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신혼여행>을 읽고
모처럼 좋은 책, 좋은 작가를 만난 것 같다.
장강명 작가의 에세이 <5년 만에 신혼여행>을 읽었다. 책을 읽던 중간에 '아, 이 사람처럼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든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물론 이전에도 분명 있었을 것이고, 내가 기억 못 하는 것뿐이겠지만. 아무튼, 이런 느낌은 되게 오랜만이었다. 그간 '정말 잘 썼다'하는 글들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게 '따라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지진 않았으니까. 아마 분야의 영향이 큰 것 같다. 내가 주로 읽는 책의 분야는 크게 '사회과학'과 '소설'로 나뉘는데, 사회과학 서적은 굳이 따라 쓰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분야고, 소설은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라 생각했다. 반면, '에세이'란 분야는 비교적 만만하다. 비유하자면, 연예인이 아무리 예쁘고 좋아도, 결국 사귀고 싶다는 마음까지 나아가는 사람은 그래도 만날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있는 주변 사람인 것처럼. 나는 '에세이'라는 내가 만날 수 있는 사람 중에 '장강명' 혹은 '5년 만에 신혼여행'이라는 이상형을 만났던 것이다.
그녀(장강명)를 만나게 된 경위는 이렇다.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 중에 '최성운의 사고실험'이라는 대담 채널이 있는데, 그곳에 김새섬씨가 출연한 회차가 있었다. 대담의 마지막쯤에 김새섬씨 남편되는 분의 글을 최성운 PD가 낭독해 주었는데, 꽤나 감동적이었다. 그 남편 되는 분이 바로 장강명 작가였고, 최성운 PD가 낭독한 그 글이 바로 <5년 만에 신혼여행>이었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나는 그녀(장강명)를, 그녀의 연인(김새섬)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다. 감사하다. 김새섬님에게도, 최성운 PD님에게도.
그의 에세이가 내 이상형인 까닭은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 유쾌하고 담백한데,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꽤나 깊은, 통찰력 있는 이야기를 유쾌하고 담백하게 풀어낼 수 있는 능력, 그게 바로 글쓰기에서 내가 가지고 싶고 추구하는 것이었다. 조금만 깊게 들어가려 하면 내가 읽어도 오글거려서 참을 수가 없고, 담백하게 쓰자니 그냥 겉핣기만 되는 식이었다. 그 경계를 지키기가 원래 참 어려운 것 같긴 하지만, 그래서 나는 그런 것들을 추구하고 동경했다. 웃긴데 우습지는 않고, 편한데 만만하진 않고, 소박한데 없어 보이진 않고, 착한데 바보 같진 않은(이건 좀 다른가..?) 그런 것들. 그런데 이렇게 나열해놓고 보니, 그냥 내 욕심인가 싶기도 하고. 웃긴데 우습게 보이기는 싫고, 편한데 만만해 보이기는 싫고, 소박한데 없어 보이긴 싫고 등등.. 틀린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난, 내가 봐도 욕심이 많다. 온갖 좋은 것들은 다 취하고, 따라올 수 있는 나쁜 것들은 다 걸러내고 싶어 한다. 세상엔 그렇게 순백의 것들만 있지는 않은데 말이다. 편안하게 보이고 싶다면, 어느 정도 만만하게 보일 각오도 해야 한다. 난 그러진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그게 내 잘못인가? 편하게 해 주면 만만하게 보는 그 사람들이 문제 아닌가? 그런 사람들에게 뭔가 자극받아서, 편한데 만만하진 않은 사람이 되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하나? 그건 아니다.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돌아갈 가능성이 더 크고, 그걸 어느정도는 각오해야 한다는 말이다. 장강명 작가의 에세이도 누군가에겐 그냥 가벼운 글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나처럼, 누군가에겐 이상형인 글(유쾌하고 담백한데,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맞다. 이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내가 편한데 만만하지는 않은 그런 추구미를 좇을 때, 나를 그냥 만만하게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딱 적절히 내가 원하는 대로 '편한데 만만하지는 않게' 봐주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만 충실해도 인간관계는, 내 삶에 있어서는 충분하다.
흠. 분명 책 소개 또는 추천 글을 쓰고자 했는데, 쓸데없는 말이 길어졌다. 다시 본분으로 돌아와, 내가 인상 깊었던 내용들을 조금 나누고자 한다.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에 대해 "누가 보지만 않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말했다. 내 가족관은 기타노 다케시보다 훨씬 건강하다. 나는 내 가족을 아무도 내다 버리고 싶지 않다. 다만 그들을 서로 만나게 하지 않을 뿐이다. 그들이 서로를 대형 폐기물로 여기지 않게 하기 위해.
-30~31쪽
약간의 부연 설명을 하자면, 장강명 작가의 부모님이 새섬님과의 결혼을 반대했다고 한다. 그리고 에세이를 쓴 시점까지는 새섬님과 장강명 작가의 부모님이 서로 얼굴을 보지 않는 사이로 남아있었다. 이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이 꼭 양가 가족의 결합으로 매끄럽게 완성되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글로 푼 내용이다. 나는 이 부분이 왜 이렇게 유쾌했는지 모르겠다. 기타노 다케시처럼 나도 조금은 불온한 가족관을 가지고 있어서 그럴까. 물론 나도 장강명 작가처럼 내 가족을 아무도 내다 버리고 싶지 않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가족으로부터 내다 버려지고 싶은 마음이 가끔은 든다. 그리고 아직까지 내다 버리고 싶단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도 어쩌면 내가 대단히 정이 많아서라기 보단, 내 가족이 짐짝처럼 느껴지는 힘겨운 상황에 처해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예전에 가난에 대한 에세이를 읽었던 적이 있는데, 가난할 때 제일 힘든 최악의 상황은 부모님이 갑자기 병에 걸려 아픈 상황이라고 한다. 인생이 All Stop 된다고 한다. 나도 상상을 한번 해봤는데, 꽤나 버거웠다. 그 상황 속에서도 나는 '아무도 내다 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 이후로 부모님께 건강만 하라는 말을 자주 담는다. (하하. 엄마, 아빠 미안해)
이렇게 생각하면 가족이란 존재는 매우 양면적이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단단한 울타리이자 버팀목인데, 동시에 그 무엇보다 무겁고 끈적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버거운 짐짝이자 평생의 저주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음. 지금 나의 가족이 그렇지 않다는 것에 매우 감사함을 느낀다.
+) 결혼과 양가 가족의 결합에 대한 내용도 참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아 좋았다. 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하고 그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것뿐이지, 그 사람의 가족까지 선택하고 싶진 않다. 그 가족들에게 내가 잘 보여야 하는 것도, 내 가족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잘 보여야 한다는 것도 '굳이?' 싶다. 마치 묶음 상품을 강제당하는 느낌이다. 나는 고래밥만 먹고 싶은데, 왜 꿀꽈배기랑 사또밥까지 함께 사야만 되냐는 말이다. 물론 서로가 잘 보이면 좋은 일이지만, 그게 어렵다면 구태여 나도 크게 노력하기보단, 장강명 작가처럼 서로 안 보는 일을 택할 것 같다.
선글라스를 쓴 채로 점점 붉게 물들어가는 해를 바라보고 있으니 정신이 다시 멍해졌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왜 사람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다니는지, 왜 자전거를 타고, 왜 수십 킬로미터를 달리며 러닝하이를 느끼려 하는지.
사람들은 멍해지려고 그런 일들을 하는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건,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마음을 피로하게 만든다. 생각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대신 괴로움에 빠뜨린다. 이것이 선악과의 정체다. -122~123쪽
'생각'을 '선악과'로 연결시키는 관점은 정말이지 흥미롭고, 통찰력 있는 부분이다. 우리는 생각을 통해 인류 문명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허구들을 만들어 냈고, 그 허구들 속에서 행복과 불행을 끊임없이 저울질하게 됐다. 어쩌면 생각하는 능력이 조금 퇴화했더라면, 인류는 조금 더 행복했을지 모른다. 아니, 행복을 조금 더 쉽게 느꼈을지 모른다. 생각을 깊게 안 해도 된다면, 지금 당장 배부르고 등 따스우면 그게 행복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지금 당장 배부르고 등 따스워도 '이걸 먹지 않고 저걸 먹었더라면 배도 부르고 돈도 좀 아끼지 않았을까' 하는 따위의 생각으로 지금의 행복을 훼손한다.
나도 생각이 많아 쉽게 피로해지는 사람이란 점에서 더 공감되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숏츠'는 어쩌면 인간을 멍해지게 만들 수 있는 아주 쉽고 강력한 수단으로써의 축복이 아닐까? 끊임없이 숏츠를 보며 멍해지는 내가 싫어 인스타를 삭제했는데, 부끄럽게도 네이버 클립 숏츠를 가끔 보게 된다. 근데 이제는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조금은 덜어도 되겠다. 가끔은 멍해지는 것도 필요하니까. 라고 자기 합리화를 해본다.
인간은 가치를 좇는 존재다. 그리고 가치를 좇는 행위 자체가 세상에 폭력적인 질서를 부여한다. 제멋대로 세계를 가치 있는 것, 가치가 덜한 것, 가치 없는 것으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그런 질서는 필연적으로 구속과 억압을 만들어 낸다. 모든 광명은 반드시 그림자를 만든다. 아니, 이건 적절치 않은 비유인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종이에 데생을 할 때 펜으로 어둠을 그려서 빛을 표현하듯, 그림자가 광명을 만들어낸다는 말이 옳겠다. 왜냐하면, 그 모든 가치는 결국 허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구속과 억압을 통해 겨우 그 허구가 현실 세계에 모습을 갖추는 것이다.
- 187쪽
이 부분도 정말 좋아하는 내용 중에 하나. 해방을 좇다가 해방이라는 억압 아래 갇히게 되는 역설,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고자 누군가의 가치를 짓밟는 폭력. 실제로 우리 사회엔 그런 사람이 꽤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가치만이 진짜 가치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은 모두가 다 저마다의 가치 체계를 가지며 살아간다. 정말 생각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그것마저도 그에겐 일종의 가치 체계일 수 있다. 그런데 이걸 기억하기란 매우 어려운 것 같다. 나부터도 내 가치 기준에 맞지 않는 걸 보면 혀를 끌끌 차고 있으니.. 그래도 무언가 가치를 추구하며 살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너무 폭력적인 사람이 되진 않기를 바라본다.
+) 알베르 카뮈는 "정의를 오래도록 요구하다 보면 정작 정의를 탄생시킨 사랑이 소진된다"는 말을 남겼다. 사람들이 항상 마음속에 품고 살면 좋은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좀 더 나은,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분명 짧고 간단히 쓰려했는데, 쓰다 보니 길어졌다. 이제는 글을 너무 각 잡고 쓰지 않으려고 한다. 항상 각 잡고 쓰려다 보니 글 쓰는 게 부담되고, 그러니 시작부터 귀찮고, 결국 자주 안 쓰게 되는 것 같다. 각 잡고 쓰다 보면 좀 더 오글거리는 글이 되는 것도 추가적인 문제다. 담백하고 유쾌하게 쓰려면 무엇보다 글에 힘을 빼야 하는 듯하다. 뭐든지 힘을 빼는 것부터 시작이지 않은가. 노래할 때는 목에 힘부터 빼야 하고, 운동할 때도 너무 힘을 꽉 주면 오히려 안 좋다고 한다.(물론 노래도, 운동도 잘 못한다) 다행히 이번 글은 다른 글에 비해 비교적 빠르고 쉽게 써졌다.
취향에 맞는 것 같다면, 꼭 <5년 만에 신혼여행>을 읽어보길 권한다. 어차피 금방 읽힌다. '최성운의 사고실험'에 나온 새섬님 영상도 정말 좋으니 한 번 보시길.(https://youtu.be/4VYmdlT2Spo?si=70eqWGmmsP0lOrAU) 개인적으로 그 영상을 보고 책을 읽으니, 새섬님의 얼굴이 연상되어 더 실감 나게 읽을 수 있었다.
끝으로 아무런 연은 없지만, 새섬님의 건강을 바라본다. 두 분이 앞으로도 좋은 이야기를 많이 남길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