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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Mar 04. 2023

인생 그렇게 쉽게 망하지 않아요

40년 조금 넘게 살다 보니 깨닫는 것들

이번 생은 망했어요.


이런 말을 쓰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도 꽤 있다. 어지간한 유행어는 낯설어도 적응해보려고 하는데, 이 말은 정말이지 들을 때마다 불편하다. 아마도 이런 말을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 20~30대여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왜 아직 한참 남은 자신의 인생의 결론을 저렇게 내버리는지 의문이다.


하지만 임종을 눈앞에 둔 사람의 마지막 말이 '이번 생은 망했어요'라는 것도 어딘가 좀 이상하다. 아니 이상한 게 아니라 슬픈 거겠지. 건 인생이 진짜 망했다는 걸 테니.






아, 그게 진짜 망했다는 게 아니라, 어차피 망했으니 대충(신나게) 살자는 뜻이에요. 욜로(YOLO) 같은 거죠.

무슨 말인지 안다. 성공이란 뜬구름 같은 것에  최선을 다하지 말고, 뭘 하려고 하지도 말고, 그냥 즐기자는 거 아닌가. 삶의 태도로서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굳이 '망했다'는 말까지 필요한 걸까?


녹차 완전 극혐! 개맛없어. 아메리카노 존맛탱.


이런 것도 마찬가지다.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면 될 것 같은데 극혐이라니. 극도로 혐오한다니. 혐오라니.


웃자고 얘기한 말에 죽자고 달려들어 미안하다. 하지만 나는 말의 힘을 믿는다. 잘한다 잘한다 하면 진짜 잘하게 되고, 별로다 별로다 하다 보면 언젠간 꼴도 보기 싫어지게 된다.


아무튼 이런 류의 말들 중에 제일 이해 안 가고 안 썼으면 하는 말이 이번 생이 망했다는 바로 그 말이다. (더불어 헬조선도..)






우리의 남은 생은 아직 충분히 길다. 살아보니 그렇더라. 노력한 만큼 성과가 돌아오지는 않지만, 노력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티끌을 모아 태산은 못 만들어도 주춧돌 하나는 세울 수 있다.


이건 망한 줄 알았는데, 꾸역꾸역 살다 보니 안 망하고 여기까지 온 자의 이야기다. 시대가 바뀌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꾸역꾸역 산다고 성공한다는 게 아니라(성공하면 좋지만), 그렇게 살면 어찌 됐건 망하진 않는다.


꼰대처럼 말하는 거 정말 '극혐'하지만(이건 혐오가 맞다) 진짜 딱 한마디만 하자.


나는 우리의 삶을 망한 삶으로 규정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 때문에, 부모나 가족 때문에, 혹은 나 자신 때문에 일시적으로 망한 상태가 될 수는 있다. 내 인생의 그래프가 그렇게 망한 상태에 이르는 건 불가항력이지만, 그 상태로 둘지 아니면 끌어올릴지는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아주 나중에라도 우리 모두 망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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