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외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현관비번이 생각나지 않았다. 보안을 위해 4자리에서 8자리로 바꿔두었던 비밀 번호. 앞 4자리는 알겠는데 뒷자리가 문제였다. 뭐였지. oooo이었을까. xxxo이었던가. 찰기가 없는 밥알처럼 서로 붙지 않고 흩어져버리는 숫자들의 조합에 정답이 아니란 것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낭패감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인상을 쓴 것이 도움이 되었던지 블랙아웃된 기억이 찌푸린 눈 사이로 스며들었다. 맞아. ooxx이었지. 검지손가락으로 숫자 4개를 불러낸 후에야 현관문이 열리며 익숙한 멜로디로 반겼다. 휴우. 집안으로 들어선 후에야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기억을 붙들기 위한 메모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따라붙었다.
신경 쓸 일들이 짧은 시간에 몰려든 탓도 있었지만 기억력에도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걸 어쩔 수는 없다. 그 단어가 뭐였지, 하는 물음이 잦아지던 엄마처럼. 깜빡하는 일이 늘었다며 푸념하던 언니들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과의 사이는 더 멀어질 것이었다. 곰곰이 머릿속을 찬찬히 훑은 다음에야 딱 맞는 기억들을 찾아낼 수 있는 순간들이 늘어날 테지. 늦출 수는 있어도 피해 갈 수는 없는, 시간이 하는 일들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들이.
기억력이 좋다고 여겼던 적도 있었다.
어릴 때 친구들을 만나면 지나간 시간의 마디가 독립영화의 한 장면처럼 선명하게 그려지던 때가. 그때 A 네가 이런 말을 했었잖아. 그리고 우리 함께 어디 어디에 갔었던 거 생각 안 나? 그랬었나. 넌 어떻게 그걸 그렇게 자세하게 기억해? 그때 아마 나는 주름하나 없는 매끈한 얼굴로 뿌듯함을 감추지 못하고 자신만만하게 웃었을 것이다. 스무 살 남짓 혹은 이십 대의 한가운데쯤에서.
얼마 후 기억력을 과신하던 치기 어린 젊은이는 옛 동네에서 중학교 동창을 만난다. 같은 반이기는 했지만 몇 마디 말을 나눠본 것이 전부였던 그녀를 나는 한참을 쳐다본 후에야 기억해 냈다.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현하며 다가오던 그녀에게 바로 호응하지 못했던 것은 그 탓이었다. 누군가 나를 좋게 기억해 주고 반가워해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었지만 서글프게도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기억은 그 기억을 함께한 사람에 따라 다른 질감과 무게로 다가왔던 것이다. 사소한 말투와 행동까지 세세하게 기억나는 사람도 있고 오래도록 바라본 후에야 그 실루엣이 겨우 기억나는 이도 있는 것처럼.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고작 실루엣에 불과한 것처럼.
누군가의 말이나 글도 그랬다. 맥없이 흘러가버리는 말들도 있었고 어떤 이의 말은 오래 남아 귓가를 맴돌았다. 혹은 아물지 않는 흉터처럼 가슴에 남기도 했다.
며칠 전 밤산책을 하다가 수로의 검은 표면 위로 반짝거리는 가로등 불빛을 봤다. 수로에 설치된 다리 아래로는 길게 늘어선 가로등 따라 어둠에 잠긴 물결 속으로 기다란 빛의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두워서 품을 수 있는 물빛의 자국들이 몽롱한 기분을 자아냈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그때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전철을 타고 한강을 지날 때마다 강물이 햇볕에 반짝거리는 모습을 보고 ‘저 강물도 저렇게 열심히 반짝거리는데,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다짐하곤 했다던 그녀의 말이. 윤슬을 의인화한 것도 귀여웠지만 그것을 삶의 의지로 연결시키는 그녀의 순수함이 나도 모르게 깊은 울림이 되어 가슴 한편에 남은 모양이었다.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그녀는 부전공으로 산업디자인을 배우고 진로를 바꿨다. 갑자기 디자인을 가르치던 한 강사가 운영하던 에이전시로 취업한 것이었다. 실무경험도 전무한 데다 그래픽디자인 프로그램도 전혀 알지 못해 회사를 다니며 알음알음 배웠다던 그녀는 무용담처럼 그 시절의 이야기를 종종 해주곤 했다. 우리는 한 시인의 글쓰기 강좌에서 만났다. 당시 수강생 몇몇이 강좌가 끝난 후 뒤풀이 겸 카페에 가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취향이 비슷하고 대화가 잘 통해 정기적인 모임으로 이어졌고, 그녀와 나도 그 멤버들 중에 하나였다. 우리는 비전공 디자이너라는 공통점이 있어 친해졌다. 디자인에이전시의 과다한 업무량과 그에 비해 보잘것없는 대우는 나도 경험상 잘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밥 먹듯 야근을 해도 야근수당을 기대할 수 없고 작은 회사일수록 일의 체계도 없고 기댈만한 사수도 없이 오롯이 업무의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해내고 난 후에도 디자인의 저작권은 내 것이 아니라 회사에 귀속된다는 것.
정면으로 마주보기 버거운 시간들을 살아내는 동안에도 그녀는 강물이 반짝거리는 모습을 담아낼 줄 아는 사람이었고, 생의 의지를 잃지 않는 이었다. 그 이야기를 하는 내내 자신이 얼마나 반짝거렸는 줄 그녀는 알았을까. 회사를 그만두고 동화작가를 꿈꾸던 그녀는 결혼 후 동화처럼 귀여운 아이를 낳았다. 나는 안다. 그녀가 언젠가 끝내주는 동화를 쓰게 될 것이란 걸. 가슴 한 편에 남은 그녀의 말처럼. 꾸밈이나 기교가 아니라 진심이 담긴 말로 누군가의 가슴에 남는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으므로.
만났던 사람들의 수만큼 그것의 몇십 배가 되는 말들이 나를 스치고 관통해 지나갔다. 어떤 이의 말들은 화려한 폭죽처럼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했다. 술자리의 이야기들처럼 의아할 정도로 친근하게 다가와 다음날이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까맣게 잊어버리는 표정들처럼. 어떤 이는 누군가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가져다 쓰기도 했다. 나는 그이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으며 그이가 이야기의 출처를 모르는 것이 문제인지 아니면 출처를 알면서도 이야기를 가져다 쓰는 것의 문제를 모르는 것이 더 문제인지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말들은 의미를 잃고 돌고 돌았다. 홍수처럼 넘쳐나던 말들도 조갈난 속을 채우기엔 부족했지만 그 안에서 진심과 진심 아닌 것들이 선명히 보이던 순간들도 있었다.
물론 기억이란 건 늘 왜곡되기 마련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