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 인생 참으로 고달팠겠구먼'이라고 할 것 같다.
"맞아요. 꽤나 고달픈 삶이었죠."
여기서 잠깐.
싫증 났다면, 지겨웠다면, 못해먹겠다 싶었으면 그만두면 될 일 아닌가?
누가 모르나.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나름 이유는 있다.
27세에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니 아마도 3~4년간은 그놈의 '착한 딸 콤플렉스' 때문에 엄두도 못 냈던 것 같다.
거길 왜 그만 둬? 그만 두면 할 건 있고?
드라마처럼 머리에 띠 두르고 드러누울지도 모를 엄마가 걱정돼 사직서의 '사(死.. 아니 辭)'도 써본 적이 없다. (대신 사직서 쓰고 싶다고 투덜거리기는 엄청 투덜거렸던 것 같다)
서른이 넘어서는 어이없게도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는 늙은 나이'라는 생각이 나를 가로막았다.그 나이도 참으로 어린 나이고, 심지어 대학을 다시 가도 됐을 법한 나이인데 그때는 마치 인생이 끝난 것 마냥 이제는 주어진 삶을 그냥 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30대 후반 즈음에는 진짜 겁이 났다. 이미 그즈음 권고사직을 당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직장을 그만 두고 나가면 호랑이나 오랑캐가 날 잡아먹겠다고 기다리는 줄로만 생각했다.
지금 와 생각하면 그 모든 게 실체 없는 두려움에 지나지 않았다. 실망할 엄마가 두려웠고, 다시 시작하는 게 두려웠고, 바깥세상이 두려웠던 것 같다.그리고 그 두려움을 맞설 용기도 없었고, 무엇보다 귀찮은 게 가장 컸던 듯.
'시작'은 말아먹었지만, '끝'은 제대로 맺고 싶다.
은퇴 말이다.
'은퇴'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아, 나도 늙었구나'싶다. 그도 그럴 것이 '은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검색해 보면 '직임에서 물러나거나 사회 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지냄'이라고 나온다. 더 이상 '노동자'로 살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아닌가. 요즘이야 파이어다 뭐다 해서 젊은 나이에 은퇴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여전히 은퇴는 '노동 일선에서 물러날 나이'가 된 사람들에게 더 잘 어울리는 말임에는 분명하다.(꼰대일지도... 미안합니다)
언제 퇴직하는 게 좋을까. 정년퇴직? 아니야.. 그러다가 죽도록 노동만 하다가 말라죽을지도. 그러면 명예퇴직? 그건 언제 어떻게하는 건데? 50세? 50대 중반?
그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엄청 복잡하던 약 2년 전쯤, 운명처럼 '이나가키 에미코'의 '퇴사하겠습니다'라는 책을 만났다.
이나가키 에미코는 전(前) 아사히신문의 논설위원이자 편집위원으로 50세에 퇴직한 후 전업작가로 활동 중인 사람이다. 의뢰가 들어오면 글을 쓰지만 기본적으로는 백수이며, 그간 벌어놓은 돈으로 살아야 하기에 아주 작은 집에서 세탁기도 샤워실도 없이 꼭 필요한 소비만 하면서 살아간다. 빠글빠글 폭탄 맞은 듯 말아놓은 아프로헤어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절약과 자유를 동시에 상징한다)
그녀의 책은 두 가지 점에서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하나는 은퇴를 하기 위해 적어도 십년 정도는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급여가 들어오지 않을 때를 대비해 소비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것.
결국 중요한 건 '준비'된 은퇴여야 한다는 얘기였다. 은퇴의 시기나 형태(정년, 명퇴 등)가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정년은 쫓겨나는 것 같을 테고, 준비되지 않은 명퇴나 조기퇴직은 그저 도망일 뿐이다. 운이 좋아서 빨리 준비를 끝내면 명퇴를 하는 거고, 아니라도 정년까지는 이후의 삶에 대해 충분한 준비를 마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