 경찰에게 체포될 상황에서도 전후 사정을 듣고 동정심을 갖게 된 ‘인질’들의 도움으로 현장을 벗어나 공항까지 가는 데 성공합니다. 영화의 중반쯤 밝혀지듯 그들이 그토록 하와이에 가기를 갈망했던 것은 젊은 시절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남편이 입양 보낸 아들을 찾고 싶어 하던 정자 때문으로, 공항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영희와 신자가 자신들이 그녀의 벌도 대신 받을 테니 친구만은 하와이로 보내 달라고 인질극까지 벌이며 간청하지만, 결국 정자의 설득으로 사살 직전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체포되고 말지요.
저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흐름 중 중심 내용을 이루는 은행 강도 행각보다 초반에 잠깐 등장하는 수퍼마켓 절도 장면을 보며 ‘걸리는’ 부분이 더 많았는데, 영화를 처음 보았을 당시엔 아무리 간절한 바람이라고 해도 저렇게 ‘야비하고 치졸한’ 방식으로 여행 경비를 모으는 것이 옳은가 하는 반감이 그 ‘걸림’의 주를 이루는 것이었다면 이번에 다시 보면서는 그것이 어쩌면 코믹한 이야기를 구성하기 위한 가벼운 전개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에 기반한 실감 나는 스토리 라인일 수도 있으리란 생각으로 갖게 된 ‘걸림’이었습니다. 어떤 이유로도 사회 질서를 파괴하고 타인에게 위해가 되는 범죄가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지난 8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기초생활 수급비로 생계와 반지하 방 월세를 해결해야 하는 지난한 삶 속에서 여행 경비를 따로 모은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을 그들의 입장을 생각할 때, 대안이 전혀 없는 이들을 향해 ‘올바른’ 삶을 살지 않는다고 무조건 비난하며 손가락질만 하는 것도 그다지 온당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을 테니 말이지요.
영화의 제목에 포함된 단어 “육혈포(六穴砲)”는 한자어 뜻 그대로 탄알을 넣는 구멍이 여섯 개 있는 리볼버(revolver)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주인공인 세 여성이 준석으로부터 빼앗은 권총으로 은행 강도 일을 벌인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겠지만 사실 저는 이 리볼버를 생각할 때마다 영화 “디어 헌터(The Deer Hunter)”에 등장하는 “러시안 룰렛(Russian Roulette)” 장면이 먼저 떠오릅니다. 굳이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기도 거북한, 흔히 그 뒤에 ‘게임’이라는 말이 붙곤 하는 러시안 룰렛은 6발의 장탄수를 가진 리볼버(육혈포)에 1개의 총알만 넣고 실린더를 돌린 뒤 서로 돌아가며 자기 머리에 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복불복’ 식 결투이지요. 1937년 경 처음 사용된 명칭이라는 ‘러시안’ 룰렛은 제정 러시아 말기 귀족들이 결투의 방법으로 사용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살고 죽는” 문제가 순전히 ‘운’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이것을 극히 비상식적이고 반인륜적인 행위의 전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 제목에 등장하는 “육혈포”와 “러시아 룰렛”을 – 눈을 가린 채 진행하는 - 연결해 생각을 이어 가다 보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벼랑 끝에 몰려 있는 사람들의 삶이 이런 방식으로 이해될 수도 있겠다는 데 생각이 멈춥니다. 어느 구멍에 총알이 들어 있는지 눈을 가린 사람이 알 수 없듯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들로 ‘죽음’과도 다르지 않은 절박한 처지까지 내몰리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요. 영화의 주인공인 그들 셋은 자신을 무시하고 외도를 일삼던 남편이라는 ‘과거,’ 엄마인 자신을 원망하거나 구박하는 자녀라는 ‘현재’에 놓여 있는 사람들로, 만약 이들이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기본적인 것들을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면 애초 ‘하와이’로의 여정이라는 꿈을 위해 이토록 처절한 길을 택할 필요는 없었을 테지요. 물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은 ‘운명’이나 ‘복불복’과 같은 개념을 인정하지 않지만, 모든 상황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찾는 영적 시각이 갖추어지지 않은, ‘운(luck)’이나 ‘요행(fortune)’과 같은 것들에 의존하는 세상적 상식에서는,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의 답답하고 억울한 삶, 그리고 반대편에서 그런 이들과 전혀 상관없이 원하는 모든 것을 누리며 즐기는 전혀 다른 삶의 모습을 볼 때, 상대를 가리지 않는 ‘눈먼’ 운명이 만들어 낸 결과들의 단면으로 여겨질 수 있겠다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조금 ‘따뜻한’ 관점에서 들었던 생각으로 이 작품에 대한 소감을 훈훈하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할머니’라는 호칭과 관련해 떠오른 단상이 유효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희가 한국에 살던 20년 전만 하더라도 음식점이나 상점 등에서 일하시는 중년 여성들을 부를 때 “아줌마”라는 호칭을, 그리고 잘 모르는 사이인 나이 드신 여성들에게는 “할머니”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타인인 중년의 여성에게 “이모”라는 호칭을 많이 사용하면서 “아줌마”라는 - 잘못하면 멸칭처럼 들릴 수도 있는 - 단어가 거의 쓰이지 않음을 여러 매체를 통해 목격합니다. 길에서 마주친 모르는 노년의 여성에게 주저 없이 “어머니”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되고 말이지요. 이처럼 반드시 가족이나 친척이 아니더라도 정감 있게 느껴지는 호칭이 통용되는 사회 분위기는 상당히 고무적인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나이에 대한 인식의 변화 때문에 60대의 여성도 “할머니”라고 불리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잘 모르는 타인이라고 하여 연령의 기준으로만 호칭을 정하지 않고 가족끼리 부르는 관계적 명칭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전반적 흐름이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 더 가까워지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섞인 희망까지 가능하게 하니까요. 생전의 김수미 씨가 자신의 연기 인생을 통틀어 가장 만족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는 이 영화를 다시 보는 동안, 이런 생각 덕분에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질 수 있었습니다.
딸 J의 시선
강효진 감독의 2010년 작 [육혈포 강도단]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라는 유명한 말을 저절로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이다. 인간에 대한 애정과 안쓰러움, 공감과 페이소스(pathos)를 기저로 할 때만 탄생할 수 있는 웃음을 다룬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영화는 고단한 삶을 함께 버티며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사이가 된 60대의 세 친구, "정자"(나문희), "영희"(김수미), "신자"(김혜옥)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귀하게 자란 ‘공주님’ 티가 나는 막내 신자, 사포처럼 거친 입담을 가진 영희, 얌전하고 차분해 보여도 누구보다 강단 있고 열정적인 정자는 서로 다른 성격과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함께 동네 마트에서 태연히 물건을 털고 다닐 정도의 탄탄한 팀워크 또한 자랑한다. 각자의 사정으로 힘들게 살고 있는 세 친구는 이렇게 ‘소소한’ 절도를 통해 훔친 물건들을 근처 노인들에게 경매로 팔아 현금화 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꿈인 ‘하와이 여행’을 위한 경비를 차곡차곡 모아(?) 나가는 중이다.
그렇게 8년이라는 시간을 거친 끝에 드디어 여행에 필요한 837만원을 손에 쥔 그들은 여행사에 돈을 입금하기 위해 은행으로 향하지만, 하필이면 은행 직원이 입금 확인 도장을 찍기 전에 강도들이 들이닥치면서 가져갔던 돈을 모두 빼앗기게 된다. 이로 인해 정자와 영희, 신자는 힘들게 모아 온 돈 전부를 잃었음에도 은행으로부터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는 어이없고 기가 막힌 상황에 놓이고, 비싼 상담 비용을 청구한 변호사조차 별 도움이 되지 않자 결국 자신들의 힘으로 은행 강도를 찾기 위해 나서게 된다.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영희의 아들 "경식"의 도움으로 범인에 대한 단서를 얻은 그들이 은행 강도 중 하나였던 "준석"(임창정)을 가까스로 찾아내지만, 훔친 돈을 혼자 가지고 달아난 공범에게 뒤통수를 맞은 준석에게도 상황은 그저 암담할 뿐이다.
막다른 길을 마주하며 실망하던 찰나, 갑자기 정자가 자신들도 똑같이 은행을 털어 여행 경비를 ‘되찾자는’ 무모한 계획을 제의한다. 이 나이에 감옥 갈 생각이냐며 기겁하는 영희와 신자에게 "어차피 사는 게 감옥"이라며 자조하는 정자는 그동안 숨겨 왔던 자신의 암 진단 결과까지 밝힌다. 처음부터 다시 여행 경비를 모으거나 다른 대안을 강구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적 여유가 없는 정자의 의연한 결단에 결국 영희와 신자도 뜻을 모은 뒤 세 사람은 경험자(?)인 준석을 통해 은행 강도가 되기 위한 ‘훈련’을 시작한다. 그 나이에 무슨 강도짓이냐며 처음엔 비웃던 준석도 이들의 진지함에 점점 더 진심이 되어 가고, 만반의 준비를 마친 세 친구는 그들의 돈 837만원을 ‘되찾기’ 위해 준석에게서 뺏은 총 한 자루를 든 채 다시 문제의 은행으로 향한다.
빈곤과 어려움에 허덕이던 약자가 사회의 거듭된 외면에 지쳐 결국 인질극을 포함한 극단적 범죄를 저지른다는 설정은 1975년 작 [뜨거운 오후](Dog Day Afternoon)나 2002년 작 [존 큐](John Q), 2016년 작 [머니 몬스터](Money Monster) 등의 여러 영화에서 이미 다양하게 다루어진 주제이다. 그럼에도 [육혈포 강도단]이 새롭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 작품 속 ‘범죄자’들이 모두 60대 여성이기 때문일 텐데, 노년의 배우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들이 예전에 비해 많이 늘어난 지금에도 ‘노년의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강도단’이라는 소재는 역시 흔하지 않다. 이런 류의 범죄 영화에서 극중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액션’이나 경찰들과의 적대적 ‘대치’ 같은 요소를 노배우만으로 이어 가긴 어려운 것이 사실이며, 실제로도 이 작품의 주요 설정인 은행 강도 사건 자체는 영화의 러닝타임 중 그닥 많은 시간을 차지하지 않는다. 나름 ‘체계적’인 훈련을 받기는 했음에도 세 친구의 강도짓은 허술하기 짝이 없고, 구급 대원으로 위장해 은행으로 침투한 "김형사"(김희원)를 정자가 제압하는 등의 수완과 순발력이 발휘되기는 하지만 이들이 끝까지 경찰의 추격을 피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작품은 보통의 범죄 영화들처럼 ‘은행 강도’라는 범죄가 시사하는 위법성이나 그 사건에 내재되는 스릴보다는 노인이, 그것도 ‘할머니’가 잘못을 저지른다는 ‘예상 밖’ 설정의 위범(違犯) 그 자체에 집중한다. 보통 ‘할머니’를 떠올릴 때 연상되는 약하거나 무력한, 혹은 ‘무해한’ 이미지와 정반대로 펼쳐지는 상황을 병치(juxtaposition)함으로써 그에 의해 생성되는 '충격 효과'를 노렸다고도 볼 수 있겠다. 영화의 가장 큰 코미디적 요소 역시 신자가 공들여 수놓은 권총 덮개와 꽃무늬 천으로 만든 복면, 오토바이를 타고 신들린(?) 운전 실력을 보여 주는 정자의 모습처럼 반전이 내포된 장면들을 통해 제시된다.
하지만 범죄의 주체가 할머니들이라는 설정은 전형적인 ‘하이스트’(heist) 무비의 공식에 신선함을 주려는 가벼운 ‘기믹’(gimmick) 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노인, 더 정확하게 ‘할머니’라는 주인공들의 정체성이 이들의 범죄에 필수적일 뿐 아니라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로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범죄를 계획하는 이유부터가 ‘할머니’라는 그들의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는데,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들이 은행 강도가 되는 이유는 하와이 여행이라는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정자, 영희, 신자는 각기 다른 사정으로 힘든 현실을 견디고 있지만 이들의 고통은 ‘노년의 여성’이라는 기본적 전제를 공통분모로 삼는다. 젊은 시절의 가난으로 원치 않게 아들을 미국에 입양 보낸 뒤 가족 없이 기초생활 수급자로 살고 있는 정자, 바람끼 많은 남편이 사망하자 이제는 이혼한 딸의 원망을 들으며 손주를 돌봐야 하는(그나마 ‘효자’인 듯한 아들은 교도소 신세인) 영희, 남편이 일찍 죽은 뒤 외아들에게 재산을 모두 물려 주었다가 아들 부부에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며 사는 신자 등 이들 모두는 당시의 사회, 문화적 기준과 규격에 따른 삶을 살아 낸 세대의 여성들(다시 말해 ‘할머니’들) 고유의 문제와 시련을 안고 있는 셈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들이 꿈꾸는 "하와이 여행"이란 해외여행이 상징하는 호사로서의 의미보다는 ‘엄마’ 혹은 ‘할머니’라는 좁은 정체성에 갇힌 자신의 현실을 벗어나려는 저항의 상징으로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미국으로 입양 보낸 아들에 대한 정자의 그리움과 미안함, 사랑 등이 어느 정도의 이유로 작용했겠지만 영화 내내 이 세 여성이 바라고 쫓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유’이기 때문이다. ‘이 좁은 땅에서’ 너무 오래 살았다는 정자의 독백은 단지 한국이라는 지리적 개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주체적으로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의 삶을 이끌어 나갈 수 없었던 영혼의 갑갑함을 토로하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그들이 그토록 소망하는 하와이, 특히 와이키키 해변이 영화 안에서 오래된 달력의 조그만 그림을 통해 꿈의 공간처럼 어렴풋이 그려지는 것과 달리, 공항으로 도주한 세 주인공이 끝까지 쫓는 직접적 목표가 ‘비행기’라는 사실도 비슷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세 여성이 시종일관 추구했던 바가 종착지나 목표점 자체보다는 ‘하늘을 나는’, 다시 말해 ‘자유를 누리는’ 여정이라는 뜻에서 말이다.
그리고 이들의 약점이자 치부였던 ‘할머니’로서의 정체성은 영화 속 그들의 범죄 안에서 도리어 ‘강점’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정자, 영희와 신자는 자신들을 무시하고 얕보는 경찰들의 허점을 이용해 여러 번 위험한 상황에서 빠져 나가고, 훔친 물건을 팔며 ‘도움’을 주었던 동네 노인들의 협조로 턱밑까지 쫓아온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가기도 한다. 은행을 터는 와중에도 주인공들은 집에 가스불을 켜고 나온 것 같다는 주부, 아이를 유치원에서 데려올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젊은 아빠의 사정을 배려해 인질을 풀어 주는 등 뭔가 엉성하고 ‘할머니’스런 면모를 보이지만, 오히려 이를 통해 남은 인질들과 공감대를 쌓으며 탈출에도 도움을 받게 된다. 은행 강도가 할머니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할머니들이 오죽했으면 저랬겠냐"고 수군대며 경찰을 비난하고, 결국 현장을 지휘하던 "노 반장"(김광규)은 유교 사상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군중의 따가운 눈초리를 의식해 대응의 강도를 낮추기까지 한다.
‘범행’의 과정에서 이들 셋이 접하게 되는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들 대부분이 주인공들의 범죄에 가담하거나 공조한다는 사실 또한 의미 있게 다가온다. 신자가 울먹이며 자신들의 사정을 설명하자 다른 인질들이 은행을 향해 대신 분노를 표출하고, 그들 중의 두 젊은 여성은 주인공들의 복면과 옷을 대신 입어 경찰의 시선을 돌림으로써 세 친구가 은행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동네 경로당 안에서 경찰들을 따돌리고 도망가던 셋은 공연을 마치고 떠나던 트로트 가수의 차를 막무가내로 빼앗지만, 그녀는 이들의 사정을 들은 뒤 직접 차를 운전해 그들을 공항까지 데려다 줄 뿐 아니라 위로하는 듯한 노래를 불러 주기도 한다. 영화의 ‘최종 빌런’인 김형사(준석 패거리를 사주한 은행 강도 사건의 진범인)가 공항에서 영희와 신자를 협박하며 "쓸모 없는 할망구"라 조소하자 어디선가 날아온 준석이 그를 제압하며 “뭐가 쓸모 없는데!”라며 화를 내기도 하고 말이다.
지나치게 낭만적인 묘사로 비춰질 수도 있겠지만, 소외되고 무시당하던 주인공들이 ‘자신’의 꿈과 욕망, 주체적 목표를 향해 능동적으로 나아가는 여정에 많은 이들이 연대하며 유대를 맺는다는 설정은 어찌 됐든 아름답게 느껴진다. 노년기에 접어들었다는 이유로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기를 거부하는, 사회는 인정하지도 깨달으려고도 하지 않는 자신들의 가치와 가능성을 되찾기 위해 주인공들이 과격하게나마 내어 뻗은 손을 가만히 맞잡아 주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질서’가 엿보인다. 이들의 화합을 지켜보고 있자면 이 세 여성의 ‘탈선’이 오히려 사회를 이상적인 궤도에 다시 올려놓은 듯하다는 생각도 든다.
인간의 가치를 그 안에 내재하는 존엄성과 잠재력 대신 ‘경제적 생산성’으로만 측정할 때 제일 먼저 사회에서 소외되는 구성원들이 누구일까 생각하게 된다. “내가 어딜 봐서 할머니냐”며 화를 내는 영희의 반복된 대사도 조금은 다르게 다가오고 말이다. 사랑과 은혜에 제한된 기간이 없듯 각 영혼의 가치와 가능성 또한 끝을 논할 수 없음을 모두가 기억한다면 이 세 주인공처럼 난폭한 방식으로 ‘나 자신’을 지켜야 할 필요는 없어지지 않을까 싶다.
P.S. 몇 주 전 우리 곁을 떠난 김수미 배우를 기억한다. "뭐 저런 할머니가 있냐"며 쑥덕대는 사람들에게 “이런 할머니도 있거든”이라고 쿨하게 내뱉던, 영화 속 영희와도 꼭 닮은 그녀의 경쾌하고 열정적인 모습이 벌써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