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말리의 일곱 개의 달> 책 리뷰
한 남자가 살해당했다.
눈을 뜨니 뿌연 공기 속,
남자는 영혼들이 떼로 몰려와서
항의하고 질문하는
한 안내카운터를 향한 줄 속에 서 있다.
이곳은 죽음 뒤 빛을 향해 들어가기 전
거쳐야 하는 중간계
남자는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치를 넘어
모든 신학과 도덕규범을 관통하는
악의 문제까지 주제를 확장하는 소설.
신이 막을 수도, 멈출 수도 없는
잔인함 앞에 선 인간의 책임은 무엇인가.
작가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
이 소설을 이해하려면 우선 소설의 배경이 되는 스리랑카의 역사와 민족 갈등을 알아두어야 한다. 스리랑카의 국민은 불교신자이자 다수민족인 싱할라족과 힌두계인 소수민족 타밀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남아에 위치한 스리랑카는 제국주의와 식민지 전쟁에서 예외일 수 없었고, 포르투갈을 거쳐 네덜란드, 그 이후로는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된다. 그 과정에서 권력과 연계된 소수 타밀족이 지배계층이 되고 다수 민족인 싱할라족의 불만은 쌓여간다.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스리랑카의 권력은 타밀족에서 싱할라족에게 넘어가고 그들은 싱할라족의 언어만 인정하는 ‘싱할라 온리’ 법을 제정하는 등, 소수민족인 타밀족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지고 타밀족학살사건이 벌어지며 내전으로 이어진다. 싱할라족과 타밀라족은 서로 죽고 죽이기를 서슴지 않으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는다. 1983년부터 2009년까지 무려 25년 동안 내전은 계속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말리 알메이다는 사진작가다. 그는 사진을 통해 내전의 참상을 기록하고 진실을 외부에 알리려 하지만, 그 역시 불완전한 인간일 뿐이다. 그는 스스로를 사진작가, 도박가, 걸레로 규정한다. 그는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고 구미가 당기는 일이라면 정부의 특별수사부나 타밀반군 또는 해외언론이든 가리지 않고 함께 일한다.
피묻은 사진을 팔고 번 돈으로 그는 도박판으로 달려가 돈을 날린다. 사랑하는 연인이 있음에도 문란한 성관계에서 쾌락을 좇는다. ‘한 여자가 머리채를 잡히고, 끌려가서 석유를 뒤집어쓰는 동안에도' 그는 카메라 셔터만 누르고 있는 비인간적이고 불합리한 데다 탐욕스러운 모순덩어리 인간이다. 등장인물을 비롯하여 역설과 모순으로 가득한 세계를 작가는 한 편의 블랙코미디로 풀어낸다.
대립과 갈등 속 세계는 선과 악으로 명확하게 나뉘지 않는다. 서로의 잇속을 위해 싸우다 죽고 죽일 뿐이다. 타밀반군은 정부의 탄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고한 싱할라족을 학살하고 정부는 반군을 와해시키기 위해 학생들을 죽이고 암매장한다. 악은 악을 낳고, 분쟁은 더 큰 분쟁을 불러온다. 그 와중에도 무기밀매상은 돈을 벌고, 경제저격수들은 저개발국 지도자를 설득하여 개발자본을 빌려주고 약국의 경제를 미국에 종속시킨다. 언제나 가장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것은 약자(弱者)다. 임산부는 목숨을 잃고 어린아이들은 총대를 멘다. 반군에 점령당한 마을 주민은 어쩔 수 없이 군사훈련을 받는다.
부자들은 자식을 런던에 보내고,
가난한 사람들은 마누라를 사우디에 보내지.
캐나다 난민은 이 땅의 테러에 자금을 지원하고,
이스라엘 탱크가 우리의 젊은이들을 죽이고,
일본인은 우리의 음식에 독을 뿌리잖아.
게다가 퓰리처상은 미국인에게만 수여한다.
인도네시아 대학살을 후원한 CIA의 모국,
몰디브 남쪽에 해군기지를 가지고 있는 국가,
이 낙원이라는 땅의 소위 궁전이라는 곳에
심문관 훈련 조교를 보내주는 국가의 국민에게만.
풍자의 대상은 신에게로 번진다. 신이 악을 막을 의지가 있고 능력이 있다면 왜 막지 않냐고. 그리고 자답한다. 신은 능력이 부족한 것이라고. 악을 막을 의지도 능력도 있지만 방법이 체계적이지 못한 것이라고. 뒷맛이 씁쓸해지는 농담이다.
그에겐 신의 존재를 믿을 수 있는 현실적인 증거가 필요하다. 언제 타이어를 목에 걸고 화형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함을 떨칠 수 있는, 예상치 못한 테러상황에 대비해 고통 없이 즉사할 수 있는 독성의 알약을 목걸이에 매달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그런 현실이. 그렇지만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과연 멈추기는 할까, 절망하며 자조할 뿐이다.
말리는 생전에 전쟁의 진실이 담긴 사진을 추가로 찍은 후 필름의 일부를 잘라내 따로 보관했다. 그가 죽은 후 정부 특별수사부와 타밀반군은 그의 숨겨진 내거티브 필름을 찾기 위해 애쓴다. 타밀반군은 자신들의 희생을 밝히기 위해, 정부는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그 과정에서 말리의 주변인물들이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말리는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심령술사를 쫓아다니고 유령들의 조언을 구하며 고군분투한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일곱 개의 달이 뜨고 지기 전까지, 단 7일. 그는 그 기간 안에 자신의 사진을 지키고 살해당한 이유를 찾아낼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수 있을까.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 내면에 숨은 잔인한 본성을 고발하면서도 그의 소설은 아름다운 은유로 가득하다. 그의 문장 자체가 아이러니다. 모순과 역설을 통해 그가 그토록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언젠가,
내 조국의 전쟁과 분열을 다룬
이 소설을 서점의 판타지 코너에서나
보게 될 날을 소망한다.
-셰한 카루나틸라카
현실이 판타지 소설보다 비현실적이지 아닌 날, 언제쯤 기대해 볼 수 있을까.
어떤 시인은 ‘사람들은 그 누구나 죽은 이들을 닮았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자식이거나 부모이며 형제. 그들의 죽음은 결코 우리에게서 멀리 있지 않다.
+ 부커상 수상작품을 읽어보고 싶어서 도서를 제공받아 북리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작품이지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보니 폭력성, 선정성 수위가 좀 있는 편입니다.
+ 문인수 시인의 시를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