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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이 Sep 04. 2023

끝나지 않은 춤


사람들로 가득 찬 출근길 지하철. K의 옆에 젊은 남자가 헤드폰을 끼고 서있다. 한 승객이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오다 남자를 밀쳐 헤드폰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블루투스 오작동인지 그의 스마트폰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둠칫두둠칫 발로 톡톡 리듬을 타게 만드는 댄스뮤직. 누군가 고개를 까딱까딱하기 시작하더니 음악에 맞춰 춤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를 따라 춤추는 승객들. 손발이 척척 맞아떨어지는 군무가 이어진다. 웃음기 가득한 얼굴들과 생기 넘치는 움직임들.


전철이 서서히 역 승강장으로 미끄러지듯 정차하고, 열린 문으로 한 무리의 승객들이 백조 떼처럼 우아하게 퇴장하며 손을 흔든다. 끼이익, 전철문이 다시 닫히고 남자가 바닥에 떨어진 헤드폰을 손으로 집어든다. 열차가 출발하며 K의 몸이 한쪽으로 쏠린다. 화들짝 놀라 잠에선 깬 K. 주위를 둘러보는 그녀의 시야에 무표정한 얼굴로 각자의 스마트폰을 향해 고개를 숙인 모습들이 들어온다. 휴우, 아직 내려야 할 역은 지나지 않았다. 그녀의 상상은 끝이 난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온 K. 바닥에 가방을 던져놓고 그대로 대자로 뻗는다. 온몸 구석구석 모래주머니가 달린 듯 무겁다. 몸도 마음도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는다. 아, 아무것도 하기 싫다. 아아. 그대로 눈을 감는다. 귓가에 맴도는 음악. 둠칫두둠칫. 옆집에서 팝송을 크게 틀어놓은 것 같다. AC, 자리에서 일어난다. 배가 고프다. 냉장고에 반쯤 먹다 남은 샌드위치를 꺼내 우걱우걱 집어넣는다. 입주위에 묻은 소스를 혀로 날름 핥는다. 좀 처량하네. K는 A를 떠올린다. 입은 작은데 식탐이 많아 입 주위에 종종 음식을 묻히는 K를 보면 A는 늘 자신의 손가락으로 스윽 닫아주곤 했다. 나중엔 그게 좋아서 일부러 음식을 더 묻히고 먹었었는데, 그도 그 사실을 알았을까.


스마트폰을 집어든다. ‘자니?’ X-girlfriend 흉내를 내기에는 이른 저녁이다. 그럼 다음 레퍼토리도 있지. ‘뭐 해?’ K는 메시지를 적었다가 지운다. 아니다. 너무 주책이다. 질척거리고 싶진 않다. 그 와중에도 옆집에서 들리는 음악소리는 줄어들지 않는다.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HYPSdancing with my phone. 헤어진 여자친구를 생각하며 핸드폰과 춤을 추고 있다는 노래 가사에 쓴웃음이 나온다. 거 타이밍 참 절묘하네.


출처: HYBS ‘Dancing with my phone’ 뮤직비디오


A는 막춤을 잘 췄다. 막춤을 잘 춘다는 게 말이 안 되지만. 정말 그랬다. 영화 아비정전에서 맘보댄스를 추던 장국영까지는 못 되었어도 영화 러브액추얼리에서 막춤을 추던 휴그랜트 정도는 되었다. 가사를 직관적으로 해석한 움직임과 댄스에 몰입할 때의 그 귀여운 표정이란. 너무 사랑스러워 꼬옥 안아주고 싶게 만들곤 했다.

    

K는 문자메시지 작성을 그만두고, 동영상사이트에서 HYBS의 뮤직비디오 영상을 찾아 틀었다. 둠칫 두둠칫 음악이 흘러나오자 주먹진 손을 앞뒤로 고개는 아래위로 둠칫 두둠칫 몸을 흔들기 시작한다. A가 봤더라면 적어도 일주일치 놀림감은 되었을 테지. K가 A에게 그랬듯이. 한자어 춤舞은 잘못이나 사악함을 털어낸다는 의미가 있다고 A는 말했었다. 그러니 춤을 춰야 한다고. 끝나지 않는 춤을 춰야 한다고 말이다.


 K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젖히고 흐르는 음악에 몰입했다.


모든 것은 흘러갈 것이다.

음악도, 춤도, 나도.

그러니 춤을 추자. 그의 말처럼

끝나지 않는 춤을 추자.

춤을 추는 인간은 무해할 테니.




- 대문사진 출처: 조던 매터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  DANCERS AMONG US> 사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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