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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쎄스글이다 Dec 31. 2022

"HAPPY BIRTHDAY!"

엄마가 되고 보내는 생일


"와, 억울하겠다. 태어나자마자 두 살 된거네?"

"와, 네 생일은 절대 안까먹겠다."

생일이 언제냐는 물음에 대답하면 돌아오는 소리. 참 창의성 없다들.

오늘.

내 생일.

new year's eve.

특별한 날.

그렇게 특별하디 특별한 날에 내가 태어났다고 한다.


 12월 25일이 예정일이었던 나는 첫 아기였고, 예정일보다 늦게 세상에 나왔다.

다행인 건 아침 9시 40분에 태어났다는 것이다.

만약 아침 9시 40분이 아니라 밤 9시 40분이었다면 억울 꽤나 했을 것 같다. 태어난 지 2시간 20분만에 두 살이 됐을테니 말이다.


생일에 받는 연락들이 싫었다. 언젠가부터 유행이 되어버려 생일 자정이 되자마자 앞다퉈 보내주는 축하 메시지들에 피로감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20대 초반까지도 생일에는 휴대폰을 꺼둔 채 보냈다. 왜냐. 

"생일 축하해!"

"고마워, 한 해 잘 마무리 하고, 새해 복 많이 받아."

이런 식의 답장을 꼭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내 생일인데 다른 사람들의 한 해 마무리 소회를 듣고, 새해 소망이 이루어지길 바라야했다.

난 내 생일을 좋아했지만, 축하는 받기 싫었다. 아니, 내 생일에 딸려오는 새해 인사가 더 싫었다. 내 생일이 꼭 1월 1일이라는 주인공의 들러리인 듯 느껴졌다. 그 때부터 생일 축하는 받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대신 늘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10대에는 편지로, 20대에는 메시지로, 30대에는 전화로.

(40대에는 봉투로 해야겠다.)

화목한 가정은 아니었지만 유복한 환경에서 나고 자라게 해주셨다. 나의 엄마 아빠여서 그리고 동생들을 낳아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효심이 깊은 전형은 아니지만 간지러운 표현은 잘 하는 편이다.  결혼 후 남편 생일엔 시부모님께도 꼭 감사 전화를 드린다. 내가 생각하는 생일은 부모님께 마음을 전하기 좋은 날인 듯 하다.

 

내 생일이면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전한다.


 감사하게도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누군들 안 그렇겠냐만은 유별나긴 하다. 장녀인 엄마에게서 태어난 덕분에 외가에서 난 첫 손주였고, 하필이면 예뻤다(고 한다.). 그러니 내가 받은 사랑은 얼만큼을 상상해도 그 이상이다. 지금도 우리 할머니, 이모들은 첫 손녀, 첫 조카인 그 시절의 내 얘기를 하실때면  입이 쉬질 않고, 눈빛이 반짝거리신다. 

"야야~~말도 못 해, 너 그 때 우리가 어쨌는 줄 알어?(우리 엄마를 보며) 그치, 언니?"

이렇게 또 한바탕 재미있는 얘기가 시작이 되는데 난 내 어린 시절 얘기를 들으면 너무 신이 난다.

36년 전 오늘 내가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들.


 엄마가 나를 낳으신 지 36년만에 내가 아기를 낳았다. 아기를 낳던 날의 내가 어땠었는지 한참이나 떠올려보았다.

그러자 그 때의 내 모습에 엄마가 겹쳐졌다.

아기를 낳던 날도 그렇지 않았다. 아기를 낳고 나서 어제까지도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엄마가 된 후 처음 맞는 내 생일에 유난히 엄마 생각이 많이 난다.


 내 생일 아침, 늘 엄마는 분주했다.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삼색 나물과 촛불 켠 케이크를 상에 올리고 현관문을 열어두셨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러셨다. 그 땐 그게 그렇게 힘든 줄 몰랐다. 너무도 당연한 엄마의 모습이었다. 내 아기가 태어나고 백일이 되던 날에 삼신상이라는 것을 차리며 엄마는 일 년에 네 번이나 되는 이 고단한 일을 몇십년동안 어찌 하셨을까 생각해본 적은 있다. 

 그런데 엄마 생일 아침의 주방은 늘 고요했다. 지금 와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단 한번도 엄마를 위해 미역국을 끓일 생각은 해보지않았다. 미역국은 엄마가 끓여야 맛있으니 그랬던걸까.


결혼 후, 첫 내 생일에 온 식구가 모여 룸이 있는 식당에서 조촐하게 파티를 했었다.

그날 그 식당에서는 생일자의 엄마를 위한 밥상을 내주셨는데, 그 밥상을 받고는 쑥스러운 듯 해맑게 웃는 엄마를 보며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남이 끓여준 미역국이라 미안하기도 하고, 늙어가는 엄마를 보며 세월이 야속하기도 했다. 그때 엄마가 지은 표정이 내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잊히지 않는다. 


 내 생일은 아주 좋은 명분을 동반한다.

모두에게 특별한 날이니 차가 막혀서, 기차 좌석이 없어서 엄마에게 갈 수 없다고 핑계대기 딱 좋은.

꼭 이번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늘 미뤄왔다. 올해 오늘도 마찬가지다. 나쁜 딸.


오늘 아침 내 아기가 일어나 나를 빤히 쳐다보길래, 엄마 생일이니 축하해달라고 말해보았다.

돌아오는 건 뽀뽀. 그것도 두 번이나. 고작 10개월을 살아온 아기에게 여러 순간 심쿵하는 엄마다.

아기와 무엇을 하며 보내야 의미 있는 첫 생일이 될까 고민하고있다.

날 낳은 우리 엄마는 오늘을 어떻게 보내시려나.

처음으로 엄마의 오늘이 궁금해지는 생일이다.




나를 지켜주는 엄마


엄마와 나











 









ㅣ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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