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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읍 Apr 19. 2023

0_프롤로그

스타트업 7년 차 직장인의 연차별 성격 변화.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질문에 답하기도 전에 또 다른 질문들이 읽지 못한 카톡 메시지처럼 쌓여가기 시작했다. 몇 살이에요? 집은 어디예요? 회사까지 얼마나 걸려(요)? (여기서부터 반존대 시작) 군대는? 갔다 왔지? 담배는? 술은? 등의 호구조사가 이어지던 도중, 낮은 톤이지만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오는 왼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요즘 친구들은 확실히 근성이 부족해. 최소 3년은 해보고 다른 일을 해야지.



디자인이 너무 어려웠어요? 영업은 더 어려울 텐데? 세상에 쉬운 건 없어요." 그때 직감했다. 여기서 하나라도 답변하면 남은 회사 생활은 아주 아주 굉장히 불편해질 것이라는 것을. 그러나, 걸어오는 싸움은 피할 이유가 없다고 외치던 27세의 나(직업 : 호전광)는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답변을 건넸고, 그렇게 두 번째 사회생활이 시작됐다. 아주 아주 굉장히 불편하게.


속성으로(약 반나절만에) *온보딩 과정이 종료되고, 업무에 투입했다. 첫 번째 업무는 서비스를 숙지하는 것이 아니라 다짜고짜 **콜드 콜을 돌리는 일이었다. 화장실 위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나에게 회사에서 갖고 있는 다양한 매체(종합광고대행사였기에 PPL부터 패널 ; 개콘 끝나고 나오는 이미지 '사임당 화장품에서 백화점 상품권을'까지 종류가 다양했음에도 불구하고)를 제안해보라는 것이었다. 하기 싫은 표정이 드러났는지, 콜드 콜을 돌려보면 왜 하라고 했는지 알게 될 테니 우선 돌려보라고 했다.



*온보딩(Onboarding) | 영어로 '배에 탄다'는 뜻으로 신규 직원이 조직에 수월히 적응할 수 있도록 업무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 등을 안내·교육하는 과정을 뜻한다.

**콜드 콜(Cold-call) | 약속이 되어있지 않은 잠재적 고객에게 전화를 통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도록 제안하는 영업 방식을 뜻한다.



소개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대부분의 통화가 끝났기 때문에, 당황할 겨를조차 없었다.
주로 돌아오는 답변은 아래와 같았다.

1) 괜찮아요 | 2) 통화하기 어려워요 | 3) 뚝

1,2번의 경우 진짜 어려울 수도 있으니(약 90% 이상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빨리 끊고 싶었을 것이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어떤 방법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문제는 3번이었는데 3번의 상황을 마주하고 보니, 걸어오는 싸움을 마다하지 않던 호전광의 자신감을 깔끔하게 두 동강 내버렸다. 끊어진 전화를 5초 정도 들고 있다가, 내려놓으며 이내 혼자 중얼거렸다. 이걸로 미팅을 잡는다고..?


양해를 구하고 선배들 옆자리에 찰싹 달라붙어, 한 명 한 명의 콜드 콜을 돌리는 방식을 구경했다. 그리고, 더 큰 혼란 속에 빠지게 됐다. 각자의 스타일이 다 달랐음에도, 닮고 싶거나 흉내 내고 싶은 스타일이 하나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이 없어서 생각해 낸 핑계일지도 모른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 약 160g(유선 전화기의 수화기 무게 - 유선 전화기 본체는 약 380g 정도 | 출처 : 네이버 블로그 - 다이어트 토마토) 정도 되는 수화기를 힘겹게 들어 올렸다.


'안녕하세요, 종합광고대행사 OOO 쓰읍입니다. 방학 기간 동안에 대학생들이 많이 보는 채널에 광고 제안드리고자 전화드렸습니다'를 한 호흡에 절지(틀리지) 않고, 뱉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로 뜻밖의 음성이 들려왔다.


네, 좀 더 자세한 설명이 듣고 싶어요. 미팅을 하시죠.


어? 이게 되네..? 하는 기쁨도 잠시, 다음 시나리오가 없는 상태에서 상황이 진행됐기에 입안은 이미 텁텁해진 상태였다. '그럼 언제가 편하실까요? 저흰 여의도 아니 국회의사당 근처에 있고 편하실 때 어..' 주절주절하며 통화가 길어지자 오른쪽 옆자리 선배가 손짓을 하며 전화기 옆에 놓인 이면지를 가리켰다. '가능하신 시간을 몇 개 말씀해 주시겠어요?' 나는 눈썹을 들어 올리는 동시에 고개는 숙이며 감사인사를 전했고 통화를 이어갔다. 이후 '네, 그럼 내일 오후 2시에 당산역 12번 출구 스타벅스에서 뵐게요'라는 자기 주도적인 문장을 끝으로 통화는 종료되었다.


'쓰읍님, 혹시 클라이언트가 그 시간밖에 안 된다고 하던가요? 내일은 다들 일정이 있어 동행 가능한 선배가 없을 거예요'라는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내가 가지 뭐'라고 (대수롭지 않은 척)하는, 낮은 톤이지만 날카로운 목소리가 또 한 번 들려왔다. 뒷자리에 앉아있던 근성맨('요즘 친구들은 근성이 부족해'로 나와 첫 대화를 시도했던 주인공)이었다. 그날 행운의 여신님이 너무도 미웠다(왜 하필 오늘인가요, 차주에 재방문 가능하실까요?). 초심자의 행운이 왜 여기서 나와..? 근성맨은 흐르던 정적을 깨며 덧붙였다. '나 밖에 없는 데 내가 가야지 뭐'


미팅 이후 결과는 놀랍게도 긍정적이다 못해 성공적이었다. 소진해야 하는 마케팅 예산이 있던 곳이었기에 바로 계약을 진행하기로 했다. 초심자의 행운이 이런 건가 얼떨떨해하며, 사무실로 복귀했다. '운이 억세게 좋은 녀석'이라는 질투 섞인 칭찬이 퇴근 이후 술자리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근성맨은 나를 회의실로 불러들였다.


혹시, 어제 선배들이랑 술 마셨어?


옷이 똑같은데 아니라고? 여직원들도 옷이 똑같던데? 왜 마셨으면서 안 마셨다고 거짓말을 하지? 이거 큰 문제야. 지금 거짓말하면 안 돼. 이유는 이랬다. 같이 술 마시던 선배 중 한 명이 오전에 급작스레 월차를 사용했고, 그 소식을 전해 들은 근성맨은 출근한 사람들의 옷과 컨디션을 동시에 살펴보며, 한 명씩 취조실(회의실)로 불러들인 것이었다. 전일 카스처럼(카스 + 처음처럼)으로 혈맹을 맺은 우리를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순 없었다.


점심시간에 전해 들은 내용은 신선하다면 신선했고, 예상 가능하다면 예상 가능했다. 근성맨이 1년 동안 실적이 하나도 없었는데, 전일 미팅 실적을 독식하려고 한다는 내용을 전해 들었다며, 카스처럼 선배들은 해장과 분노를 동시에 하기 시작했다. 정작 당사자인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나 혼자 미팅 갔던 것도 아니고, 내가 1차로 설명한 이후에 근성맨이 2차로 추가 설명을 했던 것은 사실이기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또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가 더 중요했기 때문에(어쩌면 그날 오후 근무를 버텨내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무실로 복귀하는 길에, 카스처럼 선배들은 샷을 추가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얼음채로 씹어 삼키며, 나에게 걱정 말라고 했다.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우걱우걱 씹어 삼키던 얼음을 조용히 녹여먹는 선배의 처세술을 보며 직감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가 보다'라고. 나를 포함한 카스처럼 선배들을 모두 근성맨의 뒤를 따라 회의실로 향했다. 단체로 술을 마시고 지각(2명이 10분 정도 늦었다)하는 행동이나, 전일 음주 때문에 월차를 쓰는 것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며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뒤이어 실장이 들어왔고, 실적(이후 인센티브)에 대해선 고민 중이다 정도의 내용을 전달하며, 나머지 인원들에 대해선 감봉을 고려 중이다 하는 식의 공포를 심기 시작했다. 이게 이럴 정도의 문제인가 하는 생각을 하다 선배들을 봤는데 이미 반성 모드를 켜고, 뉘우치고 있으니 선처해주시기 바랍니다 모드까지 동시에 켜지는 걸 보며 이게 처세술이구나를 또 한 번 배우게 됐다. '앞으로는 주의해라' 정도의 결론이 나자, 근성맨은 또 한 번 길길이 날뛰었지만 실장이 쓰읍! 하는 소리를 내자 크게 한 숨을 내쉬고는 회의실을 먼저 나섰다. 사건은 종결됐고, 그날 저녁 카스처럼은 또 한 번 축하를 위한 혈맹을 맺었다.



이 회사 말고 더 비전이 있는 곳으로 가



카스처럼 선배들은 얘기했다. 더 다양한 회사를 경험해보고나서 회사를 결정해도 괜찮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규직 전환을 망설인 건 그들의 조언이 아니라 근성맨이었다. 특정 사이트(커뮤니티라고 부르기도 아까운 여성 혐오 집단)를 오랫동안 해왔는데 나도 같이 했으면 좋겠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이랑 클럽에 가기로 했는데 같이 가자(나보다 15살 정도가 많은 사람이었지만, 문제는 나이나 외모가 아니었다) 등 업무 외 시간들을 자신과 보내자고 쉴 새 없이 제안해왔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그 사람 자체를 지워버리고 싶게 만든 상황은, 퇴사 전 마지막 식사를 같이 하자며 나와 오른쪽 옆자리 선배를 식당으로 불러냈을 때였다.


(반려동물과 함께 하시는 분들은, 다소 불쾌할 수 있으니 양해 부탁드리며 스킵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선배는, '쓰읍님 그냥 눈 딱 감고 식사 빨리 끝내고 감사했습니다 하고 나와서 둘이 맥주 한 잔 마셔요. 제가 한 잔 살게요' 라며 나를 끝까지 챙겨주려고 했었다. 그런데, 식당으로 도착하자마자 불쾌함이 불기둥처럼 치솟았다. 근성맨이 예약한 식당은 사철탕(개고기를 끓이는 탕) 집이었기 때문이다.



남자가 이런 것도 못 먹는 건 아니지?



너스레를 떨며 나와 오른쪽 옆자리 선배를 맞이하는 그의 씰룩거리는 입에 주먹을 꽂아 넣고 싶었지만, 상종하지 말아야 할 부류라는 판단이 나왔기에(정상 궤도를 한참이나 벗어난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해 걱정이 앞섰지만, 다행스럽게도 머리가 이미 차가워져 있었다) 다른 메뉴를 주문하고 식사를 마쳤다. 호불호의 영역을 넘어, 사전에 동의를 구하고 결정해야 하는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기로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부류와 조금이라도 더 함께하기 싫었다. 숨을 나눠 쉬는 게 아까울 지경이었으니.


그렇게, 불쾌하고 소름 끼치는 마지막 식사를 끝으로 인턴생활은 마무리됐다. 그동안의 인턴 기간을 곱씹어보던 중 최초 컨택(콜드 메일 또는 콜드 콜)에 대한 나만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선명해졌다. 동시에, 나와 연결된 모든 사람들(공과 사 모두)에게 유쾌한 끝인상을 선물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콜드 메일 관련>
총 100개 업체를 컨택해서 10개 업체와 미팅을 진행하고, 1건의 계약을 완료했다면, 계약률은 1%이다. 그러나, 콜드 메일 방식의 계약률은 늘 1%이다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개인의 방법(이라고 표현했지만 역량)에 따라, 계약률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선 <콜드 메일 작성 방법>이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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