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중 잠깐 눈을 붙인 사이에도 또 일하는 꿈을 가위 눌리듯이 꾸고난 후 하루도 지나지 않아 또 악몽을 꿨다. 평소 팬도 아니었는데 故이선균 배우가 나왔다. 첫 논란 기사가 세상에 나오기 하루 전으로 시간을 되돌렸는데, 익숙한 미소로 웃고 있던 그에게 TV를 절대 보지 못하도록 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그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꿈에서도 무력감에 시달리다가 깼다. '죽은 연예인이 나오는 꿈' 해몽을 검색해 보았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퇴근 즈음에는 이모님과 교대하면서 주말에 산책하신 이야기를 들었다. 동네 사람이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오면서 같이 키우는 고양이도 데리고 나왔는데, 길고 흰 털에 얼굴 끝 부분만 포인트 색이 있고 눈은 파랬으며 다리가 짧았다고 하셨다. 세상에 그렇게 예쁜 고양이는 처음 보셨다고. 듣고 있던 나는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졌다. 그 짧은 이야기에 대환장 포인트가 몇 개인지. 물론 이모님께서는 고양이가 산책에 대해 굉장한 주의가 필요한 동물이며, 그런 털 색과 모질과 체형을 '만들기'위해 얼마나 많은 다른 고양이들이 희생되었을지, 그리고 그렇게 태어난 고양이는 평생을 유전병에 시달리다가 어떻게 고통스럽게 죽는지, 그 때문에 또 얼마나 많은 비슷한 녀석들이 사랑을 받다가도 보호자로부터 버려지는지 전혀 알지 못하셨다. 다만 지금까지 만난 고양이 중 가장 예쁘다는 것만 아실 뿐이었다. 그렇게 세상 예쁜 품종인 저 고양이를 기어이 밖에 데리고 나온 사람은 심지어 현직 동물병원 간호사랬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원망을 갖는다. 주제 넘는다. 내가 뭐라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며 남의 직업 윤리를 따지고 있는 걸까. 잔인할 만큼 흔하디 흔한 그 비극의 시나리오대로 버려진 유기 동물을 거두어 키우는 걸 수도 있는데. 펫숍에서 사 올 땐 아무것도 몰랐지만 중간에 해당 직업을 갖게 되면서 지금은 반성과 책임을 다 하는 중일지도 모르는 건데. 그래. 부디 내 저런 심판적인생각들이 반드시 틀렸길 바라면서, 이모님이 이제 조금은 덜 예쁘게 보시는 것같은 초롬이를 안았다.
이런 상황을 맞닥드린 게 당연히 처음은 아니다. 더 이상 무지로 인해 그걸 귀엽고 예쁘게만 볼 게 아니라 각성하여 가엾게 생각하길 바라는 마음에 목에 핏대까지 세우고 침 튀겨가며 설명을 해야 속이 시원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상대는 무안해했다. 정말 무안했던 사람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내 앞에서 무안한 척만 했다. 그들은 '품종 개/고양이에 그런 이면이 있는 줄은 몰랐지만(*알고 싶지 않았지만) 어쨌든 여전히 예쁘긴 예쁘다'고 말했다. 내가 애를 써봐야 바뀌는 것도 없고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 같아 어느 시점부터는 설득하길 포기했다. 해 봐야 결국엔 또 나만 예민하게 굴고 유난이나 떠는 불편한 사람이다.
표정 관리가 안 되었다. 그 자리에 더 있기 힘들어서 초롬이를 창가에 다시 데려다 놓고, 화제를 돌려 집 화분에 핀 봄 꽃 사진을 보여주시려는 이모님을 뒤로 하고는 급한 일이라도 생긴 척 얼른 가방을 챙겨 도망치듯 나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