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걸> 공식 예고편 컷. 독방에 갇힌 김모미가 (보여 주기 위한) 기도를 하고 있다.
<마스크걸> 제목부터 벌써 이겼다. 이걸 어떻게 지나칠 수 있을 것인가. 완벽에 가까운 몸매, 화려한 의상, 프로페셔널한 퍼포먼스, 게다가 찰지게 휘어감는 밀당 멘트까지 방송 시청자들이 '마스크 걸'에 빠져드는 것은 당연하다. 마스크 문제는 '실은 추녀일 것'이라는 상상과 '신상' 관리 차원이라는 상상 중 구독자가 자기 마음에 드는 쪽을 선택하면 그만이다.
그날 그 실수만 하지 않았더라면, 손바닥만 한 마스크를 사이에 둔 팽팽한 역할 연극은 아마도 계속되었을 것이다. 마스크 걸은 그토록 갈망해 온 '관심과 사랑'을 얻고, 시청자들은 '은밀한 판타지'를 얻는, 어찌 보면 아무도 지지 않는 윈윈 게임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익명성'이란 견고한 성벽이 뚫리는 순간, '지는 사람', 곧 루저가 발생하고, 보호막이 사라진 루저의 비루한 맨얼굴이 까발려지는 건 시간문제다. 그것을 막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것인가?
<마스크걸> 공식예고편 컷. 마스크는 마스크고 나는 나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2020)의 김용훈 감독이 동명의 웹툰을 영상화한 넷플릭스 시리즈 <마스크걸>이 지난 8월 18일 공개되었다. 원작의 두터운 팬층과 비밀스럽고 화려한 캐스팅으로 이미 공개 전부터 많은 관심을 모아왔다. 매체의 차이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웹툰의 영상화에 있어서 크고 작은 차이들이 존재하는데, 단순한 설정의 변화나 스토리의 풍성화의 차원이 아니라, 캐릭터 자체의 차이가 느껴진다. 이것은 전체적인 판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변수이기에 일단 여기서는 '드라마'를 기준으로만 보려고 한다.
가끔 장난으로 '완벽한 얼굴과 완벽한 몸매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으면 뭘 선택할래?'라는 질문을 받으면 잠시 고민을 하게 마련이다. 성형수술 비용이 더 크니까 얼굴을 선택할까? 아니지, 몸은 성형하기도 힘들고, 다이어트도 괴로우니 몸매를 선택하자. 상상이지만 치밀한 계산을 하게 마련이다. 주인공 김모미(이한별)는 마치 신의 질문에 '완벽한 몸매'를 선택한 사람처럼, 큰 키와 비율, 아름다운 몸선을 가졌다.
김모미의 이목구비 완성도가 비록 많이 아쉽지만, 유치원과 초등학교 발표회 때 끼를 뽐내는 모미의 얼굴은 꽤나 귀엽다. 학부모님들과 친구들의 환호를 양껏 받은 모미의 얼굴은 예쁘지는 않아도 빛이 난다. 중학교 때 무대에서 모미의 얼굴에서 하이라이트가 꺼진 사건이 발생하고, 고등학교 때는 아예 무대 밖으로 밀려나'일개 관객'이 되면서 안색이 무척 어둡다. 이때였을까? 그녀가 자신만의 은밀한 무대를 찾아 나선 시점이.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자. 모미가 원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가? 미녀가 되는 것인가? 드라마 중간중간에 그녀의 대사나 행동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녀가 '모두에게 사랑받기'를 원했고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외모나 명품, 돈이 아니라, 사랑과 박수와 환호였음을 기억해 보자.
<마스크걸> 공식예고편 컷. 경찰에 연행되어 취재진의 카메라 집중 세례를 받는 모미
2부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주오남의 엄마 김경자(염혜란)다. 그녀는 신혼 초에 남편을 다른 여자에게 빼앗긴 아픔이 있다. 온갖 궂은일을 감내하며 두 식구 생계를 책임지느라, 아들의 내면을 전혀 살피지 못했다. 학원 하나 보내지 못했는데 공부는 잘했다면서 웃는다. 어린 주오남의 외롭고 긴 하루, 두려움, 낮은 자존감,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학교생활 속에서 아들이 무슨 심정으로 공부를 해냈는지 엄마는 알지 못한다.
아기는 성인이 되기까지 수많은 관계들의 성공과 좌절 경험들이 쌓여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한다. 한 사람의 인격이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관계 좌절을 경험해도 회복할 수 있는 탄력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 회복탄력성은 유년 시절 주양육자와의 건강한 애착관계의 형성을 통해 확보된다. 그것은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관계 유산'이다. 누군가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한 아이는 성인이 되어도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인다.
이를테면, 김모미식 화법을 빌자면, "난 아이가 못생겼어도 예쁘다고 말해줄 거야', 즉 거짓말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외모와 상관없이 "너는 나의 예쁜 딸'이라고 말해준다는 것. 아이가 알아야 할 것은 '외모 평점'이 아니라 '나는 사랑받는 딸'이라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잘 생겼든 못생겼든 '무조건적 지지'를 받았더라면 아이 김모미가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다'라는 욕망을 가졌을까. 주양육자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았어도 불특정 다수의 박수와 환호에 갈급했을까. 그랬을 수도 있지만 삶의 태도는 달랐을 것이다.
<마스크걸> 공식예고편 컷. 범죄로 유명세를 타는 마스크걸.
유복한 환경, 미녀 엄마와 못생긴 딸, 그리고 자살한 아버지, 속을 알 수 없는 엄마의 포커페이스라는 심상치 않은 설정의 떡밥은 회수되지 않았기에 모녀간의 역학관계는 알 수가 없지만,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경험'의 유산을 부모로부터 증여받지 못한 모미는 자신을 낮과 밤으로 쪼개어 마스크라는 작은 보호막에 기대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결국 파멸의 무대가 된다.
유복한 환경에서 애착 좌절을 경험한 김모미와 박복한 환경에서 애착의 사각지대에서 홀로 자란 주오남은 둘 다 '관계 유산'의 흙수저다. 받지 못한 그 '관계 유산'의 갈증은 성인이 된 후에 관계 맺기 과업에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고, 때로는 부정적 감정을 다루지 못해서 자기감정에 잠식되거나 폭발할 수가 있어 자칫 범죄의 영역으로 흡수되기 쉽다.
3부에 등장하는 모미의 딸 '미모'(신예서)가 외할머니와 살 때와는 달리, 김경자의 무조건적 지지를 통해, 반항아에서 그 나이 또래의 발랄한 소녀로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비록 거짓 지지였지만 미모에게 제대로 작용했고, 김경자 역시 미모로부터 무조건적 신뢰를 받자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관계 유산을 받지 못했다면, 노인도 그 갈증에 예외가 아니다.
한쪽에서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해도 다른 한쪽에는 여전히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것은 그들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관계 유산'의 금수저이기 때문이 아닐까. 재물은 사라질 수 있지만 평생 가는 관계 유산이야말로 자녀를 세상에 초대한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