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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Aug 16. 2018

청소년이 '태극기'입니다.

청소년들이 만든 8.15 광복절

그랬다.

청소년이 나라를 사랑하고 역사를 기억해 준다면 나는 그들을 '태극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8.15일 광복절인 오늘 그들은 실로 '태극기'였다. 여느 국가대표 선수의 가슴에 새겨진 태극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청소년.

그들을 태극기로 만드는 역할은 누가 해야 할까? 광복절이니 집에 태극기를 달아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들의 역할일까? 또는 우리 딸, 오늘 광복절인데 태극기 달아야지 하시는 부모의 역할일까? 과연 역사의식을 가르치는 교육자는 누구여야 할까? 내 생각에 그것은 모두의 몫이다. 그리고 계층을 대표하는 사람들의 의무다.


우리는 늘 그랬다.


말만 했다. 태극기만 달았다. 아니 태극기 대신 휴식을 택한 사람들도 많다. 대체 요즘 젊은이들은 애국심이 부족해. 그 시대를 살아봤어야지. 그렇게 말하는 우리 사회가 과연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보편적인 채널을 제공했는지. 조심스럽게 묻고 싶다.

2013년 광복절 아리랑 플래시몹
2014년 문학야구장 각시탈 플래시몹
2015년 광복절 역사연극 플래시몹

그래서 그러한 채널을 만들기 위해 6년을 시도했다. 2013년 첫 해, SNS에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모집하여 '아리랑' 플래시몹을 진행했다. 이듬해는 문학야구장에서 초청받은 필드 단상에서  애국가를 합창하고 '각시탈'(당시 모 방송에서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독립운동을 주제로 했던 드라마가 '각시탈'이었다)을 일제히 쓰고 응원했다. 3년 후에는 일제시대 복장을 코스프레하여  시민들에게 '도시락 폭탄'같은  물풍선을 던지며 역사연극을 공연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청소년.  우리 아이들의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내게 광복절은 늘 한 해의 전환점이자 청소년들의 무한한 잠재력을 직접 지켜보는 행운의 날이기도 했다.


그렇게 6년째 맞이한 광복절.  다시 청소년들은 내게 제안을 했다.

"대장님, 이번 광복절에는 저희들이 직접 태극기를 그려보고 싶습니다."

"붓으로 그림을 그리겠다고?"

"아뇨, 손으로요..."


'청.바.지.동아리'라는 청소년 단체를 운영하면서 그들의 이야기에 반대를 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또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실패를 해도 그들에게는 그 자체로 값진 경험이니까.


"좋아. 해보자. 대장님이 해야할 일은 뭐지?"


그렇게 나는 그들이 만들 8.15  광복절을 위해 청소년수련관을 빌렸다. 광복절이 휴일이라 대관이 안된다는 걸 사정사정하며 네 군데 청소년 시설기관에서 헛탕치고 마지막으로 부탁한 곳이었다. 다행히 허락이 떨어졌다.


그렇게 광복절은 청소년들이 만들고 청소년들이 누렸다. 150명의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고 그들의 엄지와 검지 그리고 손바닥으로 현수막에 태극기를 그렸다. 마치 점화처럼.

태극기를 들어보이는 순간 나는 태극기보다 아이들의 표정에 시선이 쏠렸다. 그리고 이내 난 착각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태극기를 들고 있던 청소년 150명 모두가 태극기로 보였다.


태극기를 만들고 이어서 역사퀴즈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저마다 손을 들고 1945년을 외치고 그들의 입에서 방탄소년단 대신 안중근 의사의 이름을 외쳤다. 물론 오답을 외치고 억울하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는 일도 많았다.


청소년에게 오늘 광복절은 개학을 하루 앞둔 꿀같은 휴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들은 어느 동조 압력도 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프로개발 아이디어 어느 곳에도 나의 의견을 심어 넣은 적은 없다. 그냥 그들의 생각에서 만들어지는 것을 지켜봤을 뿐이다.


결국, 그들은 아주 멋진 광복절을 만들어 냈다. 그 어떤 다큐보다도 진지했고, 그 어느 예능보다도 유쾌했다. 두 명의 회장과 24명의 일꾼단들이 주말마다 모여 머리를 맞댄 결과였다.


그렇게 우리는 청소년들만의 '광복절'을 보냈다.

그들은 모른다. 어른인 내가 왜 두달치 용돈을 부어가며 굳이 그들에게 무대를  만들어 주는지, 왜 뒤에서 그저 지켜만 보는지, 왜 아무도 하지 않는 그다지 나에게 도움되지 않는 일을 하는 지 그들은 모른다.


지금은 졸업을 앞둔 6년전의 청소년들이 그랬고 5년전의 청소년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이 사회에 나가게 되면 알게 된다. 대장님이 왜 무모한 시도를 했는지. 결국 창의적이고 젊은이다운 사회 당당한 한 사람의 모습이 되어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라는 걸 알게 된다.


역사는 청소년에게 성장에 있어서 근간이다. 우리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들의 역사를 만드는 데 필요적 학습이다. 대단한 걸  원하는 건 아니다. 그냥 그들의 기억속에 역사가 습관화 되어주기를 또 그들의 삶에 자기 전통이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쉽게 말해  그냥 지나가면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들기를 그저 바랄 뿐이다.


오늘 나는 그들이 만든 태극기를 교수실로 가져왔다. 공간이 좁아 이 대형태극기를 어찌 전시할 지 앞으로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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