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책 리뷰
* 소설의 결말은 포함되지 않았으나, 자세한 줄거리 설명이 있음을 참고 바랍니다.
여기 죽고 싶어 안달이 난 남자가 있다.
첫 번째 시도, 거실 천장에 고리를 걸고 밧줄을 묶다가 이웃의 방문으로 실패
두 번째 시도, 밧줄에 목을 매는 데까지 성공하였으나 밧줄이 도중에 끊기는 바람에 실패
세 번째 시도, 차고 안에서 자동차 배기가스를 마시고 질식해 죽으려고 했으나 또다시 이웃의 방문으로 실패
네 번째 시도, 기차선로에 떨어져 죽으려고 했으나 그 순간 플랫폼에 서있던 승객 한 명이 발작을 일으키며 선로에 떨어짐 -> 그를 구하고 영웅이 됨(잉?)
다섯 번째 시도, 사격용 총으로 자살하려고 했으나 또다시… 그놈의 이웃의 방문으로 실패
바로 프레드릭 베크만의 장편소설 「오베라는 남자」의 이야기다. (다산책방, 2015)
이 남자는 왜 죽지 못해 안달일까?
이 소설의 첫 번째 챕터는 오베가 애플 매장에 컴퓨터를 사러 가면서 시작된다. 이 하나의 사건을 통해 오베라는 남자의 캐릭터가 여실히 드러난다. 아이패드를 보여주는 매장 직원에게 키보드는 어디 있냐며 성질을 부리고, 습관적으로 윽박을 질러 상대를 질려 버리게 만드는 59세의 중년 남자.
서점 매대에 서서 이 소설의 첫 장을 읽었을 때, 별로 구미가 당기지는 않았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남자 주인공처럼 괴팍하고 자기중심적인 남자가 주인공인가 보지? 그러다 소설의 말미쯤 깨달음을 얻어 착하게 살게 되었다, 대충 뭐 그런 스토리로 진행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지만 2번째 장을 읽고 연달아 3번째 장을 읽고 소설의 반 정도를 읽고 나서는, 소설이 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쉬워 책장을 닫았다. 아껴 읽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오며 들게(오베에게 스며들게)하는 방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처음엔 호기심 그다음엔 이해 그리고 연민, 책의 마지막장을 닫을 때는 그가 사실은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는지를 깨닫게 하니까.
오베는 어릴 때 어머니를 폐질환으로 여의고, 철도회사의 직원으로 일하는-때때로 지나치게 친절하다는 평가를 받는-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오베가 열여섯이 되던 해, 그의 아버지마저 선로를 질주하는 객차에 치여 죽고 만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오베는 14일 치가 더 지불된 아버지의 월급을 가지고 철도회사 경리부에 찾아간다. 아버지가 16일에 죽었으니 14일 치 임금은 반환하는 것이 맞지 않냐면서. 회사 임원은 이 소년에게 월급을 다시 가져가라는 말이 통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대신 오베에게 함께 일하는 것을 제안한다. 그날 이후, 오베는 학교에 가는 대신 철도회사로 출근하게 된다.
아버지마저 사고로 잃고 세상에 혼자 남겨진 소년이 초과 지불된 아버지의 월급을 들고 회사를 찾아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작고 어린 몸, 그렇지만 누구보다 단단했을 소년의 표정. 평생 정직한 삶을 살았던 아버지의 신념을 지켜주고 싶었던 열여섯 소년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고작 열여섯에 학교 대신 철도회사를 다니며 모든 걸 오롯이 혼자 책임지게 된 소년의 삶이 어땠을지 짐작이 되지 않는가?
객차에 떨어진 승객의 돈을 훔치고 오베에게 뒤집어 씌우는 파렴치한 동료와 부모님의 집이 개발경로에 위치해 있으니 집을 팔아야 한다는 시의회의 편지, 보험회사 직원이라며 1년 치 보험료를 떼어먹은 사기꾼, 옆집에 불이 나 집안에 있던 아이를 구하느라 오베의 집에 불이 옮겨 붙는 것을 그저 바라봐야만 하는 상황 등, 현실의 문제들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오베를 덮친다. 분노와 무력감이 함께 찾아와 오베를 괴롭혔지만, 오베는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원칙을 지키고 자신만의 삶의 방법을 고수하며 삶의 돌파구를 찾는다.
그렇게 모든 것이 흑백과도 같았던 어두운 현실 속에서 오베는 세상을 컬러로 바꿔놓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친구들의 만류에도 오베의 진가를 알아주는, 세상을 빛과 컬러로 물들이는 사람이었다. 온 힘을 다해 홀로 세상을 버텨내고 있던 오베에게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생긴 것이다.
그랬으면 정말 좋았겠지만, 행복한 순간도 잠시 불운의 사고가 두사람을 덮친다. 사고로 아내 소냐는 두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된다. 두 다리를 잃고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영감을 주는 존재로 살아가던 소냐는 결국 오베의 곁을 떠나게 된다.
자, 이제 이 남자가 왜 이토록 죽고 싶어 안달이 났는지 이해가 된다. 컬러로 변해버린 세상이 다시 흑백으로 돌아간다면, 유일하게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한 사람을 잃게 된다면, 다시 그 사람 곁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결국, 오베가 자살에 성공했냐고? 그 뒷이야기가 궁금한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겠다. 오베의 자살을 번번히 실패하게 만든 이웃의 정체도 알게 될 터이니. 왜 이제야 이 소설을 읽은 거지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물 흐르듯 술술 읽히는 문장과 ‘피식’ 웃음이 터지는 작가의 재치가 곳곳에 녹아있는 소설이다.
작가 ‘프레드릭 베크만’이 블로그에 올린 ‘오베’라는 캐릭터에서 시작된 소설 ‘오베라는 남자’. 왜 많은 독자들이 ‘오베’라는 캐릭터에 반해 소설을 써달라고 했는지 깊이 공감하시게 될 것이다.
(+덧: 전 세계 280만 부 이상 판매되는 기록을 세움. 2016년 동명의 제목으로 영화화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