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나, 반올림, 학교' 같은 청소년드라마는 물론이고, 개성 강한 사람들이 모여서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신입사원이 회사에 적응해 가는 드라마를 보면 괜히 엄마마음으로 뭉클해지곤 했다.
이제 더는 성장에 갈급할 나이가 아닌데도 여전히 그렇다.
최근 꽂힌 성장 서사는 '최강야구'이다.
사실 나는 썩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아버지가 야구 광팬이셨기 때문이다. 야구 중계를 하는 날이면 어떻게 해도 리모컨이 내 손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심지어 아버지는 골수 해태팬이셨는데 선동열, 이종범이 좀 잘했어야지. 아버지도 얼마나 재미있으셨겠어.
지금이야 퇴근 후 늘어져서 야구를 시청하는 아버지의 애환이 너무나도 이해가 되지만, 당시에는 그게 얼마나 밉던지. 애꿎은 야구까지 싫어졌다.
그런 내가 야구를 본다. 최강야구를 보게 된 건, 순전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이미 썼지만 아버지는 내가 20대 때 돌아가셨다. 그래서 사실 아버지라 불러본 적도 없다. 아빠..) 아빠가 계셨으면 저 프로그램을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뭐 그런 마음으로 지켜보기 시작했는데, 어! 이게 꽤 흥미진진한 거다.
은퇴한 선수들이 팀을 이뤄서 고교생, 대학생, 심지어 프로 2군과 경기를 하는데 생각보다 선수들이 너무 의욕적이었다. 처음에는 예능인가 싶었는데 어느샌가 다큐가 되고, 그 와중에 입스가 온 선수가 있는가 하면 촬영이 없는 날도 연습을 간다고 했다. 그 진심이 고스란히 화면에 비춰졌다.
'야구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제가 야구를 좋아하더라구요.'
오주원 선수의 고백은 내 안에서 꽤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싫어하는 무언가에 일생을 바쳤는데, 알고 보니 내가 그것을 아주 많이 좋아하더라, 라니.
나는 어떨까. 지금의 일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그만둘 때 되어 보니 사실은 좋아했더라, 그러려나. 잊고 있었는데 내가 사무치게 좋아했던 그런 일이 혹시 있었던가. 결국 그들이 보여주는 성장 서사는 '좋아하는 것을 잘하고 싶은 마음'과 '잘하는 것에 대해 잊고 있었던 뜨거운 열정'이었다.
선수 대부분이 40대라는 것도 자극이 되었다. 지금 내게 딱 필요한 롤모델이다. 사력을 다해 도전해 오는 젊은 피들에 맞서 7할이라는 기록을 세우는 그들을 통해 여전히 건재할 수 있음을 배운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도 열에 세 번 정도는 질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최강야구에서 상대하는 선수 대부분은 아마추어이다. 다시 말해 최강야구는 상대선수들의 성장드라마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시대를 풍미했던 투수들의 공을 받아치는 선수들, 조선의 4번 타자를 상대로 공을 던지는 선수들, 수비수들 사이에서 격려받으며 뛰는 주자들. 그런 경험들이 고교생 선수들을 꿈꾸게 하고 드래프트에서 밀렸던 대학 선수들의 마음을 다시 한번 다잡게 하는 계기가 되어준다.
실제로 고등학교 선수를 드래프트장에서 볼 때, 최강야구를 통해 취업한 대학선수들을 볼 때 '아 정말 그들은 이 프로그램을 계기로 크게 인생을 성장시켰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야 말로 진짜 성장드라마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자, 성장 서사를 봤으면 이제 나를 성장시킬 차례이다. (비록 열정과 체력이 이제 더는 없지만) 경험과 지혜로 주어진 업무를 잘 처리하고, 그런 모습들로 젊은 직원들의 도전의식을 자극시키는 멋진 선배가 되어보자.
진짜 야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언젠가 끄적거린 해태 유니폼을 입은 나. 친구들이 해태 유니폼 하의는 검은색이라며 현실반영을 촉구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