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오묘한 미소, 눈썹이 없지만 아무도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모나리자 초상화를 보기 위해 루브르 박물관(Louvre Museum)을 가는 하루이다.
한국에서부터 악명이 자자한 루브르 박물관 대기줄 때문에 우리는 전날부터 분주히 작전을 짰다. 대략 아침 8시에 출발해서 9시부터 줄을 서는 작전이었을 것이다. 그럼 2시간 이내로 입장할 수 있다나.. 이 작전의 가장 핵심 요소는 일찍 일어나는 것이다.
루브르 박물관은 그 크기와 내용이 너무 방대하기 제대로 보려면 1주일이 넘게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관광객 코스가 있다. 승리의 여신 니케, 스핑크스, 모나리자, 미라 등과 같은 루트. 정말 유명한 것들만 보고 나와도 반나절이 지나가는 투어이다. 미리 말하자면, 박물관 내부에 이와 같은 유명한 작품들을 쉽게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이정표가 곳곳에 있다.
루브르를 가는 당일 오전 10시쯤, 코리안 타임에 맞춰 박물관에 도착했다. 응? 왜 9시가 아니지? 우리도 잘 모른다. 여행 중에도 국룰은 변하지 않는다. 한 시간이나 늦은 만큼 정말 어마어마한 인파가 루브르 박물관을 에워싸고 있었다. 온갖 곳에서 인증샷을 남기는 사람들과 줄을 서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인파를 보고 되돌아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스케일. 인증샷은 다른 날에 이미 찍었기 때문에 간단한 사진을 남기고 들어가기 위해 안내원을 찾았다.
우리는 뮤지엄패스를 끊어서 파리의 박물관을 돌아다녔는데, 이 패스가 있으면 파리 소재 꽤나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들을 1회 입장할 수 있었으며, 몇몇 곳은 패스트 트랙도 이용할 수 있었다. 안내원에게 우리가 가진 표를 당당히 보여주며 어디에 서야 하냐고 물었다. 엄청나게 친절한 무장경찰들과 안내원들이 하나같이 말했다. 줄을 서야 한다고. 몇 번의 질문 끝에 깨달았다. 이 4시간을 기다리는 줄은 박물관을 입장하는 줄이 아니라 박물관 입장을 입장하는(?) 줄이라는 것을.
즉, 내 기억상 내부에 들어가면 뮤지엄 패스를 이용할 수 있는데, 일단 4시간을 기다려 내부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 패스트 트랙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고, 오늘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을 모두 방문해야 했기 때문이다. -MBTI 상 T들이 보면 숨 막힐 일정이랄까-
나는 파리까지 날아와서 모나리자와 눈싸움을 하지 않고는 귀국할 수 없었다. 러시아워에는 돌아가는 길이 더 빠를 수도 있는 법.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입출구를 찾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검색했다. 왜 한국인들이 이런 거 하나는 기가 막히게 알아내지 않는가.
찾았다. 한 블로그에서 박물관 전경 사진에 표시까지 해주며 친절하게 지름길을 안내해 줬다. 정면에 보이는 4시간 대기줄을 기준으로 좌측 바깥쪽 기둥 사이로 들어가면 되었다. 근데 문제는 글이 그 당시 기준 5년 전에 작성되었다는 것. 업데이트는 없었다. 밑져야 본전이기에 사진에 나온 곳을 여러 번 갔다. 없었다는 말이다. 하나 있는 방법이 안된다는 걸 믿을 수 없어서 반대편 비슷한 곳도 가봤다. 직원한테도 물어봤다.
"이 입출구는 있었는데 5년 전에 없어졌습니다. 지금은 이용할 수 없어요."
확실한 답변을 듣고 나니 포기가 턱 밑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나는 ㄷ자로 뻗어있는 드넓은 루브르를 샅샅이 뒤졌다. 비슷한 입구가 있을 거라고. 그렇게 걸어 다니기를 30분. 이게 웬걸? 좌측 안쪽 기둥 사이에 닫혀있던 입구가 그곳을 세 번째 지나갈 때 열렸다. 나는 여기도 줄이 길어질까 헐레벌떡 일행들에게 달려가 내가 발견한 입구로 끌고 왔다.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그 찰나의 순간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줄을 섰다. 하지만 눈대중으로 봐도 100명 안쪽의 사람들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 우리는 속으로 환호를 질렀다.
그런데 나쁘진 않았는데, 이상했다. 왜냐하면 단체 관광객들이 서 있는 줄 같았기 때문이다. 비슷한 단체마다 각자의 국기가 그려져 있는 깃발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누가 봐도 우리 같은 개인이 서있으면 이상한 줄이랄까. 직원들도 없었기에 앞 뒤에 서있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물었다. 영어가 통하지 않기에 이도 저도 아닌 소통을 수차례 했을까, 우리는 여기가 단체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혹시 모르지 않을까 해서. 별안간 누군가 말을 걸었다.
"개인 입출구는 이쪽입니다"
지금은 기억 안나는 누군가가 바로 옆에 있는 닫혀있는 출구를 가리켰다. 우리가 서있는 줄은 예약된 단체 관광객들을 위한 줄이기 때문에 우리는 입장할 수 없었다. 뭐, 줄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언제 열릴지 모르는 작은 입구 옆에서 길을 잃고 서성이다 그곳을 빠져나왔다.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나는 나가던 도중에 돌아서 다시 한번 그 입구로 가봤다. 다시 가는 건 돈 안 드니까. 근데 검은 양복을 입은 직원이 닫혀있던 입구 앞의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두 번째 헐레벌떡을 하고는 일행들을 이끌고 아까 그곳으로 달려갔다. 들어갈 수 있었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흰색 계단을 통해서 지하로 내려가니 또 긴 대기 라인이 있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도 없는.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매표 기계처럼 생긴 곳 앞에 모였다. 매표를 하더라도 진짜 실제로 루브르 박물관에 들어가는 줄이 또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관 매표소에서 기다려 표를 끊고 10000명을 수용하는 상영관에 들어가려면 또 줄을 서고, H열에 들어가려면 또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뮤지엄 패스를 끊어서 추가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쓸모도 없는 뮤지엄 패스를 가방에 다시 집어넣고 티켓을 결제했다. 기억은 안 나지만 체감상 만원 정도 했던 것 같다. 매우 저렴.
표를 들고 신나게 걸어서 루브르 입구에 도착하니, 이게 웬걸 줄이 하나도 없다. 순식간에 지하철 개찰구 처럼 되어있는 입구를 통과. -나중에 나갈 때 보니 이곳에도 대기줄이 있었다는..- 드디어 루브르 박물관에 왔구나!!
우리는 계획했던 것처럼 승리의 여신상도 보고 스핑크스도 구경했다. 그리고 대망의 모나리자.. 를 보기 위한 대기줄 앞. 우리가 루브르 박물관을 입장하기 위해 대기했던 줄 하고 비교도 안되게 긴 줄이 있었다. 대기 시간은 30분 정도. 어이가 없었지만 기쁜 마음으로 기다렸다. 우리는 안 기다리고 들어왔으니까!
모나리자를 보는 것은 인증샷 타임에 가까웠다. 사실 사진 한 장 찍으면 모나리자를 구경할 시간은 없었다. 가드들이 1분 간격으로 7명 정도를 모나리자 2m쯤 되는 거리에 세우고, 시간이 지나면 칼 같이 그 장소에서 내보냈다. 우리 차례에 서둘러 서로를 찍어주고 임무를 완수했다고 생각하며 자리를 뜨려다가, 그림을 좋아하는 나는 모나리자를 두 눈으로 못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를 통해서만 본 것이다. 퇴장하는 길에 5초 간 서서 생각보다 코딱지 만했던 모나리자를 바라보고 있었을까, 우리를 밀어 넣고 내보내던 남자가 나에게 빨리 나가야 한다며 길을 안내했다. 길 몰라서 서있는 거 아닌데.. 그래도 그때 5초 동안 바라보지 않았다면 나는 모나리자를 안 봤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큰 임무를 완수한 우리는 여유롭게 남은 루브르 유명 작품들을 구경하고, 기념품을 챙긴 뒤, 오르세 미술관으로 향했다. 개인적으로는 여행 중 가장 좋았던 장소 중 하나. 미술책에서만 보던 작품들이 원본으로 걸려있었으며, 유명 작가의 작품들이 즐비했다. 오귀스트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 조각이 있는 "지옥의 문 (Porte de I'Enfer)"부터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 클로드 모네 "수련 연못", "오귀스트 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등 셀 수 없이 많은 명작들이 두 눈을 즐겁게 했다. 우리는 오르세 시계탑에서의 인증샷을 마지막으로 그곳을 빠져나왔다. -이곳도 대기줄..-
오늘은 결과가 너무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못 볼 뻔했던 루브르 박물관을 볼 수 있었고, 오르세 미술관에서의 관람도 너무 좋았기 때문. '빨리빨리' 한국인이 이런 건 잘한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모든 사람이 나 같은 건 아니고, 아마도 너무나 부지런한 어머니의 영향이겠지.
살면서 후회 없이 만족으로 지나갈 수 있는 날은 많지 않다. 아무리 열심히 노동해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아무리 열심히 놀아도 무언가로 후회했었기 마련. 깊게 생각했던 날이면, 한 가지씩 보완할 점이 떠오르 곤 했다. 근데 이 날은 이러나 저러나 지금 생각해도 후회 없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