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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알록달록 Apr 11. 2024

초롬이 이야기

20240327


밤 11시쯤 손님이 열고 가버린 문을 통해 외출을 나간 후 다음 날 내 퇴근 시간인 오전 11시가 되도록 초롬이는 가게에 돌아 오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오후부터 오던 비가 잠깐 그친 그 사이 나갔다가 갑자기 다시 비가 내리자 어디 발이 묶인 모양이었다. 초롬이는 비를 조금도 맞기 싫어하는 예민한 고양이였다. 어딘가 꽁꽁 잘도 숨어있다가 또 그쳤을 때 돌아오겠지 했지만 속절없는 비는 한 번도 그치질 않고 밤새도 내렸다. 비는 아침이 되서야 그쳤지만 녀석은 돌아오지 않았다. 밤 동안 별의 별 생각을 다하며 기다렸는데.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외출이 평소보다 길어지면 늘 불안했다. 좁은 골목에서도 쌩쌩 달리는 운전자들이 판을 치는 동네. 이런 놈의 동네에서 제 명까지 채워 사는 고양이는 드물다. 초롬이는 이런 곳에서도 살아남은 소수의 어른 고양이였지만 사고는 언제나 방심하는 순간 벌어지기에 늘 마음의 준비를 하며 녀석들을 돌본다. 밥을 먹고 떠날 때마다 다시는 못 볼 것처럼 사랑한다고, 그리고 차조심, 나쁜 사람 조심하라고 잔소리 하곤 했다. 정작 애들은 알아 듣지도 못할, 하는 나만 속 불편한 그런 말들을 굳이 하는 이 마음이 이제는 닳고 닳아 무뎌질 때도 되었건만, 어떤 마음들은 매일 같은 마음이라도 도무지 무뎌질 수가 없는 마음인 것이다.

늘 함께 지새운 밤을 아이의 빈 쿠션만 바라보며 홀로 보냈다. 긴 밤이다.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초롬이에게 텔레파시를 보낸다. 시야는 어둠 뿐이고 빗소리만 들리겠지. 밥먹을 시간도 훌쩍 지났으니 배가 고플텐데. 따듯한 난로 앞 푹신한 쿠션에서 자던 녀석이 축축하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깟 비, 잠깐만 몇 방울 맞고 얼른 들어오지 바보가. 길에서 사는 동안 고생했으면서도 그렇게 또 외출이 하고 싶었을꼬.

비가 그쳤는데도 돌아오지 않자 양가적인 생각이 든다. 아침 출근 시간엔 차가 더 많으니까 그 시간을 피해 좀 더 기다렸다가 들어오려는 거겠지, 날이 풀렸으니 나간 김에 봄볕 좀 쬐다가 들어오고 싶겠지. 혹시 밤 사이 사고가 난거라면 해가 떴으니까 벌써 누가 수습을 했으려나. 그럼 아이가 어디서 어떻게 갔는 줄도 모르고 이렇게 잃게 되는 건가. 언젠가는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그래도 이렇게나 빨리. 퇴근하면 동네를 돌며 핏자국이라도 찾아 볼 생각인데, 비가 와서 젖은 땅이라 쉬이 찾을 수 있을까.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서 쓰레기장을 샅샅이 살핀다. 사고로 죽었다면 대부분은 쓰레기 더미 위에 던져뒀을 테니까. 밥먹으러 오던 아이들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습관처럼 하던 행동들이다. 생사라도 알고 싶어서. 사체라도 마지막으로 내 품에 안고 싶어서. 동물병원에서 받는 공동화장이라도 해서 편안히 보내주고 싶어서. 살아는 있지만 다쳐서 돌아오지 못할 확률도 배제하지 않는다. 그런 경우라면 내가 널 찾으면 된다. 찾을 수 있을까. 찾아야만 한다. 널 찾는 전단지에 뭐라고 쓸지 생각한다.

퇴근을 준비한다. 괜히 초롬이 이불 냄새를 맡는다. 물그릇의 물을 갈아주며 방금 갈아놓은 이 물을 초롬이가 마실 수 있게 될까 생각한다. 조금 멀리 나간 거면 며칠 후에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밥그릇은 언제까지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둬야할지 미리 고민해 본다. 내가 저걸 끝내 치우는 날엔 어떤 심정일지 상상한다. 네 물건이 이렇게나 많은데. 혹시나 해서 포인핸드를 뒤적인다. 초롬이 사진은 없지만 실종되거나 유기 상태로 발견된 다른 녀석들의 사진을 보니 또 마음이 쓰인다. 나와 교대한 이모님은 예쁜 고양이니까 혹시 누가 데려간 거면 어쩌냐고 하셨다. 누군가 데려가고 싶어할 수는 있겠지만 다행히 데려간다고 해서 아무나 따라갈 녀석도 아니었다. 그래도 배고픈 상태에서는 혹시 모른다. 먹을 걸로 꼬셔질지도. 좋은 사람이라면 그나마 상황이 낫지만 학대범들도 그런 방법을 쓴다. 그래서 내가 밥을 주는 아이들은 나쁜 일 당하는 일 없도록 일부러 항상 배 곯지 않게 하는 건데..

일을 마치자마자 초롬이가 자주 있던 곳부터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둘러본다. 내 목소리엔 분명 반응할 거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미친년인 줄 알겠지만 캣맘은 어차피 미친년 취급 당하는 일이 많아 익숙하다. 그런 건 상관없다. 내 새끼 대답만 들으면 된다. 비를 피할 만한 곳이 또 어디있지. 겨울 장사만 하는 굴 요리집 창고 쪽으로 자리를 옮겨 계속 이름을 불러댔다. 그러자 귀에 익은 소리로 작은 대답이 들렸다.




















에필로그


어제 부득이하게 카페베네 엔딩으로 글을 끝낸 걸 처음부터 의도하진 않았읍니다,, 쓰다보니 길어져서 인스타 텍스트 업로드 제한에 걸려 버렸는데 마침 딱 결정적인 부분에서 끊겨 버려가지고,,, 그런데 그 마무리가 문학적(?)으로 나쁘지 않더라고요? 다음 회가 궁금할 것 같고? 하여간 걱정하셨다면 그 점은 미안합니다. 어쨌든 뭐 애는 찾았으니 저도 걱정 한시름 덜어서 이런 짓도 해 보는 거 아니겠나 싶고요. 바로 뒷소식을 다시 올리기엔 너무 피곤했지 뭡니까. 저 날(그저께)도 초롬이 데려다 놓고서 갑자기 긴장이 확 풀려갖고는 두시간이나 일찍 잠들었거든요.


초롬이는 제 목소리를 듣자마자 야옹야옹 대답했답니다. 소리난 곳을 찾느라고 남의 가게 담까지 넘었다니까요 글쎄. 계절 장사라 현재는 운영하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남의 가게다보니 도둑질 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들킬까봐 조마조마 하더라고요. 초롬이는 아가 착하지 집에 가자 이리 내려 오라고 해도 눈치 없이 오지도 않고 오히려 너무 반가워한 나머지 신이 나서 막 뛰어다니기까지 했어요. 그 덕분에 초롬이 따라 그 집 창고 구경 실컷 하다가, 이제 엄마 간다 하고는 혼자 돌아가는 척했더니 그제서야 얼른 따라 오는 거 있죠. 꼭 사람 어린 아이 같았어요. 말 졸라 안 들어.


그 날 새벽 내내 저는 지옥을 여러 번 다녀왔지만 다행히 초롬이는 안전한 곳에 잘 있었어요. 비 한 방울 새지 않는 튼튼한 지붕 밑을 잘도 찾아내서는 털 한오라기 젖지 않고 뽀송뽀송 하기까지 하더라니까요. 나 참. 무사히 잘 있길 누구보다 바랬지만, 하룻밤 사이에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최악의 시나리오마저 상상했던 게 부질없어져 괜시리 개킹받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초롬이는 아마 위험한 순간이 닥칠 틈도 없이 바로 저 곳을 찾아 들어가 밤새 숨어있던 것 같았어요. 길에서 살아 남았던 이유가 다 있는 거겠죠. 저는 외출하는 초롬이가 여전히 불안하지만서도 녀석이 가진 스스로를 지키려는 본성과, 저리도 야물딱진 판단력과, 고양이 특유의 타고난 신체적 능력과, 근면한 생활력을 조금 더 믿어 보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초롬이는 밖을 좋아하니까요ㅠㅠ


초롬이를 집에 데려오는 건 제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아이들에게 생깁니다. 초롬이는 다른 고양이와는 잘 지내지 못하는 아이라서요. 3년 가까이 밥을 주면서 다른 고양이와 친분이 있던 일화는 한 번도 듣거나 본 적이 없고, 늘 싸우거나 도망 다니는 것만 보아왔습니다. 귀 컷팅 흔적 없이 중성화도 이미 되어 있으니 아마 성묘가 될 때까지 외동으로 키워지다 이 동네에 버려졌을 거라고 추측만 할 뿐입니다. 언젠가 가게를 정리하는 날이 오면 그 때는 어쩔 수 없이 집에 들여야 하겠지만, 그때까지는 초롬이가 원하는 삶을 살게 해 주고 싶네요. 간간히 바깥 생활을 하면서도 가게에서 먹고 자고 지내는 이런 이중 생활을 초롬이가 스스로 선택했고, 피치못할 사정이 생길 때까지는 그 선택을 존중하고 싶달까요.


[파이 이야기]에 나왔던 내용이 떠오릅니다. 야생동물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말이에요, 이를테면, 안전이 보장된 '동물원 생활'과 반면 모든 것이 자유로운 '야생에서의 생활'에 대한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그리고 동물 스스로가 진심으로 그 문제에 관해 고뇌할 수 있는 지성과 우리에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들은 과연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 저는 동물이 선택할 만큼의 환경이 갖춰진 동물원 생활을 우리가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미련없이 단번에 믿고 선택할 수 있는 그런 동물원을 만드는 것이, 동물학을 전공하던 제 대학 시절의 이룰 수 없는 꿈같은 것이었지요. 이해들 하시려나요. 이 말을 십수년 전 서울대공원 사육사 면접 때 했었어야 했는데. 면접관들은 다른 지원자들과 달리 정장을 입고 오지 않은 저에게는 어떠한 질문도 하지 않더라고요. 거 참, 사람 볼 줄 모르네. 하여간 초롬이는 그 경계선에서 줄을 타는 중일 거라고 제 멋대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아님 말구요.


그래서 오늘도 초롬이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 할 뿐입니다. 물론 그 이후로도 또 외출은 했어요. 대신 멀리 가지 말고 일찍일찍 들어오라는 저와의 약속을, 초롬이도 최선을 다해 지켜주었습니다. 아마도 이와 같은 사건이 언젠가 또다시 벌어질 테고 그게 여러 번이 될 수도 있겠지마는, 그럴 때마다 저는 또 지옥의 문턱까지 다녀오겠지마는, 길지도 않은 묘생인데 지금 이 순간 초롬이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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