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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규 Jan 02. 2023

김병규의 [소비 연비] 이야기 (15)

소비 연비를 높이는 기술 #11 "좋은 것은 나중에 가져라"

안녕하세요. 브랜드와 소비자에 대해 연구하는 연세대 김병규입니다. 저는 브런치와 같은 [긴 글 공간]이 가진 가치와 힘을 믿습니다. 이곳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서 - #호모 아딕투스 #노 브랜드 시대의 브랜드 전략 #플랫폼 제국의 탄생과 브랜드의 미래 #플라스틱은 어떻게 브랜드의 무기가 되는가 #감각을 디자인하라) 



소비 연비를 높이는 기술

#11 "좋은 것은 나중에 가져라"



#고가 제품을 구입하기 시작하면 되돌아가기 어렵다


사람들이 구입하는 물건들은 모두 가격대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어떤 물건은 값이 비싼 대신에 품질이 더 좋거나 더 많은 기능을 갖추고 있고, 어떤 물건은 값이 저렴하지만 품질이 낮거나 기능이 제한적입니다. 예컨대, 동일한 스킨케어 화장품이더라도 어떤 제품은 수백만 원에 이르고, 어떤 제품은 몇 천 원에 불과합니다. 화장품뿐만 아니라 자동차, 전자제품, 의류, 신발, 식품, 술, 여행 상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품군에 있어서 다양한 가격대가 존재합니다. 심지어 생수나 임플란트 치아에도 가격대가 다른 제품들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돈을 더 주고서 좋은 물건을 살 것인지 아니면 덜 좋은 물건을 사는 대신 돈을 아낄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과거 경영학자들은 가격대에 대한 선택이 소득의 함수라고 생각했습니다. 소득이 많은 사람들은 비싼 물건을 구입하고, 소득이 낮은 사람들은 저렴한 물건을 구입한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런데 지금은 더 이상 그렇지가 않습니다. 집이나 자동차처럼 고가의 제품들은 여전히 소득 수준의 영향을 받지만, 대부분의 제품군에 있어서 높은 가격대의 제품을 구입하는 것은 소득과 상관없이 개인의 선택이 되고 있습니다. 소득이 낮아도 럭셔리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고, 소득이 많아도 저가 제품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죠.


고가 제품을 구입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고가 제품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은 제품들보다 품질이나 성능이 더 뛰어나기 때문에 돈을 더 주고서 더 나은 품질과 성능을 손에 넣는 것이니까요.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품질이나 성능을 가진 좋은 제품을 구입하고 거기에서 큰 만족감을 느끼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고가 제품 구입에는 한 가지 위험이 존재합니다. 고가 제품들을 구입하면 낮은 가격대의 제품을 구입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점입니다. 


다니엘 카네만은 심리학자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사람입니다. 행동경제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탄생에 큰 기여를 한 사람이죠. 다니엘 카네만이 제시한 여러 가지 이론 가운데 전망이론 Prospect Theory라는 것이 있습니다. 핵심만 간단히 요약하자면, 재화를 얻는 일보다 재화를 잃는 일이 사람들에게 더 큰 심리적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100만 원을 얻게 되었을 때 느끼는 기쁨의 크기보다 100만 원을 잃게 되었을 때의 상실감의 크기가 더 크다는 것이죠. 자신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현상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익보다 손실에 감정적으로 크게 반응하는 것이 돈에 대해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경험하는 모든 것에서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집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번에 이사를 하게 되어서  깨끗하고, 넓고, 전망이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무척 기쁘겠죠. 그런데 만약 반대로 깨끗하고 넓고 전망이 좋은 집에서 오래되고 좁고 전망이  좋은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 어떨까요? 앞서 느꼈던 기쁨보다 훨씬  크기의 절망과 슬픔을 느끼게 됩니다. 인생의 패배자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아예 삶의 의욕을 잃게  수도 있습니다.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경험도 마찬가지입니다.  높은 가격대의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던 사람이 소득의 감소로 인해서 어쩔  없이 낮은 가격대의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면 큰 절망감을 느끼게 됩니다. 


한번 높아진 소비 수준은 원래 상태로 돌아갈 때 큰 고통이 따르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소비 수준을 어떻게 해서든 유지하려고 하게 됩니다. 소득이 낮아져서 소비를 줄여야만 할 때도 계속 고가 제품들을 구입하고 싶게 됩니다. 이것이 높은 가격대의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닌 이유입니다. 늘 고가의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부자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소비 생활을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한 때는 고가의 제품만을 구입하던 사람이더라도 언젠가는 저가 제품 밖에는 사지 못하는 날이 오는 것이 사람의 인생입니다. 잘 진행되던 사업이 어느 날 갑자기 어려워질 수도 있고,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한 곳에서 갑자기 나가게 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AI 때문에 자신의 직업이나 직장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평생 높은 수준의 소비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소비 수준을 낮추게 되면 커다란 절망감과 우울감을 느끼게 됩니다.


#나빠지는 삶을 살 것인가, 나아지는 삶을 살 것인가?


 가지 인생을 상상해 보겠습니다.  인생은 바닥에서 시작하지만, 매년 조금씩 올라가서 마지막에는 높은 곳에 다다르는 인생입니다. 다른 인생은 가장 높은 곳에서 시작하지만, 매년 조금씩 내려가서 마지막에는 바닥에 이르는 인생입니다. 여러분은  인생 가운데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요? 저는 당연히  번째 인생을 선택하겠습니다. 젊은 시절에  성공을 거둔  계속 내리막길을 걷는 인생보다는, 처음에는 어렵고 힘들더라도 조금씩 나아지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삶을 원합니다. 실제로  연구에서는 참가자들로 하여금 처음에는 낮았다점점 높아지는 연봉과 처음에는 높았다가 점점 낮아지는 연봉 중에서 선택하게 하였더니 많은 참가자들이 점점 높아지는 연봉을 선택했습니다. 30대에 연봉 1 원으로 시작해서 50대에 3000 원을 받기보다는, 3000 원으로 시작해서 나중에 1 원을 받는 삶을  선호하는 것이죠. 받는 임금의 총액을 현재가치로 계산하면 처음에 큰돈을 받는 것이  유리한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나빠지는 삶보다는 좋아지는 삶을 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소득이나 일에 있어서 내리막의 삶보다는 오르막의 삶이 좋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이런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유독 소비에 있어서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득이나 일만큼 소비도 사람의 행복에 일평생 큰 영향을 미칩니다. 당연히 소비 수준도 내리막을 걷는 소비보다 오르막을 걷는 소비를 하는 것이 삶의 만족감과 행복감을 위해서 더 좋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쓸 돈이 없더라도 지금 당장 무리해서 가장 높은 가격대의 제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오르막의 삶을 원하면서도 소비에 있어서는 그런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일까요? 간단한 이유가 있습니다. 자신의 소비 결정을 자신의 인생이라는 긴 시간 속에서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소비는 일평생 반복되는 일입니다. 겨울 외투를 구매하는 30세의 소비자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지금부터 5년마다 겨울 외투를 새로 구입한다고 가정하면  소비자는 80에 이를 때까지 10벌의 외투를 구입하게  것입니다.  번이 아니라 10번이나 반복해서 겨울 외투를 사게 되는 것이죠. 이처럼 자신의 평생을 고려하면 지금 구매하는 외투가 반드시 고가의 제품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쉽게 깨달을  있습니다. 지금 값비싼 외투를 구입하고서 나중에 저렴한 외투를 구입하기보다는, 지금 당장은 저렴한 제품을 구입해도 나중에 좋은 외투를 마련하겠다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소비를   이번 소비가 여러  반복되는  중의  번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오직  번이라는 생각으로 구매 결정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자신이 구입하고 싶은 가장 좋은 제품을 구매하고 싶어지는 것이죠.


고가품을 구입하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금 자신이 내리는 소비 결정이 단 한 번의 결정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결정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자신이 지금 구입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구매에 만족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언젠가는 더 좋은 제품을 구입하면 된다는 생각만으로도 자신의 소비에 대해서 더 만족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삶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미래보다는 지금이 중요하기 때문에 지금 자신이 가지고 싶은 가장 좋은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 더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소비는 결국 정해진 소득을 일평생에 걸쳐서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지금도 고가 제품을 구입하고, 나중에도 언제나 고가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즉 높은 소비 수준을 언제까지나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삶을 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삶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지금 소비를 늘리면 나중에 소비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많은 소비를 하고 나중에 소비를 줄여야 하는 고통과 좌절감을 겪는 것보다는, 지금 소비를 줄이고 나중에 소비를 늘리는 것이 삶 전체의 만족감과 행복감을 위해서 더 나은 선택이겠죠.


인생은 길고 사람들은 일평생 수없이 많은 소비에 대해서 결정을 해야 합니다. 인생이라는 긴 시간 속에서 자신의 소비를 바라보면 지금껏 자신의 소비 결정을 지배하던 욕망과 집착들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지금 가장 좋은 제품을 사지 않더라도 속상하거나 부끄럽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겐 내일이 있으니까요. 지금이 아니라 내일을 생각하면서 함께 오르막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소비 연비를 높이는 기술 - #11 좋은 것은 나중에 가져라


소비는 일평생 반복되는 일이다. 지금 당장 가장 좋은 물건을 사야 할 필요는 없다. 지금은 좋지 않은 물건을 사더라도 나중에 좋은 물건을 사는 삶이 더 큰 행복을 준다는 것을 기억하자. 




(*이 글을 브런치에 올리기 시작한 2022년 12월 기준으로 "소비 연비", "돈의 연비"라는 단어는 구글, 네이버, 다음 등에서 전혀 검색이 되지 않습니다. 이 글이 "소비 연비", "돈의 연비"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곳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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