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폐언유인의 (大道廢焉有仁義)
도(道)와 덕(德)을 '무엇으로 정의 내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어떠한 관점으로 도덕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 고로 논쟁이 벌어지지 않으면, 그것이 더 기이한 현상이다. 그렇다면 부도덕이란 무엇인가? 자칫 부도덕은 '도덕적이지 않음'이라는 단어 그대로의 뜻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하지만 부도덕이 내포하고 있는 깊이는 방대하다. 그 개념은 아래와 같이 여러 관점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부도덕에 대한 여러 관점: 4가지]
1. 덕 윤리의 관점에서 부도덕은 도덕적 '덕'의 결여이다. 도덕적 행위란 인간으로서의 '최선의 상태'를 실현한 것이며, 부도덕은 이러한 중용(中庸)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고로 '중용의 상태'에 대한 개인 간의 합치가 명확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부도덕을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2. 도덕성을 의무와 보편적 원칙에 따라 바라보면, 부도덕은 이성적으로 보편화될 수 없는 행위, 즉 칸트의 '정언명령'을 위반하는 행위일 수 있다. 따라서 부도덕은 윤리성의 법칙에 대한 적극적 위반을 의미할 수 있다.
3. 공리주의 관점에서 부도덕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감소시키는 행위이다. 즉, 부도덕은 도덕의 부재의 개념이 아닌 개인이나 사회에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는 어떠한 특정 행위일 수 있다.
4. 대도폐언유인의(大道廢焉有仁義), 대도(大道)가 쇠퇴하자 인의(仁義)가 나타났다. 무위자연의 도가 없어지자, 옳고 그름의 인위적 분별이 생겼다. (여기서 말하는 '도'는 세상의 근본 원리나 궁극적인 진리, 자연의 이치를 뜻함) 즉, 도덕의 인위적 출현이 오히려 인간의 본성을 억압한다. 도덕적 판단에 매몰되어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면, 인간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노자의 관점에서는 부도덕이 '인위적인 도덕과 법률에 의해 왜곡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주관적으로 도덕을 살펴보자면, 니체의 '노예 도덕'이 떠오른다. 인간은 타인의 억압 속에서 자신의 열등감 혹은 무력함을 정당화하기 위해 도덕이라는 가치 체계를 구축한다. 즉, 강자 혹은 패권이 있는 곳의 행동에 대한 반작용으로 '선'과 '악'을 정의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감각적 사고를 바탕으로 다소 사회에 불편을 초래할 수 있는 여러 행동을 '부도덕'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노예 도덕이 단순히 약자의 자기 정당화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억압받는 사람들이 생존하기 위해 선택한 윤리체계로서 그 유용성과 한계가 공존한다.
반대로 '주인 도덕'의 경우, 강력하고 창조적인 사람들이 만들어낸 가치 체계로 '선'과 '악'을 외부 기준이 아닌 자신의 관점에서 정의한다. 그렇기에 소수의 누군가는 타인이 주장하는 부도덕에 대한 관점을 신경 쓰지 않고, 기존의 도덕에 벗어나는 불편함을 초래하기도 한다. 부작용으로는 그들의 도덕 체계가 특정 집단의 억압이나 착취로 이어질 수 있다.
기존에 만연해 있는 도덕의 기준에서의 단순 확장이 새로운 도덕이 될 수 있지만, 기존 도덕 체계가 자신이 바라본 인간의 본질적 가치에 반한다면, 그것이 부도덕으로 보일지라도 세상에 불편함을 초래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구현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도덕적 공백에 대한 성찰도 필요하다.
니체의 철학은 네이밍에서부터 오는 불편함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현재 노예제도에서 해방되었지만, 과거 절대 인구 총계 대비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이제는 반발조차 어려운 심오한 노예제도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유와 도덕의 경계 속에서 어디를 더욱 바라볼 것인가?
앞서 다룬 부도덕 관점 중 4번인 '대도폐언유인의(大道廢焉有仁義)' 뜻을 쉽게 풀자면, 도가 사라진 세상에서는 본질적인 깨달음 대신 말이 많아지며, 자연스럽고 본래적인 덕은 사라진 채 인위적으로 강조된 도덕적 가치만이 남는 상태를 말한다. 도덕을 명분 삼아 여러 형태의 폭력을 휘두르는 대한민국 명절이 대표적 사례이다. 도덕의 기준이나 틀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하기에, 자신의 도덕적 가치를 후세에 전가할 수 없다. 만약 과거 조선시대에서 '실학' 없이 인의를 강조하는 '유교사상'만이 판쳤다면, 우리는 현재 기술만 남아있는 중진국의 대한민국이 아닌 고유성조차 부재한 후진국의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현대 사회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타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더라도 간접적인 해악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으면 부도덕으로 간주한다. 이에 표현의 자유가 잠재적 피해를 고려하게 된다면, 그것은 이미 자유에서 이탈된 것이다. 부도덕이라는 시선을 견디지 못한다면, 그 누가 새롭고 건전한 문화 가치를 이끌 수 있을 것인가? 도덕이라는 사슬에 묶이지 않고자 늘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해야 한다.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서나 사슬에 묶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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