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삿포로
24년의 겨울, 첫눈은 마치 오래 잠자던 감각을 흔들어 깨우듯 우리에게 강렬하게 다가왔다. 첫눈이 이렇게 소복이 쌓인 적이 있던가. 눈이 내린 다음 날, 운전을 하던 도중에 햇빛 아래 눈부시게 빛나는 눈꽃에 감탄을 하고 있었다. 그 찰나, 문득 머릿속을 스친 질문. '지금 하늘공원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그 상상만으로 가슴이 뛰었다. 나는 역시 참지 못하고, 그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다음날 바로 하늘공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주한 겨울 하늘공원은 자연 순백의 모습 그대로였다.
특히 눈꽃에 쌓인 억새의 모습이 궁금했다. 놀랍게도 억새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3~5cm 쌓인 눈으로 가벼운 억새가 버티지 못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겨울의 억새밭은 하얀 서리가 만들어내는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웠다.
과거 나의 브런치 글을 보면 여름과 가을 속 하늘공원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사계절 내내 다채로운 모습으로 매력을 뽐내는 하늘공원은, 국내 최고의 공원이라고 자부할 만큼 아름답다. 특히 겨울에는 비수기로 분류되어 방문객이 많지 않다. 주말에 방문하더라도 공원 곳곳이 한적해, 자연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눈이 덮인 하늘공원을 보려면 걸어 올라와야 한다. 안전사고를 대비해 정상까지 운행하는 맹꽁이차를 운행하지 않는다. 하지만 올라오는 길 자연이 빚어낸 가장 찬란한 예술작품인 눈꽃나무를 볼 수 있다. 눈꽃나무의 형태는 눈이 내린 직후 혹은 바로 다음날 정도만 유지된다. 그렇기에 그 순수함과 덧없음의 철학은 정말 찰나의 순간이다. 이는 동양 철학의 '무상(無常)'과도 통한다. 영원히 머물지 않는 존재는 비록 덧없지만, 바로 그 덧없음 속에서 더욱 빛나는 가치를 갖는다.
바람에 떨리는 가지마다 얹힌 눈꽃은 위태로운 만큼 진실된다. 어쩌면 우리는 눈꽃나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볼지 모른다. 하얗게 수 놓인 거대한 창공은 마치 세계의 미학을 은유하는 듯하다. 침묵 속에서 빛나는 진실은 차갑지만 위대하다.
겨울의 고요함에 휘감기며 Robert Frost(로버트 프로스트) <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The only other sound’s the sweep.
Of easy wind and downy flake.
다른 소리는 단지 부드러운 바람과 눈송이의 가벼운 움직임뿐이다.
Photo by B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