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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Jun 22. 2023

여름에는 비를 실컷 맞아야지

익어버리기 전, 나에게 주는 비라는 선물


여름이다. 이상하게 이번 여름은 짜증 나지 않는다. 물론 아직 7월, 8월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이상하리만치 시원하다. 별로 덥지 않다. 그토록 싫었던 여름이, 조금만 시원하니 이렇게나 좋아질 수가 있나.


종강을 반기는 멋진 여름 하늘

어제 종강을 했다. 이제 두 번 남은 여름방학이다. 여러 가지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 23살, 아직 나에게는 해보고 싶은 것들이 주체할 수 없이 많다. 그리고 이것들을 빨리, 더 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나의 이름이 Summer인 이유다. 내 안에 있는 무언가는 타오를 듯이 뜨거워서, 스스로도 주체하지 못할 때가 많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확 데어버릴 것만 같다. 이번 학기는 확실히 끓는점 그 이상이었다. 다양한 경험에 도전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발을 담갔다. 그리하여 확실하게 데이기도 했다. 아직 화상의 흉터가 완전히 아물지는 않았다.




내가 여름마다 꼭 듣는 노래가 있다.

히사이시 조의 Summer​.

 



사람들은 이 곡을 왜 이렇게 사랑할까. 여름의 뜨거움이 아니라 여름의 시원함을 담아냈기 때문이 아닐까. 겨울은 가질 수 없는, 여름만의 시원함. 그것을 히사이시 조는 완벽하게 그려낸다. 나도 이제는 '시원한' 여름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지금까지 내 젊음을 너무 뜨겁게만 보내려고 하지 않았나. 더 이상 타 죽을 듯한 한여름이 되어 나, 그리고 나의 주변을 익혀 버리고 싶지 않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항상 머리로는 '괜찮아, 천천히 하자' 되새기지만, 내 몸은 이미 그 불타오르는 열정에 반응해서 또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고 있다. 더 극적인, 나를 빠르게 성장시키는 경험을. 뜨거운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나의 몸은 이미 불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내 이상이 그런 걸 어쩌겠나. 그러니 나는 겨울이 아니고 여름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타고난 것인지, 자본주의 사회에 적절하게 가스라이팅 당한 것인지, 나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주변 사람이 '넌 그만해도 돼, 쉬어' 라고 해도, 새로운 경험이 선사하는 도파민을 이길 수는 없는 노릇.




생각해 보니 한여름에는 장마 기간이 있다. 뜨거운 태양에 데어 빨갛게 부어오른 피부도, 장마 기간을 지나고 나면 어느새 하얗게 되돌아와 있다. 한여름 같은 열정을 주체할 수 없다면, 그저 가끔은 비를 내려주자. 더 빨리, 더 많이, 더 극적인 경험을 찾아 나서다가, 완전히 데어 타버리기 전에 가끔씩은 나에게 장마를 선물해야겠다.


사람들은 장마 기간이 짜증 난다고 말한다. 하지만 장마 기간이 없다면, 그 뜨거움으로 올라온 수증기는 어디로 가야 하나. 장마가 없다면 지구는 끓어오르는 물을 차마 모두 머금지 못한 채 폭발해 버릴지도. 지금까지 나는 비가 싫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오기만 했다. 이제는 실컷 맞아보자. 감기에 걸리더라도, 후회하더라도. 그저 삶을 있는 그대로, 현재를 느껴보자.


그래서, 이번 방학에는 나에게 비를 내려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 불안함에 나 자신을 새로운 경험에 끊임없이 노출시키지 않아도, 지금 이 상태에서 만족하고 멈출 줄 아는 방법. 그리하여 삶을 온전히 즐기는 방법. 우산이 없어도 비를 맞으며 그저 제자리에 서 있으며 온몸으로 비를 느끼는 방법. 그것이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다.


써머야, 너무 덥다! 이젠 장마를 내려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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