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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라 Mar 07. 2023

모르는 척

엄마가 자꾸 모르는 척을 한다면

요즈음 가장 나를 신경 쓰이게 하는 것이 하나 있다. 내 오른쪽 얼굴이다.

왼쪽 얼굴은 익숙해져서 마음에 드는데 (그렇다고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오른쪽 얼굴은 밉다.

왼쪽보다 얼굴이 쳐졌다고 해야 하나? 얼굴이 내려가 있으니 면적도 넓어 보인다.

왼쪽을 손으로 가리면 오른쪽 얼굴이 유독 낯설게 느껴진다.


유튜브에 ‘비대칭 얼굴‘을 검색했다. 수십 개의 영상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 가장 맨 위에 있는 영상을 눌러보았다.

’비대칭 얼굴 교정하는 운동‘이라는 영상의 조회수는 무려 200만 회가 넘는다.

200만 명이 본 영상이라기보다는 비대칭 얼굴이 고민인 사람이 여러 번 보면서 따라 했기 때문에 가능한 숫자일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자 신뢰감이 확 생겼다.

핸드폰으로 영상을 틀어 놓고 거울 앞에 섰다.

눈썹을 올렸다가 내렸다가

볼에 바람을 넣었다가 뺐다가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가


갑자기 현타가 왔다. 이게 뭐야.

운동을 집어치우고 허기를 채울 만한 음식이 있나 보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 문에 빼곡하게 붙어있는 인생 네컷 사진들 중에서 엄마와 찍은 사진을 몇 초간 바라봤다.


‘나 엄마랑 얼굴형 똑같네.’

그러고 보니 엄마도 얼굴이 작아지고 싶다면서 롤러 마사지기를 사서 한동안 열심히 볼에 대고 문질렀다.

그 모습이 떠오르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엄마가 열심히 얼굴을 문대고 있을 때 나는 얼굴형에 대한 고민 같은 건 없었는데…

28살에 엄마의 고민이 전이되었는지 괄사기의 가격을 검색해 보는 내 자신이 웃겼다.


한 번 꽂히면 끝까지 찾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에

인터넷에 ‘비대칭 얼굴‘, ’괄사 마사지 효과‘, ‘경락 마사지 가격’ … 등을 검색했다.

역시 미용강국 대한민국답게 엄청난 정보가 가득하다. 그중에서 내게 꼭 맞는 정보를 고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별 작업을 거쳐야 한다.

1) 가격이 저렴할 것

2) 효과가 무조건 있어야 할 것

3) 과학적으로 신빙성이 있어야 할 것

4) 이미 해 본 사람이 많을 것

5) 성형수술 광고는 거를 것


이 선별작업을 통과한 최종 후보는 ‘괄사 마사지’와 ‘보톡스‘ 였다.

괄사기 2개의 가격과 보톡스 1회의 가격 차이가 얼마나 날 것 같은가?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다. 오히려 보톡스가 더 쌀 수 있다. (1차 충격)

보톡스는 얼굴 근육에 놓는 것인데 2~3주 뒤에는 효과가 나타난다고 한다. 다이어트를 하면 효과가 더 극대화된다고 한다.

집 근처 병원을 알아보았다. 이게 웬걸. 3월 이벤트로 굉장히 저렴하게 보톡스를 놔주고 있었다. (2차 충격)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엄마 턱 때문에 고민이었지? 보톡스 3,5000원이라는데 같이 갈래?”

“좋다. 좋다.”

“화요일 오후 8시에 역 앞에서 만나.”

“알겠어!”


엄마의 목소리가 들떴다. 내 얼굴에 주사 바늘이 들어간 적이 없어서 조금 두려웠지만

2~3주 뒤에 바뀔 내 얼굴을 상상하니 두려움은 허공에 흩어졌다.

[화요일, 오후 8시, 2명 보톡스 상담 원합니다.] 병원에 예약 문의를 넣었다. 내 달력에도 ’8시 피부과‘라는 일정이 추가 됐다.


그리고 그다음 날, 회사에서 한창 일하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화요일 보톡스 예약은 다 찼기 때문에, 금요일 오후 8시는 어떠냐는 병원의 전화였다.

금요일도 괜찮으니 이벤트 가격이 맞는지, 어머니와 함께 방문해서 당일 시술이 가능하냐고 되물어 보았다.

흔쾌히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병원의 전화를 끊고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안 가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이 시간에 전화를 다하네”

“엄마, 우리 보톡스 맞으러 가는 거 있잖아. 그거 금요일도 괜찮아?”

“보톡스가 뭔데?”

“…? 무슨 소리야? 우리 어제 얘기했잖아.”

“그거 턱에 맞는 거? 그거 안전하대?”

“응. 그거 얼굴 근육에 놓는 건데 금방 끝난대. 후기 열심히 찾아봤어. 그리고 바로 맞는 거 아니고 상담하고 맞는 거라 무서우면 안 해도 됨.”

”그거 얼만데?“

”… 무섭게 왜 그래? 어제 싸다면서 같이 얘기했잖아. 혹시 어제 약주했어?“

”아니. 3,5000원이랬나?“

”응. 뭐야. 다 기억하네. 금요일 괜춘?“

”응. 00역이랬지?“

”다 기억하는구먼. 끊을게.“

”응. 파이팅 해.”


왜 다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이야? 의아했다.

의아함은 3초를 넘기지 못하고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 멈췄던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3시간, 4시간, 5시간이 흘러 퇴근을 했다.

지하철을 타고 양 옆에 서 있는 사람들과 어깨를 맞댄 채 가만히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눈을 쳐다봤다.

문득 엄마와의 통화가 떠오른다.


‘다 알면서 모르는 척이야. 진짜 특이해.’

‘근데 왜 그랬을까? 일부러 시간 끄는 사람처럼.‘


아. 그거 구나.

이른 오후, 생각지도 못했던 딸에게 걸려 온 전화가 반가웠던 것이다.

가장 지루한 그 시간에 이야기 상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눈치 빠른 딸이 당신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랬던 것이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안 가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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