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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라 Mar 06. 2023

계란

오픈기념으로 4900원에 산 계란 한 판

집 근처 상가에 규모가 큰 이마트 에브리데이가 생겼다.

오픈기념 행사를 크게 열었는지 사은품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구경만 해야겠다고 들어간 마트에서는 할인하는 상품이 생각보다 많아서 생각보다 구경을 오래 했다.

살까 말까 고민한 물건들은 하나도 사지 않았다. 내심 뿌듯했다.

그러다 내 시선을 끈 건 계란 한 판.

동물복지에 대란인 그 계란은 심지어 사천 구백 원 밖에 하지 않았다.

‘사천 구백 원이면 요즈음 물가에는 거의 거저 주는 거다.’

라는 생각으로 계란 한 판을 소중하게 들고 계산대로 갔다.


계란을 품에 안고 집에 돌아와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에는 계란 10개를 담을 수 있는 통 1개, 계란 20개를 담을 수 있는 통 1개, 그리고 마지막 1개가 남은 오래된 계란이 있었다.

오늘 내가 산 계란은 30개 + 오래된 계란 1개 = 31개.

계란통 2개를 모두 꺼내서 새로 산 계란 한 판을 담았다. 아쉽게도 계란 1개가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아쉽다고? 냉장고에 계란이 가득 찼다는 말이잖아. 자취생에게 냉장고가 꽉 찬다는 건 부자가 된 느낌을 선사한다.

월급을 아끼고 또 할인행사로 좋은 계란을 싸게 잘 산 내가 너무 기특하다.

냉장고문을 다시 열고 계란통 2개를 조심히 넣었다. 통에 못 들어간 계란 1개는 그냥 아무 데나 넣었다.


찬장에서 계란죽 봉지를 꺼냈다. 전자레인지에 2분만 돌리면 완성되는 인스턴트죽이 오늘의 저녁메뉴이다.

계란죽 봉지를 가위로 자르고, 전자레인지에 잘 세워 놓고, 2분으로 시간을 맞춰 놓고 ’조리시작‘버튼을 눌렀다. 위잉 위잉. 툭.

툭?


‘취소’ 버튼을 누르고 전자레인지 문을 열었다. 죽이 안에서 쏟아져 있었다. 다행히 많이 쏟지 않았다.

휴지와 물티슈로 쏟은 죽을 수습 했다. 정말 귀찮기 짝이 없어.

계란죽을 마저 데우고 그릇에 옮겨 담았다.

김치랑 같이 먹어야겠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퍽.

퍽?


‘아…’


아무 데나 넣어놨던 그 계란 1개가 낙하했다. 노란 노른자가 터져 나왔다.

꼭 계란의 운명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았다.

경건한 의식이라도 치르듯 두 손으로 계란을 주워서 싱크대에 떨어뜨렸다.


‘죽도 쏟고 계란도 터지고…아, 불길하네.’

‘아니? 불길하다고 생각하지 마. 애초에 계란을 제대로 안 넣어서 그래.’


합리적 소비로 뿌듯했던 마음은 어느새 스스로 반성하는 마음으로 바뀐다.

아무리 사소한 사건이라도 사람의 마음은 손바닥 뒤집듯 시시각각 바뀐다.


그러니 지금 기쁘더라도 혹은 엿같더라도 너무 치중하지 말 것.

그 감정에 경직되지 말 것.


마음은 금세 바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기반성을 오지게 하다가

계란 하나 터진 걸로 글 하나 써봐야겠다. 오히려 좋아.라고 사고의 급회전을 타버리는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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