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계단참에 앉아
어스름한 저녁하늘이 노을로
붉게 물드는 모습을 바라본다
한없이 느긋한 것 같다가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금세 놓쳐버리는 풍경들이
시간이란 마법사가 펼쳐놓은 스카프와도 같은
새의 너른 깃털 같은 구름 아래로
짠, 하고 하나 둘 나타나더니
어둠의 상자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간다
반짝, 가로등에 불이 들어온다
눈앞으로 도시를 가로지르는 개천이 흐르고
그 너머엔 수로를 향해 놓여있는 벤치
산책하던 노부부가 다가오더니 나란히 앉는다
인공의 조명들 아래로 존재를 흐린 배경은
초점이 빗나간 카메라 렌즈 속 풍광처럼 아련하고
물소리는 더 선명하게 귓가를 파고든다.
은발의 근사한 머리카락을 가진 아내가 기지개를 켠다
쭉 뻗은 팔의 직선이 어둠의 고단함을 밀어내듯
경쾌하다
그녀의 뻗은 손 따라 켜켜이 쌓아두었던 것
나 역시 밀어낸다. 멀리 머얼리 어둠 속으로
왜 조금 더 일찍
하나의 풍경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일
하지 못했을까
따라가지도 못할 만큼 조급하게 앞서가던 마음
붙들어 매지 못했던 걸까
목적지를 애써 지우고
달려 나가는 마음은 무거운 엉덩이로 지그시 누르며
삶의 한가운데
조금 더
조금만 더
나를 둘러싼 세계를
오감으로
아로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