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교 다닐 때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잘 없었다. 지금 또렷하게 기억나는 선생님은 딱 두 분 정도인데, 한 분은 중3 때 담임선생님이셨다. 그 선생님은 우리를 엄청나게 혼내셨다는 거, 그 나이 때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매를 들어 때리셨다는 것. 우리는 엉덩이를 맞고는 학교 뒤뜰에 쭈그리고 앉아 선생님을 뒷담화하곤 했다, 딱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한 분은 고등학교 때 근현대사를 가르치셨던 선생님이셨다. 고등학교 때 난 학교에서 잘, 어른들이 보기에 잘 지냈다. 교실에서 나를 괴롭히는 친구도 없었고, 크게 싸운 친구도 없었으니. 다만 친한 친구도 없을 뿐이었다. 난 버스를 타고 다녔으니 차가 밀리기 전에 일찍 등교해서 문제집을 풀었고, 볼을 책상에 붙이고 쪽잠을 잤고, 야자도 빼먹지 않았다. 그때 나에게 말을 걸어주셨던 분은, 나이가 정말 지긋하게 드신, 이제는 정말 나이가 들어 체구마저 자그마해지신,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 선생님이셨다. 그 선생님은 정말이지 나를 귀찮게 하셨다. 이런 말이 웃기지만 정말이지 나를 귀찮게 하셨다. 나이가 그렇게 드셨는데 열아홉 살 여자애를 귀찮게 할 저런 힘이 남아있나 싶을 정도로, 나를 귀찮게 하셨다. 쉬는 시간이면 꼭, 선생님 방에 오라고 하셨다. 선생님 방은 사회과 교무실이었나, 그런 이름이었는데 그 교무실엔 그 선생님과 조금 젊었던 남자 선생님 한 분이 다였고, 선생님만큼 나이 든 후줄근한 갈색 쇼파가 하나 있었다.
선생님 방에 가면 나는 근현대사를 얼마나 외웠는지 검사를 받아야 했고, 야자 시간에 왜 잤는지 설명해야 했고, 과자도 가끔, 얻어먹었다. 어쩔 땐 허리에 체크무늬 남색 담요를 두르고 가선, 그 쇼파에 쓰러지듯 누워 울었던 것도 같다. 그러면 그 체구가 작았던 할아버지 선생님은 별 말을 안 하셨다. 정말 별 말을 안 하셨고 수업 종이 치면 교실로 돌아가라고 하셨다.
여름이었다, 6월 모의고사를 쳤을 때였으니까. 날씨만큼 마음이 습했고, 나는 나에게 실망을 해서 나는 내내, 책상에 볼을 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나한테 그 책상 하나만 시원했던 것 같다. 선생님은 그때도 별 말을 안 하셨다. 그리고 언제였을까 복도를 걷는 나를 붙잡곤 “요즘은 왜 내 방에 놀러 안 오니?”라고 그 말 한마디를 하셨던 장면만이 기억이 난다. 난 다시, 선생님 방에 ‘놀러’ 갔다. 졸업할 때까지, 선생님 방에서 놀았다.
난 그때 그랬다. 이 학교에서 내가 원하는 그 무언가를 얻지 못했다는 바보 같은 생각에, 졸업식 행사가 끝나고는 정말로, 도망치듯이, 교문을 나왔다. 그 작은 체구의 할아버지 선생님께 인사도 드리지 않고 도망치듯이 학교를 떠났다. 그게 내 학창 시절의 끝이었다.
나는 다시 학교에 있다. 여기에는 그런 고등학생 진희들이 앉아있다. 나는 그때 그 할아버지 선생님이 너무나도 귀찮았는데, 그리고 졸업을 하곤 새침하게, 사실은 조금 부끄러운 마음으로 떠났는데. 그래서 참 학교에 있으면 그 감정들이 궁금하다. 그 선생님의 체구는 여전히 작으신지, 그때 십 대였던 새침한 그 아이를 왜 그렇게 귀찮게 하셨는지, 그리고 여전히 어린아이들을 귀찮게 할 힘이 아직도 남아있으신지, 난 그게 참 궁금하다. 그리고 요즘 그걸 조금, 배운다.
수업을 할 때면, 난 꼭 이상한 이야기를 한다. 별 말 아니긴 한데, 그냥 이상한 이야기. 내가 겪었던 참 우스웠던 이야기나, 현대시 분석을 하는데 꼭 연애 얘기를 예시를 들어한다거나 하는 그런 별 말 아닌데 이상한 이야기. 그럼 아이들은 가끔, 책상에서 볼을 떼고, 혹은 문제집에서 눈을 떼고 잠시, 킥! 하고 웃는다. 그 웃음이 참 귀엽다. 그 할아버지 선생님 앞에서도 나도 저렇게 새침하게 킥! 하고 웃었겠지.
언젠가는 아이를 불러다가 야자 째는 법을 알려주었다. 별 건 아니고, 그냥 적당한 곳을 찾아야 하는데, 그 적당한 곳을 나는 찾을 수 있다. 나는 비록 후줄근한 쇼파는 없지만, 그 적당한 장소는 알고 있다. 그리고 떡볶이를 미리 몰래 시켜두면 된다, 불은 잠시 꺼 두고, 우리의 목소리를 조금 죽이면 된다. 목소리를 죽이면 뭐랄까 더 묘해지는 기분이다. 습하지만 날씨도 제법 선선하다, 그때 내가 엎어져 있던 책상의 온도처럼. 떡볶이는 조금 불었다, 사실 그 떡볶이가 코로 들어가든 입으로 들어가는 건 중요하진 않다. 그때 선생님이 별 말을 안 했듯, 나도 별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아이가 떡볶이를 먹고, 아이의 인스타그램을 구경하고, 수학여행이라거나 체육대회 단체복 이야기를 하고, 어깨를 짓누르는 가방 얘기를 들을 뿐이다. 아이들은 감정이 조금 울컥하기도 하지만, 난 정말로 별 말 안 했다. 그리고 종이 치면 아이를 보낸다. 내일이면 또 이상한 이야기를 하나 할 테고, 아이들을 킥! 하고 웃을 테지. 그리고 더, 시간이 흐르면 아이들은 그 이상한 얘기를 하고 야자 째는 걸 알려주던 그 여선생님은, 여전할까. 하며 궁금해하지 않을까.
오늘 그 할아버지 선생님이 되게,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