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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희 May 12. 2023

입하

얼마 전이 입하였어, 누군가가 나한테 진희님은 어떤 계절이 제일 좋으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어. 얘들아, 나는 여름을 가장 좋아해. 진이 빠지도록 그 뜨거운 햇살이, 마치 젊음 같아서. 너희처럼. 지치지도 않고 떠드는, 쉬는 시간이면 이 끝 반에서 저 끝 반까지 갔다가 간식을 나눠 먹고 복도 중앙에서 조잘조잘 떠들다가 화장실까지 같이 갔다가 돌아와도 시간이 남는, 그 뜨거움이 딱 여름이잖아. 여름은, 정말 그 공간에 가만 서 있기만 해도 힘이 빠지는데, 마치 여름 태양 밑에 서 있으면, 가만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나도 너무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지만, 막상 비가 오면 고새 태양이 그리워져서 기웃거리는, 그런 젊음 같아서. 그게 너희 같아.


그런 뜨거운 계절이 다시 왔어. 조금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제법 볼이 상기되곤 해. 얼마 전 교실에 일찍 들어가서 가만 서 있는데, 스마트 워치에서 진동이 울리더라, 뭔가 싶어서 봤더니 세상에 소음 데시벨이 105까지 올라갔더라고. 일부러 소리 지르려고 해도 그만큼은 못 낼 것 같은데, 목소리가 참 뜨겁지. 참 그 얘길 듣고, 누군가는 혹시 콘서트장에 갔냐고 킬킬 웃더라. 그러게, 너희는 참 노래 같아, 그것도 뜨거운 콘서트장의 노래.


교실 천장에는 네 개의 선풍기가 덜렁 달려있는데, 원래는 흰색이었던 것 같은 이 선풍기는 지금은 조금 노르스름해졌어. 햇빛에 빛이 바래고 학교의 나이만큼 제법 때가 탄 것 같아. 신이 나서 책상 위로 올라가 선풍기를 떼곤, 대충 물에 훌훌 씻어서 복도에 널어놓곤 또 대충 말려서, 다시 책상 위에 올라가서 선풍기를 끼우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정말, 여름을 맞이하는구나 싶어. 나도 수업을 할 때면 너희랑 킬킬거리느라 온도가 훌쩍 올라가서 겉옷을 벗었다가, 교무실로 내려가면 다시 입었다가, 그 초여름의 변덕 같은 온도만큼 얼굴도 반질해지곤 한다.


너희는 나무의 초록잎 같아. 하고 싶은 이야기도 어쩜 그렇게 많은지. 나는 요즘 소리를 꽤 많이 지른다. 화를 내는 게 아니라, 너희의 에너지를 당하지 못해서 크게 더 크게 소리를 내. 어! 어이! 하고 나는 제법 큰 복식 호흡도 내면서 집중을 시킬 수도 있어. 친구에게 그 소리를 한 번 내줬더니 그렇게나 소리를 크게 잘 낸다고 신기해하더라. 나무의 초록잎이 빽빽하게 난 것처럼 말하는 것도 빽빽. 나뭇잎이 소리를 낸다면 너희 같은 목소리를 낼 것 같아.


또 얼마 전에는 5모같은 4모를 치렀는데 그 에너지 넘치는 너희가 머리를 몇 번이나 넘기고, 지우개질을 빡빡-하고,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고 약간의 기침을 하며 초여름의 변덕과 뜨거움을 맞이했다. 평소였으면 꽃가루와 함께 했을 시험인데 올해는 꽤나 교실이 더웠다. 나는 행여 너희의 열기에 거슬릴까 공중에 떠있겠다는 기분으로 자리에 가만 존재했다.


시험은 잘 끝나고, 다음 수업시간이 되어 난, 노란 시험지를 덜렁 들고 교실에 들어가 문제를 다시 한번 보라고 시키고. 너희는 씰룩거리는 입술을 꽉 깨물고 문제를 풀고, 혹시나 눈이 마주치면 그 장난기 담긴 눈동자가 ‘아, 재밌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할까?’ 망설이는 그 장난기 담긴 눈동자를 보면 나도 순간, 씰룩했다가 또 어헙! 하고 문제를 풀게 시키곤 해. 참 이 순간은 재미는 없지만 꽤 귀여워.


이제 여름의 시작이야, 조금 있으면 더 뜨거운 한여름이 되고, 마음의 온도도 뜨거워질 테고, 혹은 마음속에 열이 나기도 하겠지. 가을이 되면 그 빽빽한 나뭇잎이 다 지고, 조금은 조용해질지도, 침묵을 배울지도 모르겠다. 겨울이 되면, 그때는 창문은 그냥 다 닫아버리고 조금 따뜻한 마음으로, 우리 하루 종일 씰룩이면서 떠들 수 있지 않을까. 그때는 귤도 까먹자.

우리, 진이 빠지도록 부대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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