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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Mar 06. 2023

미혼인가? 비혼인가?

모르겠고, 그냥 싱글입니다


나는 싱글이다. 

싱글이라는 말이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는 싱글이다.

혼자라는 말은 좀 별로다. 외톨이 같다.

비혼과 미혼은 내가 논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안 한 건지 못한 건지 모르기 때문이다.

근데 나만 모르는 건가? 남들은 다 알고 있는 건가? 


이 얘기를 하려면 내가 살아온 지난 삶, 그 고루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 삶은 정답 투성이었다. 삶에 교과서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내 삶이겠구나 싶다.

학령기에 제대로 취학했다. (부모님 감사합니다)

초, 중, 고 모두 개근상을 받았다. (제때 학교에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학업우수상, 표창장, 모범상도 많이 받았다. (학교가 시키는 대로 살면 대체로 주는 상이다)

수능을 망쳤음에도 재수를 하지 않고 제 나이에 대학에 진학했다. (의지와 상황의 컬레버레이션이랄까)

크게 헤매지 않고 진로를 결정했다. (이루기 어려울 것 같은 꿈은 깔끔하게 포기했다.)

졸업한 해에 바로 공무원시험에 합격했다. (떨어지면 급수를 낮춰가며 성적에 직장을 맞췄다)


모든 과정이 스무스하다. 지나치게.

왜 이렇게 살았냐고 묻는다면 나도 모른다. 

그저 잘 닦인 길로 걸어왔을 뿐,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런데 연애와 결혼은 어떤가.

다들 대학에 가면 연애를 하는 거라고 했고, 취업하고 몇 년 지나면 결혼을 하는 게 정답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스타일을 봤을 때는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옳다고 하는 그 길로 걸어갔어야 했다.

그런데 그 정답에 마킹하는 방법을 모르겠는 거다.

연애와 결혼은 선택의 집합체이다. 

'세상의 반이 남자인데 왜 연애를 못하고 결혼을 못하냐'라고 그러는데,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결혼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그것만큼 괴로운 것은 없다. 

짜장면과 짬뽕 중에서도 못 고르는데, 세상의 반이라고? 아이고.


갈등회피성향도 상황을 악화시키는 데 한 몫했다. 연애는 상대방과 치열하게 싸우면서 맞춰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애초에 싸우지를 못하는 성격이다. 감정이 상할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도망부터 가고 본다.


어떤가, 결정장애와 갈등회피. 최악 아닌가?

쓰다 보니 결혼 '못'한 게 되는 거군. 그렇다면 나는 '미혼'인가.





아무튼 싱글이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되게 부질없는 말이지만, 같이 살아도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사람을 만나면 결혼해도 괜찮을 것 같다. 


친구가 그런 말을 했다.

"나는 등 긁어줄 사람이 필요한 나이가 되면 결혼할 거야. 50대쯤? 그때 되면 시장은 다시 활성화되겠지. 한번 갔다 온 사람들까지 합류할 테니"

참으로 혜안을 가진 친구 아닌가. 

문제는 이 말을 한 게 20대 중반이었다는 사실이지만.


하여간에 결혼에 대해 닫힌 마음은 아니라는 거다. 소위 말하는 결혼 적령기, 가임기를 벗어나니 오히려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지금 이 나이에 하는 결혼은 아이를 낳기 위해서, 남들 시선 때문에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좋은 사람(아니면 등 긁어줄 사람)과 같이 살고 싶어서일 테니. 


반대로 지금 이 상태도 좋다. 사실 지금 불만족스러운 게 전혀 없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버거운 현대인이 자급자족(다른 의미. 나 혼자 벌어 나 혼자 먹고 산다는 뜻)하면서 오롯이 나만을 위해 모든 시간을 쓰는 것이 좋지 않을 리가. 친구들도 있고 취미도 있으니 좋지 않을 리가.


한 마디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뜻이며, 그 말은 결국 결혼이 내 인생에 그렇게 큰 의미로 작용하지는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흠. 그리 큰 의미가 없다니.

아무래도 앞으로도 못 할, 아니 이제는 안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그래서 결론은 싱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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