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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Mar 08. 2023

평범한 인생에도 '전기'는 필요해요

작지만 '소중한' 인생이니까.

여중, 여고를 거쳐 여대를 나왔다. 한 직장에서 18년째 근무 중이다.

평범한 인생이다.

예측가능하고 뻔하며 시시한 인생, 지극히 평범한 인생이다.


하지만 평범한 인생에도 나름대로는 발단-전개-절정-(결말), 혹은 정-반-(합)의 과정이 있다. 수많은 풍파 속에서 안정감 있게 인생이라는 항해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조타기를 이리저리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급격한 항로변경도 필요하다. 역시 안전한 항해를 위해서는 말이다.


바로 이 급격한 항로 변경이 평범한 인생의 '전기'이지 않을까.





나의 경우 '전기'가 되어 준 사건은 해외근무였다.


휴직 같은 쉼의 시간 없이 오로지 내달리기만 하던 근무경력 11년 차, 당연하게도 번아웃이 왔다. (인생 첫 번아웃이었다) '휴직을 해야 하나, 그만둬야 하나' 하던 찰나에 흔치 않은 해외근무의 문이 열렸다. 겁도 없이 도전했고, 운 좋게 기회를 잡았다.


발령지는 미국 텍사스였다. 서울에서만 근무하던 나에게 텍사스는 서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곳의 건물들은 다운타운과 업타운의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2층 혹은 단층 건물이었고 그나마도 띄엄띄엄 서로 간의 거리를 두고 있었다. 미세먼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청량하게 파란 하늘에, 도심에서 조금만 나가도 자유롭게 풀을 뜯는 소들도 볼 수 있었다.


생활에 들어가니 더욱 서울에서의 삶과는 판이했다. 아홉 시에 출근해서 다섯 시에 퇴근하는 삶. 퇴근 이후에는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이 당연한 삶. 바쁠 것 없는 그들의 행정처리.


같은 곳을 경험한 어느 선배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미국에 있다 보면, 그 광활함 앞에 내가 얼마나 작아지는지 몰라. 그 좁아터진 서울에서 왜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는지. 다 아무것도 아닌데.

그래도 말이야. 우리는 다시 돌아가게 될 거고, 돌아가면 전과 다를 것 없이 살게 될 거야. 다만, 그것만 기억하면 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 말이야.
그랜드캐년 어딘가..



그분의 말씀이 맞았다. 해외근무가 끝나고 한국으로 들어오자마자 나는 다시 이전의 치열한 삶으로 돌아갔다. 귀국한 지 일 년도 되지 않아 불안장애,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전보다 더 치열하게 살았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잊지 않고 있다. 그 넓은 세상을. 그곳을 동경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이곳이 전부가 아니기에 이곳이 전부인 것처럼 살지는 말자. 그런 거다. 그래서 치열하게 사는 삶에 한계를 정해놓고, 딱 거기까지만 최선을 다했다. 비록 내 생각보다는 조금 더 최선을 다해버리고 말았지만(불가항력이었다) 말이다.


작년 말,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고, 나는 그 바람의 방향에 맞추어 조타기를 돌렸다. 그리고 지금은 배의 속도 줄여 나의 속도에 맞추려 노력하고 있다. 내 인생이 더는 버티는 삶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브레이크 살살 밟고 있다.


아마 지금도 내 인생의 '전기'이지 않을까.


 



평범한 삶에도 '전기'있다.

평범한 삶일수록 '전기'가 필요하다.


그것은 갑작스럽게, 예상치도 못했던 곳에서 온다.


부디 놓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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