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 Mar 07. 2023

어디에서 살 것인가?

지방 소도시 살이 (베타 버전)

삶이란 단어 앞에 육하원칙이 붙으면 꽤 진지한 주제가 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누구와 살 것인가?' '왜 사는가?'

그중에서도




어디에서 살 것인가?


이것은 요즘 나와 친구들 사이에서 꽤 중요한 화두이다. 시골에서 태어나 10대 시절을 보낸 우리들은 대학진학 이후 이미 더 많은 시간들을 서울에서 보내고 있지만 시골에 대한 향수를 여전히 품고 있다. 맑은 공기, 자연환경, 무엇보다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부동산 가격.


혈기왕성하던 30대 초반에는 깡시골로 들어가는 것도 생각했었다. 인간관계에 치이고 환멸을 느낄 때면 시골로 들어가 조용히 살고 싶었다. 어차피 인터넷도 있고 차도 있으니 고립될 염려도 없고. 


그러나 30대 후반즈음부터 이 선택지는 완벽히 버려졌다. 마흔을 앞두고 너나 할 것 없이 아픈 곳들이 생기면서, 병원 근처, 이른바 '병세권(실제로 있는 말인지는 모르겠다)'에 살 필요가 있다는 데 뜻이 모아졌다. 친구들 대부분이 아프면 병원에 데려다줄 동거가족이 없는 1인 가구라 더 그랬던 것 같다. 


서울 근교는 어떨까. 남양주, 파주, 양주, 광주 같은 곳 말이다. 시골보다야 부담스러운 집값이긴 한데 서울에 사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나.


비록 한 친구는 의사 부족 등 여러 사유로 권역응급의료센터 마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날이 금세 올 것이니 이제 서울 외의 지역에서 사는 것에 대한 생각은 접어야 한다며 단호히 말했지만, 너무 적은 가능성까지 고려하다가 '삶의 궁극적 지향점'까지 포기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자 하는 삶이 아니라는 데 다른 친구들은 뜻을 모았다.


삶의 궁극적 지향점, 살고자 하는 삶.

이것은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 '누구와 살 것인가'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

안락하고 쾌적한 너무 좁지 않은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적당한 편의시설과 적당한 교통량이 있는 중소도시 정도면 좋겠다. 그래서 지역커뮤니티를 통해 교류하고, 인터넷으로 더 넓은 세상과 교감하고 싶다.


누구와 살 것인가.

기본적으로는 아마 혼자 살겠지. 아니면 아이는 없겠지만 등 긁어줄 남편이 생길지도. 혼자 살더라도 친구들과 너무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친구들과 자주 만나진 않더라도 언제든 닿고 싶을 때 닿을 수 있는 정도의 거리감이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안온한 삶이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춘천으로 발령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하자 서울에서 쭉 자라온 또 다른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어머, 춘천. 나 거기 나중에 살아보고 싶은 도시 유력 후보군이잖아. 요즘 지방으로 이사 가는 거 꽤 진지하게 고민 중이거든.'



사실 나 역시도 그렇다. 춘천으로 오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이번에 어디든 발령이 나면 지방살이를 제대로 체험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완전한 이주가 아니므로 일종의 체험판, 베타버전인 셈이다.


마침 춘천은 서울에서 1시간 40분 정도 거리로 크게 멀지도 않고, 서울에서 지하철, 경춘선, 고속도로로 잘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인구 28만 정도 되는 도시이니 도시의 경제규모도 적당하다. 


춘천에서의 삶이 만족스럽다고 해서 바로 춘천으로 이주할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서울이 아닌 곳에서 사는 것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게 될 것 같다. 더욱이 40대 초중반, 이제는 은퇴 후의 삶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나이이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부디 이 체험판을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길 바라며 오늘도 즐거운 춘천살이 시작!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 그렇게 쉽게 망하지 않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