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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희 Jun 08. 2023

매일이 체육대회라면

같이 하면 제법 우스운 꼴도 즐겁기만 하다

  체육대회를 했다. 날씨만큼 싱그러웠던, 체육대회였다. 나는 참 그 순간이 젊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몇 주전부터 체육대회를 핑계로 어떤 계획을 짜야한다며, 계주 선수를 뽑아야 한다며, 단체복을 정해야 한다며 수업을 제법 태만하게 보냈다. 그 꾀를 내는 표정이, 그러면서도 나를 놀리는 듯한 사뭇 진지한 얼굴이 조금 우스워 그냥 내버려 두었다. 사실 체육대회는 명칭으로 보았을 때 각 반의 신체적 능력을 측정하고 협동하여 경쟁하는 대회인데, 아이들이 가장 열을 올리는 단체복을 정하는 모습을 관람하고 있을 때면, 누가 더 우스꽝스러운가를 경쟁하는 것도 같다. 혼자서는 돈을 준다고 해도  절대 입지 않을 것 같은 희한한 옷들이 등장했다. 같이 하면 제법 대단한 용기가 생긴다. 그리고 즐겁기까지 하다.


  체육대회 단체복은 싸야 한다. 저렴해서 더 행복한 물건들이 몇 개나 있을까. 저렴한, 그래서 미안한 일이지만 이 퀄리티에 대해 의문감이 들게 하는 그런 것들. 발목 위로 달름 올라오는 꽃무늬 바지를 입은 반도 있었고, 어떤 애니메이션을 따라한 반도 있었고, 세상에 앨리스니 메이드니 원피스까지 갖춰 입은 반도 있었다. 참고로 이 학교는 공학이다. 우리나라 사회에서 남학생이 치마를 입는다는 건 아직까지 참 이벤트라, 아이들은 어쩌면 두고두고 이야기할 수 있을 오늘을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오늘만은 정말 예쁜 원피스를 입었다, 물론 체구가 커서 뒷지퍼가 잠기지 않는 아이들도 속출했지만 그저 즐겁다. 등은 보여주지만, 체육복 반바지를 속바지로 챙겨 입은 것이 나는 또 귀여웠다.


  체육대회는 체육대회 준비가 5할은 하는 것 같다. 몇 반은 무슨 단체복을 했다더라, 몇 반은 누가 계주 선수로 나간다더라, 걔 작년에 계주 역전했던 애라던데. 뭐 그런 이야기를 지나 우리는 체육대회를 시작했다. STAFF라는 단어가 등에 찍힌 조끼를 입은 학생회 아이들을 주도로 하여 아이들은 운동장에 모였다. 난 담임이 아니라 임장할 반이 있었던 건 아니라, 그냥 운동장에 서서 아이들의 그 상기된 볼과 그 까만 눈동자를 눈에 담았다.


  우리 학교는 제법 작은 운동장에, 농구코트 바닥도 딱딱하고 스탠드 위에 천막도 없고 심지어 아직까지도 운동장이 모래운동장이다. 참 학교는 올곧이 안 변하는 것들이 있다. 누가 여기 와서 뛰고 싶어 할까. 여기 그 누구가 한가득이다. 물론 여기에도 고3은 열외다. 참 학교는 고3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고3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수험생이니, 괜히 수험생이라는 죄책감이 어깨에 달려 있어서 3학년 아이들은 교실에서 자습을 했다. 창가에 다닥다닥 붙어서 동생들의 우스꽝스러운, 그렇지만 부러운 모습을 구경했다. 그리고 교실에서 자기들끼리 팔씨름이니 뭐니 실내체육대회를 했다. 이건 고3의 체육대회다.


  축구, 농구, 피구와 같은 동적인 구기종목도 재미있지만, 그 단순한 줄다리기가 참 재미있다. 반아이들이 그 줄 하나에 포도알처럼 붙어있는 것이 귀여워서일까. 그 짧은 순간에 엄청난 작전을 짜는 것이 진지해서일까. 제법 비장한 표정으로, 물론 옷은 앨리스 원피스를 입었지만, 운동장으로 입장하여 목장갑을 툴툴 털어 끼고는 근엄하게 줄을 잡는다. 줄을 몸에 감으면 안 되나? 안 돼, 이건 반칙이야. 줄 푸세요. 자 들어봐, ‘영’에 잡고 ‘차’에 당기는 거야. 시작하면 바로 누워. 손을 얼기설기 잡아야 돼. 줄을 꽉 쥐고 일어나면서 아이들은 서로에게 소리쳤다. 줄다리기는 사실 연습을 하고 임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느리다. 그리고 꽤나 정적이지만, 제법 빠르게 끝난다. 그저 그 공동체가 그 순간에 힘을 합쳐서 당기면 끝이다. 시작! 줄줄줄 끌려가는 아이들. 당기라고 당기라고 열심히 소리쳐주는 담임 선생님마저 줄줄줄 끌려가는 기분이다. 참 귀엽다.


  그리고 체육대회의 꽃은 계주경기였다. 난 어릴 때 계주 선수 선발에 떨어지면 눈물을 질끔 흘릴 만큼 승부욕이 강한 아이였는데. 속도가 가시적으로 보여서일까. 승부욕과 인생 뭐 그런 이제는 너무 많이 들어 진부하게마저 느껴지는, 인생은 달리기, 인생은 마라톤 같은 그렇지만 재미있는 체육대회의 마지막 경기. 인생은 마라톤이라는데, 사실, 인생은 계주경기가 아닐까. 달릴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부터가 선발의 과정인, 그 체육대회를 준비할 때 ‘누가 계주 선수를 할 거야?’에서 그렇게 열을 올리는, 열심히 달려봤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눈물 찔끔하는 어린 내가 있었고, 그리고 그 과정을 넘어 운동장에 선 누군가는 그 순간까지도 참 서사다. 이때는 그 귀여운 원피스도 벗어두고 제법 무게감 있는 표정으로 자리에 선다.

  

  운동장 몇 바퀴를 돌면서 희비가 교차된다. 나는, 나를 대신하여 달리는 모습을 정말이지 집중한다. 뛰쳐나와 응원을 하고 동동거리며 소리를 친다. 누군가의 인생에 단기간에 이렇게 몰입하는 일이 있을까. 계주에서는 달리지 않는 사람도 같은 그 인생에 함께다. 같이 달리기도 한다, 정말로. 운동장에 선 아이는, 정말로 같이 달린다. 함께 나온 친구가 조금 못 달렸으면 소리를 치며 동동거리며, 조금 더 앞으로 나가 바통을 얼른 받고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그렇게 뛴다. 그 순간에 바통을 놓쳐버려 그런 사소한 일에 주춤하기도 한다. 재미있는 건 그런 일에 주춤하고, 혹은 심하게는 그 모래운동장에 발라당 넘어져도 벌떡 일어나 최선을 다해 달린다는 거다. 계주의 속도는 되게 빨라서, 틈이 벌어지면 끝없이 벌어지는 기분인데 왜 아이들은 설렁설렁 뛰지 않는 걸까. 그리고 정말 최선을 다해 뛰어서, 또 신기하게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곤 하는 걸까. 진부하지만, 인생은 정말 계주 같은 걸까.


  올해의 계주는 나루토를 입은 반에게 돌아갔다. 오렌지색의 올망졸망한 아이들은 얼싸안고 신이 났다. 참 오렌지 같은 아이들이다. 다른 아이들도 다 오렌지 같았다. 체육대회가 마무리될 때쯤 학교에서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설레임.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즐거웠다며, 혹은 좀 아쉬웠다며 종알거리며 돌아간다. 흙먼지를 뽀얗게 일으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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