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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May 22. 2023

어느 봄날의 斷想

바보


어제 D와 밥을 먹으면서 나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둘 다 기분이 매우 상해 도망치듯이 나왔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냐며 투덜대며 걷다가, 우리는 우연히 엄청난 카페를 발견하고 들어갔다. 카페의 작지만 귀여운 액자들, 감각적인 의자, 그리고 레터링이 들어간 비엔나 커피를 마시며 우리는 그것을 금새 잊을 수 있었다. 시험 기간이라고 스스로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묻지 못했던 본질적인 질문과 답변을 반복했다. 좋은 질문으로 하여금 정신은 금방 맑아졌고 그 일은 온데간데 없었다. 이럴 때면 가끔 내가 바보같기도 하다. 기분이 상한 건 언제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니 오히려 기분이 좋기까지. 가끔은 친구한테 머리 끝까지 화가 나있다가도 어느새 장난스러운 말 한마디에 잔뜩 풀어져버린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왜 이렇게 만만한 사람인가! 생각을 하지만, 역시나 바보같은 삶이 편하고 좋다. 사소한 것에 마음이 홀라당 돌고 마는 바보같은 내가 좋다.





교정(矯正)


교정 : 틀어지거나 잘못된 것을 바로잡음.

어머니께 10년간 해 달라고 졸랐던 치아교정을 오늘 드디어 하고야 말았다. 어머니는 항상 "그게 매력이야" 라며 내 작은 덧니를 그냥 두기를 원하셨다. 모두가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은 내가 괜찮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하게 된 교정의 느낌은 생경함 그 자체였다. 나는 결과만을 생각하며 '저렇게 되고 싶다'라고 생각했을 뿐, 과정에 있어서의 고통은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불편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가만히 있어도 욱신거렸다. 그 때 어머니가 말씀해주셨다. "한 3일에서 1주일만 지나면 익숙해져서 안 아플 거야." 아,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이러한 고통 또한 신경이 금방 받아들이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고통을 감내할 용기가 생겼다.


이렇게 괴로워하면서 문득 나는 치아만 교정할 것이 아니라 뇌에도 교정기를 달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상에서는 오늘도 뇌를 자극하는 정보들이 나도 모르는 새 나의 뇌 속으로 침투해버리곤 한다. 어느새 내 뇌 속에서는 덧니가 많이 자라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삐딱한 생각이 나의 일부를 지배하고 있겠지. 아, 오늘부터는 뇌에도 교정기를 달아야겠다. 좋은 글만을 읽고, 좋은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며, 좋은 답을 정의해 나가야겠다. 왠지 교정기를 단 것처럼 뇌가 묵직해짐을 느낀다. 아직은 고통스럽지만, "익숙해지면 안 아플 거야."





엄마가 아닌 엄마, 아빠가 아닌 아빠


보통 사람이라면 '일'을 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볼 기회가 잘 없으리라. 나는 가끔씩, 이 아니라 꽤나 자주, 어머니 아버지가 일하시는 걸 보게 된다. 오늘도. 아마도 직업의 특성 때문이겠지. 집에 항상 "둥둥아~" 를 큰 소리로 외치며 퇴근하시는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만 보다가도, 일을 하고 계신 부모님을 보면 "집에 없는 시간 동안의 부모님은 저런 모습이구나"를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을, 자식인 나는 보면 안 될 것 같은데, 봐버린 느낌이랄까. 엄마가 아닌 엄마였다. 아빠가 아닌 아빠였다. 사실은 어머니도 아버지도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 아버지가 아니다. 당신들이 나처럼  '한 사람' 이었음을 나는 항상 쉽게 망각해버리고 만다. 그럴 때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다시 각성하게 된다. 당연한 건 없다. 어머니, 아버지의 존재조차도. 이번 어버이날에는 어떤 편지를 써야 할까.




인생은 커피



누군가 나에게 제일 좋아하는 커피의 종류를 묻는다면, 막힘없이 '아인슈페너'라 답할 것이다. 오늘은 작년부터 가보고 싶었던 아인슈페너 맛집을 방문했다. 과연 이루 말할 수 없이 감동적인 맛이었다. 문득 나에게 묻고 싶어졌다. 나는 아인슈페너가 왜 좋을까? 생각해보니 아인슈페너는 단맛과 쓴맛을 둘 다 느낄 수 있다. 아주 따로따로, 때로는 섞어서 같이. 에스프레소처럼 아주 쓰기만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바닐라 라떼처럼 전체가 단물은 아닌 것이다. 달콤한 크림을 한 입 맛보다가도 아래쪽의 에스프레소를 마시면 쓴맛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다가 크림을 거의 다 먹어갈 때쯤이면, 섞어서 달콤쌉싸름한 맛을 즐기게 된다.


나는 아인슈페너같은 인생을 살고 싶다. 가끔씩은 아주 강렬한 에스프레소같기도, 가끔씩은 아주 부드러운 크림같기도 한 그런 인생 말이다. 내 주변에는 매번 진지하며 강렬한 경험을 추구하는 에스프레소같은 인생도 있고, 늘어진 여유를 사랑하는 크림같은 인생도 있다. 나는 그 중간, 어딘가에도 속하지 않는다. 애매해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는 않다. 그저 아인슈페너같은 사람인 것이다. 그게 내가 아인슈페너를 좋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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