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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규 Jan 02. 2023

김병규의 [소비 연비] 이야기 (18)

소비 연비를 높이는 기술 #14 "중고 거래의 유혹에서 벗어나라"

안녕하세요. 브랜드와 소비자에 대해 연구하는 연세대 김병규입니다. 저는 브런치와 같은 [긴 글 공간]이 가진 가치와 힘을 믿습니다. 이곳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서 - #호모 아딕투스 #노 브랜드 시대의 브랜드 전략 #플랫폼 제국의 탄생과 브랜드의 미래 #플라스틱은 어떻게 브랜드의 무기가 되는가 #감각을 디자인하라) 



소비 연비를 높이는 기술 

#14 "중고 거래의 유혹에서 벗어나라"



#"당근이세요?"


많은 사람들이 “당근이세요?”라는 말의 의미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를 띠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아직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보충하자면 ‘당근이세요?’라는 말은 중고 거래 플랫폼인 당근마켓 이용자들이 거래를 하기 전에 서로를 확인하기 위해 사용하는 표현이며, 당근마켓 광고 캠페인의 핵심 슬로건이기도 합니다. 최근 당근마켓이나 중고나라와 같은 중고품 거래 플랫폼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중고품 거래 시장의 규모는 24조 원으로 2008년과 비교해서 6배나 성장했고, 당근마켓의 월평균 이용자 수는 무려 1800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2022년 5월 기준). 한국의 가구수가 2000만 가구임을 고려할 때, 열 집 가운데 아홉 집에 달하는 이용자 규모입니다. 이 정도면 중고품 거래 시장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겠죠. 


중고 거래 자체가 새로운 현상은 아닙니다. 20여 년 전 이베이나 옥션과 같은 P2P플랫폼(개인과 개인이 직접 거래하는 플랫폼)이 등장한 이후로 중고 거래 시장은 계속 성장세에 있었고,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를 이용한 중고 거래도 계속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새 갑자기 중고 거래 이용자 수와 거래액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언론과 전문가들은 중고품 거래가 늘어난 이유로 MZ 세대의 특성을 많이 이야기합니다. 이들은 체면보다 가성비를 중요시하는 실용적인 소비를 하기 때문에 중고품 거래가 늘어났다는 것이죠. 하지만 중고 거래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MZ세대뿐만 아니라 전 연령대에서 중고 거래가 폭넓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MZ세대의 실용적 소비 때문'이라는 분석이 중고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이유는 설명해줄지언정 중고품에 대한 공급이 늘어난 이유는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중고품 거래 시장이 크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중고 물품의 수요와 공급이 모두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게다가 과거에 비해 사용기간이 짧고 새 물건처럼 상태가 좋은 중고 물품이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새 물건과 다름없는 물건들이 저렴한 가격에 판매된다면 당연히 높은 수요를 만들어냅니다. 과거에는 중고품으로 판매되는 제품들이 낡고 품질이 좋지 않았습니다. 이런 물건들은 아무리 가격이 저렴해도 구입하려는 수요는 한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요즘 중고 거래를 통해 물건을 많이 구입하는 이유는 예전처럼 낡고 오래된 중고품을 값싸게 사기 위해서보다는 새것과 다름없는 물건을 저렴하게 구입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즉, 중고 거래 시장에 유입되는 물건의 품질이 좋아졌기 때문에 중고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왜 새것 같은 중고 물품들이 요즘 많이 공급되고 있는 것일까를 이해하는 것이겠죠. 그 이유는 사람들이 소비를 제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소비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제품을 구입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광고와 할인에 노출되고, 간편 결제는 손쉽게 소비 욕구를 충족시키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삶에 꼭 필요하지 않은 제품들을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광고나 할인 때문에 충동적으로 구매한 물건들은 제대로 사용되지 않기 쉽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 안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게 되는 경우가 많죠. 사람들은 이런 제품들을 처분해서 금전적 손실을 최소화하려고 하게 됩니다. 그래서 얼마 사용되지 않은 물품들이 지금 중고 거래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새것 같은 중고품이 많이 공급되면 중고 물품에 대한 수요의 한계가 없어지게 됩니다. 낡고 오래된 중고품에 대한 수요는 저소득층으로 한정됩니다. 하지만 새것과 다름없는 제품을 저렴하는 것은 소득과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요즘은 소득이 많은 사람들도 중고 제품을 많이 구입하게 되는 것이죠. 


#중고 거래가 소비를 더 흔하게 만든다


중고 거래 시장의 성장은 여러 가지 긍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우리가 구입하는 대부분의 제품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집니다. 특히, 내구성이 높은 제품의 경우, 제품을 만들 때 사용되는 플라스틱들은 플라스틱 소재의 특성과 함유된 화학성분 때문에 재활용이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재활용으로 분리배출해도 대부분 매립되거나 소각됩니다. 환경에 큰 부담을 주는 일이죠. 플라스틱으로 새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탄소가 배출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한번 구입된 제품이 폐기되지 않고 다른 사용자에 의해 다시 사용되는 것은 환경 보호에 분명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또한 중고 거래는 판매자와 구입자 모두에게 경제적인 이득을 주죠. 그래서 중고 거래 시장의 성장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위험성이 존재합니다. 중고 거래 시장의 성장이 소비를 더 흔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선 중고 물품을 구입하는 사람 측면에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중고품 거래 앱에 접속해서 물건을 구경하다 보면 새것과 다름없는 제품인데 너무 저렴하게 판매되는 제품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런 제품을 발견하게 되면 사람들은 숨겨진 보물을 찾은 것 같은 큰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중고품은 대량으로 공급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개별적으로 공급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발견하기 전에 재빠르게 이 보물을 획득해야 한다는 경쟁 심리도 발동하게 됩니다. 그래서 꼭 필요하지도 않은 제품들을 구입하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쇼핑몰을 구경하다가 큰 할인을 만나면 충동적으로 제품을 구입하듯이, 중고 제품을 구경하다가 보면 새것 같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크게 낮은 가격에 판매되는 제품을 발견하게 되고 소비 욕구가 강하게 발동하면서 충동적으로 제품을 구매하게 되는 것이죠. 즉, 중고 물품에 대한 구경이 충동구매를 유발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새것처럼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구입하게 되면 강렬한 쾌감이 느껴지면서 중고 거래에 중독이 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주변에서 '당근 중독'이라는 말도 흔하게 들을 수가 있습니다. 틈만 나면 당근마켓과 같은 중고 거래 앱을 켜고 보물 찾기에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만큼 중고품 거래 시장에 보물 같은 물건들이 많이 공급되고 있고, 거기에 중독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죠. 


이번에는 중고 물품을 파는 사람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사람들은 제품을 구입하기 전에 자신이 선택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 걱정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을 경영학에서는 ‘위험’이라고 부릅니다. 제품 구매 시에 인식되는 위험은 사람들로 하여금 제품을 구매하기 전에 더 많은 정보를 찾고, 더 신중하게 결정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중고 거래 시장의 성장은 소비를 할 때 느껴지는 위험을 크게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편리한 중고 거래 앱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구입한 제품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언제든지 중고로 쉽게 판매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새 제품을 구입할 때 덜 신중하게 결정하게 되고, 구매 결정에 망설임이 사라지게 됩니다. 중고 거래 시장이 활성화된 덕분에 사람들은 새 제품을 더 쉽게 구입하게 되고, 그렇다 보니 중고 거래 시장에 얼마 사용되지 않은 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죠. 즉, 중고 거래 시장의 성장이 사람들로 하여금 새 제품에 대한 소비를 제어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중고 거래 시장이 이처럼 크게 성장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MZ 세대가 이전 세대보다 더 실용적이어서도 아니고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중고 거래가 늘어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새것처럼 좋은 물건이 중고 거래 시장에 수없이 많이 공급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같은 이유로 중고 거래 시장은 앞으로 더욱 크게 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고 거래 시장이 성장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새 제품을 더 쉽게 구입하게 되고, 새 제품을 더 쉽게 구입하면 할수록 중고 거래 시장에 공급되는 좋은 물건(즉, 보물)도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중고 거래 시장의 급성장은 소비를 제어하지 못하는 시대의 자화상과도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중고 거래를 하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잘못 구매한 물건이라면 중고로 판매해서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고, 자신에게 꼭 필요한 물건을 중고로 저렴하게 구입하는 것도 현명한 행동인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중고 거래가 자신의 소비를 흔하게 만들고 있지 않은 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새 물건을 구입할 때 '마음에 안 들면 중고품으로 팔아야지'라면서 쉽게 구매 결정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꼭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보물 찾기의 즐거움 때문에 구입하는 것은 아닌지 늘 스스로에게 물으며 소비를 결정해야 합니다.



소비 연비를 높이는 기술 - #14 중고 거래의 유혹에서 벗어나라


중고 거래 시장의 성장이 소비를 흔하게 만들고 있다. 새 물건을 구입할 때 '마음에 안 들면 중고품으로 팔아야지'라는 생각으로 쉽게 구매 결정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꼭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보물 찾기의 즐거움 때문에 구입하는 것은 아닌지 늘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한다.  



(*이 글을 브런치에 올리기 시작한 2022년 12월 기준으로 "소비 연비", "돈의 연비"라는 단어는 구글, 네이버, 다음 등에서 전혀 검색이 되지 않습니다. 이 글이 "소비 연비", "돈의 연비"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곳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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