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시절, 엄마는 꽤 오랫동안 비디오가게를 하셨다. 가끔 엄마 대신 가게를 보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절대 자영업을 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사실 비디오 대여처럼 깔끔한 일이 어디 있겠냐 싶은데,
1번 진상; 한 개 빌리려고 한 시간 넘게 고민한다.
2번 진상; 그 하나의 대여비를 깎아달라고 미성년자인 나를 붙잡고 한참을 생떼를 쓴다.
3번 진상; 그렇게 빌려가 놓고 한 시간 만에 다른 걸로 바꿔 달라고 온다.
4번 진상; 왜 이건 없고 저건 없냐고 일장 연설을 한다.
5번 진상; 그래놓고 성인 에로물만 빌려간다.
6번 진상; 에로물을 훔쳐간다.
7번 진상; 에로물 앞에서 변태 바바리맨으로 변신한다.
8번 진상; 그냥 들어와서 술주정을 한다.
이런 놈들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이지 않고 찾아오니, 자영업 하고 싶겠나.
근데 희한하게도 대학에 가자가마자 카페 주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스타벅스가 지금처럼 도처에 깔려있지도 않았고, 대학 2~3학년 때쯤에야 드디어 아메리카노, 카페모카 같은 커피를 파는 전문점들이 조금씩 생겨나던 시기였다.
학교 앞에 카페에서 나오는 음악이 좋아서, 그곳에서 나는 커피 향이 좋아서, 달달한 모카가 좋아서 카페 주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마침 빵을 좋아하던 나의 친구는 빵집을 하고 싶다고 해서, 우리는 1층에 빵집, 2층에 커피숍을 차려서 서로 할인 쿠폰을 발행해 주자고 구두로 약속했었다.
열아홉까지 자영업이라면 질색을 하던 이가 대학생이 되자마자 카페주인이라니. 어디 이런 모순이 다 있나. 그런데 카페주인이라면 저런 진상들쯤은 참고 넘어가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커피 향을 맡고 좋은 음악을 들으면 다 괜찮을 것 같았다.
괜찮지 않았던 건 결국 주머니 사정이었다. 대학생에게, 그것도 imf 직격타를 맞은 집안에서 어렵게 공부하는 고학생에게 카페주인은 꿈에서도 요원한 일이었다. 내가 꿈을 접고 평범한 월급쟁이가 되어버린 약 20년 사이 한국에서 커피산업은 놀랍도록 성장했고, 이제는 레드오션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내 꿈은 날갯짓 한 번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꿈을 놓친 자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카페에도 진상은 있다는 사실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종종 목격되는 카페 진상들의 모습은 그 옛날 비디오가게에 나타나는 변태 또라이 놈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카페, 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거다. 안 하길 잘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북카페나 여행 카페가 하고 싶어지는 거다. 책이나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에게 공간을 빌려주고, 가끔 나도 슬쩍 그 대화에 참여하고. 생각만 해도 설레는 일이다.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카페에 집착하는 걸까? 진상도 싫고, 사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있는 걸 더 좋아하는 극 I형 인간, 개인주의자인데 왜 사람들이 만나는 공간을 동경하는 걸까?
꽤 오래 혼자 여행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혼자 가서 누릴 수 있는 기쁨도 있지만, 함께여서 누릴 수 있는 기쁨도 있다고. 그리고 혼자서는 그것을 절대 누릴 수 없다고. 그래서 최근에는 혼자 여행하되, 가끔은 누군가와 조인하는 그런 여행을 선호한다. 같이 떠나서 서로 혼자일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여행도 좋다.
어쩌면 나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아웃사이더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느슨한 공동체에 속하고 싶어 하는 인사이더이거나.
옛날로 치면, 유럽의 어느 '살롱'같은 곳. 그런 곳을 만드는 것은 여전히 나의 꿈이다. 그것이 카페의 형태가 되건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이건. 장소를 중심으로 한 느슨한 공동체, 하이엔드 커뮤니티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