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의 네 가지 처방』을 읽으며
올해 나의 가장 큰 화두는 죽음이었다. 당연히 독서도 죽음을 다루는 책들이 많았다. 이 책은 에피쿠로스가 말한 ‘죽음에 관하여’ 편이 가장 궁금해 읽은 책이다. 에피쿠로스의 네 가지 처방이라는 제목으로 인간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네 가지 주장을 중심으로 소개하는 내용이다.
저자는 진정한 철학을 길잡이 삼아 살아가는 사람은 소박한 생활에서도 충만함을 발견할 것이며 평온한 마음으로 그런 생활을 즐길 것이라며 마무리 한다. 에피쿠로스 철학의 핵심 사상은 ‘단순한 생활과 마음의 평화’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세상의 작동 원리를 이해함으로써 마음을 괴롭히는 비이성적인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소개한다.
나는 원래 죽음이 무서웠다. 내가 죽는 것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이 죽은 모습도 무서웠다. 죽음은 내게 너무 큰 공포였다. 나는 장례식장에도 가능하면 가지 않았다. 이년 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형부의 장례식장에서 결국 응급실로 실려갔다. 환하게 웃는 얼굴에 검은 띠가 드리워진 영정 사진을 본 순간, 난 그만 주저 앉았고 호흡이 가빠지면서 흉통이 몰려왔다. 그 충격이 트라우마가 되었고 그 후 친인척이나 지인 등 누구의 장례식장에도 가지 못했다.
올 봄 엄마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렸다. 그 과정에서 수의로 둘러싸인 엄마 얼굴을 똑똑히 봤고 차갑게 식은 엄마의 손을 마지막으로 잡았다. 입관을 마치고 화장 후 재로 변한 엄마를 납골당에 안치하고 나자 비로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 엄마가 남긴 마지막 선물인지도 모른다.
에피쿠로스는 ‘죽음은 감각의 부재’라고 한다. 죽음이 모든 감각의 부재일 뿐이라면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사실 죽음이 두려운 건 죽음 자체보다 죽는 고통 때문일 것이다. 죽음이 감각의 부재라면 죽음 자체는 두려운 대상이 아닐 수 있다.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던 마음이 훨씬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치료로서의 철학을 체험하는 순간이다.
핵심 부분을 발췌한다.
머리말
에피쿠로스는 인간이 가장 원하는 것은 ‘즐거움’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육체적 쾌락보다는 정신적 쾌락에 관심이 많았고, 쾌락을 추구하는 것보다 고통을 피하는 데 더 관심이 많았다. 이상적인 삶은 모든 정신적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는 상태에 이르기 위해 매진하는 것이었다. 이를 ‘아타락시아’라고 불렀다. 따라서 이런 고통을 극복하고 평정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먼저 불안의 원인을 규명해야 하며, 그런 불안에 근거가 없음을 밝혀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불안의 네 가지 원인을 규명하고, 각각을 반박하는 논거를 제시했는데 이를 ‘네 가지 처방’이라고 불렀다. 그의 철학은 불안이 가득한 이 시대에 마음의 평화를 얻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장. 치료로서의 철학
*인간의 고통에 치료법을 제시하지 않는 철학자의 말은 공허할 뿐이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에피쿠로스의 편지는 세 통 뿐이다. 헤로도토스에게 물리학 이론을 설명한 편지, 피토클레스에게 기상학을 설명한 편지, 메노이케우스에게 윤리학과 행복하게 잘 사는 법을 설명한 편지다.
*철학은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단 하나의 목표인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며, 이를 위해서는 평정심이 이르는 것이 관건이다. 평정에 이르는 길은 욕망의 좌절과 미래에 대한 염려라는 두 가지 위험을 극복함으로써 가능하다.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실제로 일종의 심리치료다.
*우리의 공포와 불안은 흔히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데 기인한다.
*공포와 불안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세계의 작동 원리를 알아야 한다.
*물리학 연구가 정신적 동요를 치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발상은 에피쿠로스의 추종자인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에도 잘 나타난다.
*철학은 치료이며, 구원은 세상의 이치를 이해함으로써 가능하다.
2장. 평정으로 가는 길
*고통과 쾌락 사이의 중립 상태 같은 건 없다. 인간은 결코 완전한 무감각 상태에 있을 수 없다. 고통이 없다는 것 자체가 쾌감을 느끼는 상태이며, 반대로 쾌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삶은 고통스러울 것이다.
*쾌락을 추구한다는 것은 사실상 고통이 없는 상태, 우리가 피하고 싶어하는 조건에서 벗어난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다.
*육체적 쾌락은 덧없고 순간적이다. 정신적 쾌락은 오래 지속되기 마련이다.
*에피쿠로스의 네 가지 쾌락은,
먹는 행위와 같은 동적인 육체적 쾌락, 배고프지 않은 상태와 같은 정적인 육체적 쾌락, 친구들과의 즐거운 대화 같은 동적인 정신적 쾌락,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 상태와 같은 정적인 정신적 쾌락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 유형, 불안도 걱정도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 정적인 정신적 쾌락이다. 이를 ‘아타락시아’라고 불렀다. 바로 ‘평정’이다. 즉, 평정은 정신적 동요가 없는 상태이다.
3장. 우리에겐 무엇이 필요한가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며 우리의 특정한 조건에 좌우된다.
*문제는 부를 향한 끝없는 경쟁이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손에 넣어도 모자란다고 느끼는 부단한 결핍감이다.
*자연스럽게 사는 데 필요한 것은 제한적이며 쉽게 구할 수 있는 반면, 공허한 허영에는 끝이 없다.
*자유로운 사람은 많은 것을 소유할 수 없다. 단순한 삶을 통한 자족감이야말로 우리의 자유를 지켜준다.
4장. 우정의 즐거움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의 이미지는 흔히 타인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친구란 어려울 대 의지가 되는 것이며, 하지 않을 수고를 무릅쓰며 상대를 보살펴주는 관계이다.
*위기에 처했을 때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인식’이 중요한 것이다. 도움은 쌍방향이어야 하며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우정이란 서로 배려와 도움을 주고받되 단지 호의와 교환에 그치지 않도록 조심하는 관계이다.
5장. 자연을 탐구해야 하는 이유
*평정에 이르고 싶다면 만물의 진정한 원리를 알아야 하며 단순한 가정이나 편견에 빠져서는 안 된다.
*세상 만물은 무한한 공허 속에 존재하는 원자로 이루어졌다.
*원자들은 무작위로 충돌하며 한데 뭉쳐 더운 큰 집합을 형성하는데, 지구를 비롯한 천체는 이런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우리가 만물의 형성 과정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록 상상속 미지의 신들에게 그 공을 돌릴 가능성은 줄어들 것이다.
*자연을 탐구함으로써 우리는 자연 현상이 평범한 물리적 과정의 결과일 뿐이며 저절로 해결되게 마련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비극이나 재앙, 징벌 따위는 없다. 두려워할 필요 없는 공평무사하고 부단한 물질의 작용만이 존재할 뿐이다.
6장. 죽음을 두려워 마라
*우리는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안다. 정확히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를 뿐이다.
*죽음은 감각의 부재다. 죽음이 모든 감각의 부재일 뿐이라면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우리는 결코 죽어 ‘있을’ 수 없다. 죽은 뒤엔 우리가 ‘있지’ 않을 테니 말이다.
*우리는 물리적 원자로 이루어진 구체적인 인간 존재이며, 우리의 육체가 죽고 육체를 이루는 원자가 흩어지면 그걸로 끝이다.
*무언가를 체험할 ‘나’라는 것은 없으며, 아무것도 체험할 수 없다면 고통도 쾌락도 느끼지 못할 테니 좋거나 나쁜 것도 없을 것이다.
7장. 만물에 관한 설명
*루크레티우스<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에피쿠로스의 <자연에 관하여> 원문을 정독하고 그의 사상에 관한 상세 설명을 라틴어 시로 풀어낸 것이다.
*무수한 원자들이 무한한 시간에 걸쳐 공허 속을 떠돌며 각각의 질량에 의해 무수한 방식으로 충돌한다. 그렇게 원자들이 온갖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함에 따라 만들어 질 수 있는 온갖 사물이 형성된다.
*루크레티우스는 인생의 다양한 면모를 원자반응과 관련지었다. 죽음을 현재 우리를 이루는 원자 배열의 해체이자 종말로 이해했다.
*원자로 만들어진 모든 물질은 가변적이며 언젠가는 파괴되기 마련이다.
*만사가 끊임없는 흐름 속에 있으며 멈추지 않는 원자운동의 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