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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규 Jan 02. 2023

김병규의 [소비 연비] 이야기 (20)

소비 연비를 높이는 기술 #16 "제품에 생명을 부여하라"

안녕하세요. 브랜드와 소비자에 대해 연구하는 연세대 김병규입니다. 저는 브런치와 같은 [긴 글 공간]이 가진 가치와 힘을 믿습니다. 이곳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서 - #호모 아딕투스 #노 브랜드 시대의 브랜드 전략 #플랫폼 제국의 탄생과 브랜드의 미래 #플라스틱은 어떻게 브랜드의 무기가 되는가 #감각을 디자인하라) 



소비 연비를 높이는 기술 

#16 "제품에 생명을 부여하라"



#새로운 제품의 존재가 불필요한 소비 욕구를 만들어낸다


구입한 제품들은 어느 순간 품질이나 성능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가구는 낡기 시작하고, 전자 제품들은 일부 기능이 되지 않거나 때때로 작동이 멈추기도 합니다. 업무에 지장을 주거나 사용하는데 큰 불편함을 주는 제품들은 새 제품에 자리를 내어주게 됩니다. 그런데 제품이 교체될 때에는 제품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해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새로 나온 제품 때문에 상대적으로 좋지 않게 느껴져서 교체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실은 사용에 큰 지장이 없지만 낡은 느낌이 들어서 교체되는 것이죠. 


제가 집에서 사용 중인 선풍기가 있습니다. 10년 이상 사용하다 보니 색은 누렇게 변했고, 리모컨은 작동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용을 하는 데 아무런 지장은 없습니다. 버튼을 누르면 바람이 나오는 선풍기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 나오는 최신형 선풍기와 비교를 해보면 제 선풍기가 갑자기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요즘 나오는 선풍기들은 미니멀한 디자인을 갖추고 있고, 소음도 별로 없습니다. 회전도 좌우 회전뿐만 아니라 수직 회전도 가능하고 360도 회전 기능이 가능한 제품도 있습니다. 스마트폰과 연동해서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 선풍기들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신제품과 비교해보면 제 선풍기가 낡고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선풍기지만, 비교를 하는 순간 갑자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소비에 대한 욕구가 꿈틀 되기 시작합니다. 선풍기뿐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새 제품으로 교체하는 많은 물건들이 사실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신제품과 비교해서 뒤떨어지기 때문에 교체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의 소비 욕구를 유발하는 신제품의 등장 주기가 훨씬 길었습니다. 신제품이 등장하더라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신제품의 등장 주기가 무척 짧습니다. 새로운 제품을 구매해도 금세 자신이 구입한 것보다 더 좋은 제품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통해서 사람들은 새로 나온 제품의 광고나 소식을 빠르게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자신이 가진 제품에 대해 쉽게 불만족하게 되고 새로 나온 제품을 갖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가지게 됩니다. 


#제품에 생명력을 부여하라


환경 보호를 위해서나 자신의 경제적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은 자신이 구입한 제품을 최대한 오래 사용하는 것입니다. 제품에 이상이 생기면 고쳐서 사용하고, 더 이상 고칠 수 없는 상태가 될 때까지 사용하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도, 환경을 위해서도 가장 좋은 일이죠. 하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에 노출되는 지금 시대에 제품을 수명이 다할 때까지 사용하는 일은 무척 어렵습니다. 어떻게 하면 제품을 최대한 오래 사용할 수 있을까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제품에 이름을 붙여주고, 생명이 있는 존재처럼 대하면 됩니다.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마칠 무렵, 교수로 채용된 학교가 있는 도시로 이사를 가기 직전에 제가 타고 다니던 자동차를 온라인 직거래를 통해서 판매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제 차는 8만 km 넘게 운행을 한 낡은 차였습니다. 펜실베이나주의 작은 시골 동네에서 '제시 Jessi'라는 젊은 여성이 제가 있던 필라델피아로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차를 살펴보고 운전을 해보고는 그 자리에서 수표를 주고 구입을 해갔습니다. 그런데 거의 10년이 지난 2018년 이 차를 구입한 제시로부터 이메일을 한통 받았습니다. 이번에 새 중고차를 구입하게 되면서, 이 차를 판매해준 제게 고마움을 전하는 이메일이었죠. 그녀는 이 차에 눈꽃 Snowflake라는 이름을 붙여주고서 많은 일을 함께 했다고 합니다. 지난 10년간 눈꽃이 그녀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메일을 받으면 큰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여전히 세상에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되죠. 동시에 저는 소비자행동을 연구하는 연구자이다 보니 이 이메일 속에 담겨있는 소비자의 심리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제품에 이름을 붙어주고서 마치 사람처럼 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의인화 anthropomorphism라고 합니다. 의인화는 사물에게도 생각과 감정, 의지가 있다고 생각하고 마치 사람처럼 사물을 대한 것을 말합니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무인도에 조난당한 톰 행크스가 배구공에 ‘윌슨’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서 대화를 하는 것이 바로 의인화입니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무인도에 조난을 당한 톰 행크스가 배구공을 윌슨이라고 부르면서 대화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이것이 의인화다.


의인화는 주로 어린아이들에게서 많이 관찰됩니다. 아이들은 사물에도 생각과 감정이 있다고 느끼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형이나 사물에 이름을 붙여주고 이들과 대화를 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은 사물과 사람을 분명하게 구분하기 시작합니다. 성인이 되면 사물을 의인화하는 일은 크게 줄어들지만, ‘캐스트 어웨이’의 톰 행크스처럼 외로움을 느끼는 상황이 되면 의인화 성향이 나타나고는 합니다. 대화할 사람이 없을 때 주변 사물이나 제품에 생명을 불어넣고서 대화를 하면 외로움을 이겨내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외롭지 않은 어른일지라도 의인화가 소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자신이 가진 제품을 오랫동안 사용하는 데 있어서 제품에 이름을 붙여주는 일은 큰 도움이 됩니다. 


사람과 기계의 차이점들을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어떤 차이들이 있을까요? 사람과 달리 기계에는 마음이 없고, 생각도 없고, 감정도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기계에 대해서는 완전무결하기를 기대하지만 사람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죠. 완전무결한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비인간적으로 느껴지고 거부감이 생기게 됩니다. 사람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 바로 사람과 기계를 구분해주는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완벽한 사람보다는 약간의 단점이 있는 사람을 더 좋아하고 친근하게 느낍니다. 반면 제품은 완벽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친구처럼 느껴지는 제품에 대해서는 어떨까요? 제품이지만 친구처럼 느껴지는 존재라면 단점이 있어도 그런 단점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단점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친근하고 가깝게 느껴지고, 때로는 동정과 연민도 느껴지게 될 것입니다. 


앞서 소개한 ‘눈꽃’의 예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제가 판매했을 때 이미 8만 km나 운행을 한 상태였고, 제시가 제가 이메일을 보냈을 때 차의 마일리지는 20만 km를 넘어선 상태였습니다. 제가 판매한 차를 운행하는 기간 동안 당연히 차에 많은 문제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시는 ‘눈꽃’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차를 자신의 친구처럼 대했기 때문에 차를 오랫동안 아끼며 사용할 수가 있었습니다. 차에 문제가 생겨도 새 차를 구입하기보다는 오히려 ‘눈꽃’을 보살피고 아껴주었던 것이죠. 


구입한 제품은 시간이 지나면 성능과 품질이 저하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새로 나온 제품을 보게 되면 자신이 가진 제품에 만족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제품들을 처분하게 됩니다. 제품을 쉽게 처분하지 않고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제품에 이름을 붙여주고 친구처럼 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단점이 단점으로 보이지 않게 됩니다. 단점 때문에 오히려 제품에 연민이 느껴지고, 제품을 정성껏 보살피게 됩니다. 제품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됩니다. 만약 오랜 기간 사용한 제품들을 새 제품으로 바꾸고 싶어 진다면 제품에 이름을 붙여보시길 바랍니다. 아주 간단한 방법이지만 제품과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최고의 방법이 될 것입니다. 



소비 연비를 높이는 기술 - #16 제품에 생명을 부여하라


오래된 제품에 이름을 붙여주고 살아있는 존재처럼 대하라. 그러면 제품을 더 아끼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이 글을 브런치에 올리기 시작한 2022년 12월 기준으로 "소비 연비", "돈의 연비"라는 단어는 구글, 네이버, 다음 등에서 전혀 검색이 되지 않습니다. 이 글이 "소비 연비", "돈의 연비"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곳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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