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알록달록 Apr 11. 2024

뜨개질 빌런

20240410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벌써 1년이 됐다. 아니, 한참은 된 것 같은데 아직도 1년 밖에 안됐다. 제사상 사진은 산소에 가지 못한 나에게 엄마가 보내준 거고, 산소에 가지 못한 엄마에게 삼촌들이 보낸 사진이었다. 할머니의 제사상이라니 두 단어의 조합이 우리에겐 여전히 비현실적이지만 평생을 제사상만 차리신 할머니가 이젠 가만히 누워 받기만 하셔도 되는 거니까 그런 점에서는 다행이다. 우리 할머니 멜론 참 좋아하셨었는데 다음 번엔 삼촌들한테 건의 좀 해 봐야 겠다.


아직도 나에 대한 새로운 점들을 발견한다. 내가 뭐 하나를 진득하게 오래 하지 못하는 이유는, 오히려 그걸 너무도 지나치게 열심히 해서였단 걸 뜨개질을 하며 깨달았다. 관심이 가는 새로운 대상이 생기면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가며 무섭게 그것만 한다. 유튜브와 인스타 알고리즘엔 어느새 니팅 컨텐츠만 뜬다. 그러면 제공받은 영감을 따라 또 더 깊이 파고 든다. 그러다 보니 요새 많이 피곤하다. 이러니 쉽게 지쳐버려서 뭘 오래 할 수가 없던 거다.


그렇게 과몰입에 빠지는 이유는 역시 회피였다. 최근에 또 왜 이렇게 기시감이 드는 열정이 갑자기 생겼나 했더니, 뜨개질이라는 대상의 영향보다는 피하고 싶지만 해결해야 하는 버거운 일이 있어서였다. 원인을 알고 회피를 시작한 게 아니라 이게 회피성이라는 걸 뒤늦게 유추한 거다. 그만큼 회피가 몸에 습관처럼 밴 거겠지. 얼마 전 아부지의 금전 문제로 아부지와 또다시 엮이게 됐는데 시기를 보아하니 딱 맞아 떨어진다. 그때부터 무의식 중에 몰두할 것을 탐색하면서 이번엔 뜨개질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지만 감당하긴 힘들어 직면하기 싫다. 그래서 해결을 미루면서 또 예쁜 실을 찾고, 좋다는 바늘을 사고, 저장강박의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고,,,


내가 합리화의 달인인 어른으로 자랄 줄이야. 이젠 어느 경지를 넘어서 '자기합리화' 자체도 합리화를 한다. 내가 합리화를 하는 이유는 합리화라도 하는 것이 실제로도 합리적이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거든. 누군가는 정신 승리에 불과하다고 후려치겠지만 나에게 이 과정은 본능적으로 나를 지키려는 자기 보호 기전이나 마찬가지였다. 회피성에서 기원한 욕구와 열정일지라도 그렇게 다른 곳에 메달려야만 삶을 지속할 수 있었고, 아무런 의욕도 없이 우울증에 빠져있는 것 보다야 엉뚱한 일이라도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것이 차라리 희망적이기까지 했다. 내가 지금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있지만 나에겐 밤마다 몰래 손망치로 판 벽의 조각돌로 작은 인형을 깎아 만들어 겨우 숨구멍만한 쇠창살 창가에 전시하는 취미가 있는 거지. 조각 인형이 늘어나고 완성도가 높아질 수록 사실은 탈출구의 끝에 조금씩 더 가까워 지고 있을 테다. 열중한 만큼 절박했을지도 모르겠다. 쇼생크 탈출의 앤디 듀프레인 처럼,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자유를 향해 느리지만 천천히 나아가고 있는 거라고 믿기로 했다. 그게 내 합리화의 합리적 합리화다.


아직은 코스터 나부랭이나 뜨는 정도지만 뜨다 보니 떠 주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생각났다. 얼른 열심히 연습해서 이것저것 잘 만들게 되면 여기저기 선물해 주고 싶다. 청소 빨래 후딱 하고 오늘도 자기 전에 뜨개질 해야징!



작가의 이전글 초롬이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