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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인 Jan 14. 2023

비틀즈를 맛보려다 마약을 마주할 뻔했다.

그 유명한 비틀즈 횡단보도, 애비로드



머물던 내내 비가 오던 영국에서 단 하루 맑은 날이 있었다.


숙소에서 바라본 런던 주거지의 모습


 우리는 이 날 비틀즈 <Abbey Road, 1969> 앨범 재킷을 흉내내기 위해 런던의 애비로드로 향하고 있었다. 구글 맵에 해당 횡단보도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인이 올린 후기글을 보며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날씨는 믿을 수 없이 좋았고 따사로운 햇볕을 느끼며 여유롭게 목적지로 향했다.


 시티 오브 웨스트민스터(city of Westminster) 지역에 위치한 애비로드 근처는 음악인들의 성지라고 어디선가 읽었다. 한적하고 조용한 대낮의 거리와 건물 안에서 열심히 음악 작업을 할 사람들을 생각하니 동네에서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우리는 서울에 있는 친구들과 영상통화를 하며 길을 걸었다.


 "우리 지금 비틀즈 횡단보도 가는 길이야."


 주변의 풍경을 보여주며 1년 중 많지 않다는 영국의 맑은 날씨를 자랑하기 바빴다.


 얼마나 걸었을까, 워낙 유명한 곳이다 보니 걷다 보면 나올 거라는 안일한 생각에 전화에만 집중하며 걷다 보니 동네 깊숙한 곳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아무리 길을 걸어도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나오지 않자 되돌아가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


 "Hey! Heeeeyyy~!!"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굴리던 건장한 백인 남성이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 나가며 우리를 불렀다. 우리는 그쪽을 쳐다보며 손을 흔드는데.. 남자가 다시 소리치며 반대편을 손가락으로 열심히 가리켰다.


 "Not that way!!"


 아마도 우리가 애비로드를 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을 터, 우리가 가는 반대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너무 감사한 친절함에 땡큐라고 소리치고 남자는 그 짧은 시간에 따봉까지 날려주며 자기가 왔던 속력 그대로 계속 나아갔다.


 "어쩐지 아무리 가도 안 나오더라"


 "반대로 한번 가보자"


동네의 길 풍경, 양방향 2차선 도로가 이어져있다.


길을 잘못 들었던 우리는 다시 한번 지도를 확인했고, '애비로드 스튜디오'라는 건물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비틀즈의 <Abbey Road>를 녹음했던 이 스튜디오는 횡단보도와 함께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곳도 모르고 무작정 직진만 했다니.!! 이후에 알게 되어 방문하지 못했지만 바로 근처에는 기념품 점도 있는 것 같았다. 이미 벌어진 일을 수습하기 위해 발걸음을 서두르는 중에,


 반대편에서 중절모를 쓰고 짙은 갈색 코트를 입은 배 나온 아저씨가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유럽 여행 중에 아무 연고도 없는 외국인들이 말을 거는 것은 흔한 일이었고, 우리는 이 같은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영국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어디를 갈 거냐고 물어본다.


 "We are going to Abbey Road now."


 애비로드에 가고 있다고 하니 본인이 아주 잘 안다며 길을 안내해 주겠다고 했다. 심지어 우리가 가려던 방향이 아니라 중간에 좌측으로 꺾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길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동네 주민처럼 보이는 가이드가 생겼으니, 참으로 든든했다.


 아저씨는 이어서 어디서 왔는지를 물어보더니 대답을 듣고선, -편의상 한국어로-


 "내가 한국 역사에 대해서 공부했는데 궁금한 게 있어. 남한과 북한은 왜 싸우는 거야?"


 우리는 우리도 전쟁이 나는 것은 원치 않는다며 우리가 아는 선에서 열심히 대답해 드렸다.


 "난 김정은을 알아. 북한 대통령은 Bad guy이고, 남한 대통령은 Good guy!"


 지구 반대편에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어렴풋이 알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내적 친밀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어떻게 알았냐며 신기함을 표했고, 아저씨가 말했던 구간에서 우리는 좌측으로 꺾어서 이동했다. 몇 발자국 걸었을까 반대편에서는 남자 두 명이 걸어오고 있었다.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던 두 남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우리에게 다가왔다. 한 명은 영화에서 본 것 같은 트렌치코트를 입은 키가 크지만 다소 마른 남성이었고, 한 명은 검은색 외투를 입은 몸집이 큰 남성이었다. 그중 한 명이 모자를 벗으며 우리에게 지갑을 내밀었다.


 "We are police. Let me check your passport."


 아저씨는 우리가 그저 놀러 가고 있을 뿐이라고 했지만 아무 의미가 없었다. 지갑은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그가 경찰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나는 유럽에는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경찰을 사칭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기 때문에 여권을 함부로 꺼내지 말고 시간을 끌다가 경찰서에 끌려가는 한이 있더라도 확실한 곳에 가서 보여주는 게 안전하다는 수칙을 떠올렸고, 머리를 굴렸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성인 남성 4명이 맑은 대낮에 유명한 관광지 근처의 대로를 걷고 있는데 발생한 일이다. 아저씨와 우리 모두에게 움직이지 말라며 신분 확인을 요청한 그들은 우리가 중국인이 아닌 남한 사람이라는 것을 듣고는 말투를 살짝 누그러뜨렸다.


 좋은 분위기를 틈 타, 나는 잠시간의 정적을 깨고 용기 내 고개를 뒤로 돌려 "이거 그 상황 아니야?"라고 일행에게 말했다. 두 마디 정도 빠르게 오고 갔을까, 그들은 단호하게 소리치며 영어만 쓰라고 명령했다.


 별 수 없이 한 명의 여권만 꺼내 보여주기 위해 꼼수를 부렸으나 그들은 모두의 신분을 확인하고자 했다. 하지만 우리의 한국스러운 힙색에는 기껏해야 생수와 보조배터리, 유로 몇 장이 있었을 뿐이고, 그들은 너무나도 안전해 보였던 우리 중 두 명의 여권만을 확인하기에 그쳤다. 그리고는 옆에 잡아뒀던 우리의 가이드 아저씨의 몸수색을 시작했다.


 아저씨의 주머니에선 고무줄로 묶여있는 지폐 다발과 담배 한 갑이 나왔는데, 그들은 담뱃갑을 열어 냄새를 맡고 다른 소지품이 있는지 검사를 이어나갔다. 우리는 사고를 멈추고 그들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기만 했으며 척 보기에도 많아 보이는 지폐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들 중 한 명이 아저씨를 우리가 가던 방향으로 그대로 끌고 가서 가라고 소리치며 보냈고, 다른 한 명은 나에게 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합니다. 이곳은 마약을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고, 가끔 중국인들이 마약을 하기 위해 방문하는 곳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태를 대비해 위장 순찰을 돌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어디를 가는 중이었습니까? 길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때서야 이들이 경찰이라는 것을 확신한 우리는 안도의 "오우"를 외치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하마터면 아저씨를 따라서 마약 소굴로 들어갔을지도 몰랐던 것이다. 우리는 경찰에게 애비로드의 위치를 물었다. 경찰은 우리가 원래 가려 했던 방향을 가리키며 조금만 가면 된다고 말했고, 우리의 감사인사를 뒤로하고 아까 그 아저씨를 보내던 경찰을 따라서 이동했다.


 일이 벌어지고 나니 그들이 정말로 경찰이었고, 어떻게 보면 우리의 목숨을 구해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무나도 다행이었고, 소란과 침묵을 반복하다 마침내 애비로드에 도착했다.




모르고 보면 아무도 모르는 문화유산 2급, 비틀즈 횡단보도


어떻게 이곳을 그냥 지나쳐왔는지 이상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넓지 않은 2차선 도로에 통행량은 많았지만, 차들은 경적소리 한 번 없이 사진 찍는 사람들을 기다려주고 있었다. 마침 4명이었던 우리는 횡단보도에서 비틀즈를 흉내내기에 안성맞춤인 상황이었다. 단,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말이다.


 우리는 필사적으로 한국인을 찾았다. 화려한 스캔 끝에 발견한 사람은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 2명이었다. 같은 동양인을 찾은 것 만으로 얼마나 반가웠던지. 서로가 알고 있는 어떤 언어로도 소통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손짓으로 "저희가 찍어드릴 테니, 저희도 좀 부탁드려요~"라고 전했다. 사진 찍기를 기다리던 두 여성분들은 흔쾌히 수락하셨다.




찍고 나니 별거 없었던 애비로드 여행은 여기서 끝났다. 사실 우리는 비틀즈의 대단한 팬도 아니었고, 관광지의 하나로써 방문했던 것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여정 중에 있었던 사건은 이 기억을 잊지 못할 장면으로 만들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위장 순찰을 돌던 웨스트민스터의 경찰들 덕분에 우리의 신변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이 글을 통해 다시 한번 우리를 구해줬던 경찰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아직도 대낮인 런던을 돌아다니며 남은 일정들을 진행했고,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이제야 그날 있었던 사건이 얼마나 위험했던 순간이었는지 실감하기 시작했다. 우리 정말 큰 일 날 뻔했다며, 담배냄새 맡는 거 마약인지 확인하는 거 아니냐며, 상황을 회상했다.


 다음날에는 다시 거센 비가 내렸다. 온몸을 적시며 잘 보이지도 않는 영국을 여행했고, 그렇게 깊은 이야기 하나를 품은 채 영국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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