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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나 바람처럼 Oct 11. 2024

사람의 마음을 여는 비결


2년 전 새로 이사한 집은 15층짜리 아파트다. 살면서 처음으로 공동주택에 살게 된 나는 주택과 비교해 아파트 생활이 너무나 편리했다. 하지만 한 가지 애로사항이 있었다. 이 아파트는 엘리베이터가 라인별로 있어서 30세대가 한 엘리베이터를 사용하는 구조다. 이사오기 전 리모델링할 때부터 어김없이 앞집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아주머니는 집값을 얼마 주고 사서 들어왔는지부터 물었다. 나는 적당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얼버무렸다.     


입주하고 나서는 드나들 때마다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호수 사람들과 동승해야 했다. 8인승 엘리베이터는 몹시 좁았다. 세 사람만 타도 비좁고, 옆 사람 심장 뛰는 소리도 들릴 정도였다. 15층에서부터 내려오려면 오래된 엘리베이터는 속도가 너무 느렸다. 1층에 도착해 문이 열리면 숨죽인 채 있던 사람들은 감옥에서 해방이라도 된 듯 서둘러 빠져나갔다.     


아파트는 특성상 한 건물이기는 하지만 모든 것이 분리되어 독립된 생활을 한다. 현관문만 닫으면 앞집이나 아래층에 누가 사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오로지 엘리베이터에서 맞닥뜨리지 않으면 밖에 나가서는 만날 일이 없다. 이웃이라는 유대감도 한 건물에 산다는 결속감도 찾아볼 수 없다. 나는 대부분 상대가 인사하면 마지못해 응대하곤 했다. 낯선 사람과 말을 섞기가 불편했고 모르는 사람에게 선뜻 인사하기가 꺼려졌다. 낯가림이 심한 내게 새로 이사온 아파트에서 가장 힘든 점은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사람과 부딪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공동주택 생활은 여러모로 편리했고 가장 좋은 점은 음식쓰레기를 처리하는 문제였다. 주택에 살 때는 이 부분이 단연 최고의 스트레스였다. 조그만 음식쓰레기 통에 폐기물 스티커를 붙여 배출하는 일은 너무나 힘들었다. 수거 전날 밤에 배출해 새벽에 수거해 가고 아침에 나가 보면 플라스틱 통이 이리저리 나뒹굴기 일쑤였다. 특히 여름철에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냄새와 벌레에 민감한 나로서는 정말 고역이었다. 음식물처리기도 써 봤지만, 과일을 많이 먹는 우리 가족 쓰레기 배출량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렇게 불편한 생활을 감수하다가 아파트로 이사오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쓰레기도 종량제 봉투에만 담아 전용 수거함에 넣으면 되고 음식물도 전용 수거통에 버리면 끝이었다. 삶의 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아파트 생활은 이렇듯 좋은 점과 불편한 점이 공존했다.   

  

그럭저럭 공동주택 생활에 적응해 갈 즈음, 푹푹 찌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어느날이었다. 점심 약속이 있어 나가는 데 아파트 입구에서 경비 아저씨가 행주로 음식물 수거통을 닦고 있었다. 세상에 이 뜨거운 날씨에… 나는 순간 아저씨에게 다가가 불쑥 인사를 건넸다. “고생이 많으시네요…, 더우시겠어요.” 좀처럼 떨어지지 않던 내 입이 저절로 열렸다. 아저씨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활짝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매일 아침저녁 지날 때마다 음식물 수거통이 언제나 깨끗했던 건 아저씨 덕분이었다. 경비 일만도 힘들 텐데, 음식물 통을 저렇게나 깨끗이 닦지 않아도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호의와 친절, 봉사, 환대를 생각한다. 나만 생각한다면 할 필요 없는 일들을 다른 사람을 위해 할 때 우리는 서로의 경계를 넘어 다가갈 수 있다. 아저씨의 모습을 보며 사람의 마음은 저럴 때 열리는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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