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와 연계된 음원 시스템이 있지만 채널도 많지 않고 취향껏 들을 수도 없어서 굳이 블루투스 스피커를 따로 구비해 놓고 종종 폰에 있는 재생 목록으로 스트리밍해 틀어 놓는다. 시대도 국가도 장르도 뒤죽박죽이지만 온전히 내 취향인 노래들을 들으며 일하면 그저그런 편의점 일일지라도 조금은 흥이 나니까.
한 커플이 매장에 음료수를 사러 들어왔다. 대충 대화를 엿들어 보니 아직 제법 많이 어색하다. 나이는 내 또래 정도였는데 서로 극존대를 하고 한마디 한마디가 굉장히 신중하며 조심스럽다. 커플이 아니라 소개팅으로 만나 오늘 처음 본 사이인 게 분명했다.
계산대 위에 음료수를 올려 놓자 마침 'House rulez'의 'Do it!'이 재생됐다. 남자는 꽤 놀란 표정으로 "와. 이거 되게 오랜만에 듣네요, 엄청 좋아했었는데."라고 했다. 여자는 처음 듣는다는 듯이 "이게 뭔데요?"라고 한다. 남자가 다시 말했다. "하우스룰즈잖아요. 않이, 이 노래를 진짜 모르세요?" 여자는 당황한 동시에 황당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이샛기 이거 오타쿠인가?'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여자의 행동을 본 남자는 눈을 돌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아무것도 못 들은 척 했지만 사실은 이 남자와 같은 심정으로 약간은 흥분한 상태였다. 여자분은 우리와 세대도 같은데 어떻게 이 노래를 모르시냐고, 난 이 노래를 해가 가도 아직도 듣는다고, 하우스룰즈도 좋지만 이윤정은 삐삐밴드 시절부터 팬이었다고, 시대를 앞서 간 독보적 아티스트라고 맞장구 치고 싶은 걸 꾹 눌렀다. 여기서 이 남자 편을 들면 저 여자를 무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괜히 나 때문에 둘 분위기만 이상해질 것 같아서. 남자의 시선에 대한 대답으로 잠자코 어깨만 한 번 들썩일 뿐이었다. 내가 좋아 튼 노래가 아니라 그냥 흘러 나오는 노래라는 듯이. 취향은 강요할 수도 없고 취향이 없는 것 또한 취향이려니, 존중할 수 밖에.
그러나 그 짧은 순간 마주 본 남자와 나는 취향으로 깊게 교감했고, 이어서 서로의 생각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