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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규 Jun 01. 2023

김사부, 진짜로 있습니다_지역 공공병원

[초보 의사의 대학병원 스케치]

'매일매일 '왜 사는 거냐'라는 질문을 포기하지 마라.

그 질문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의 낭만도 끝이 나는 거다.'


    최근 한창 인기 몰이를 하고 있는 메디컬 드라마 '낭만 닥터 김사부'에서 김사부가 했던 대사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환자의 생명만을 최우선으로 하는 '낭만'을 잃지 않는 이상적인 의사에게 환자 뿐 아니라 동료 의료진들도 그를 존경하고 의지하는 모습이 그려지곤 한다. 동시에 현실의 열악한 의료 현실과는 동떨어진 드라마 설정에 많은 현직 의사들이 쓴웃음을 짓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 실제 '낭만 닥터'와 '돌담병원'은 존재했다. 수도권 그 어느 곳 보다 낙후된 지방의 지역 공공 병원 응급실에서 요단강 건너가는 환자들을 붙잡아 건져올리는 현실판 '김사부'를 만날 수 있었다.


    70대 할아버지가 경운기 운전 중에 도랑에 빠지면서 머리, 오른쪽 어깨, 손, 다리, 가슴부분을 다쳐서 응급실에 왔다. X-ray 검사 결과, 다른 부분에는 큰 이상이 없었지만, 오른쪽 갈비뼈 2번 부터 7번이 모두 부러져있었다. 물론 환자가 오른쪽 가슴부분을 아파하고 있기에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결과 였지만, 갑자기 숨쉬기 힘들어 하는 것이다. 이에 응급실 과장님은 CT 를 찍어보자고 했고, 아니나 다를까 골절된 갈비뼈가 폐 내부로 파고 들어가 폐 내부에 피가 고여있었다. 고인 피로 인해 숨 주머니가 작아진 환자는 계속해서 숨쉬기 힘들어하고 있었고, 이대로 두면 생명도 위험한 상황. 당시 주말인데다 지방인지라 상주하고 있는 흉부외과 전문의도 많지 않아 바로 처치가 어려워 다른 병원으로 보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폐에 피가 들어찬 환자를 위한 응급처치는 흉관을 꽂아서 물리적으로 피를 빼내는 것이다.

    그 때 , 들려오는 '관 꼽읍시다'라는 응급실 과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비록 처치하기 부담스러운 응급 환자이고, 의료 환경이 열악한 지방 의료원이지만, 환자에 대한 '낭만'이 불어오는 듯했다. 과장님은 김사부 드라마처럼 환자 베드 옆의 커튼을 치고 의료용 칼로 갈비뼈 사이에 절개선을 넣고 손가락을 넣어 부러진 갈비뼈 위치를 찾아보시고는 '찾았다!'라는 말과 함께 베드 옆으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뿜어져 나오는 피를 막으며 두꺼운 흉관을 집어 넣으시고 바깥으로 잘 배출되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셨다. 숨막히는 처치 상황 속에서 나는 그저 인턴의 위치에서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고 환자 정보에 대한 차팅을 했을 뿐이었지만, 그 장면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비록 드라마에서 처럼 훨씬 고난이도의 어려운 수술과 극단적인 상황을 헤쳐나가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누구라도 두렵거나 당황할 수 있는 상황에서 침착하게  마땅하게 해야할 처치를 해내시는 모습이 현실적인, '낭만'이라고 느껴졌다.


    부끄럽지만, 나도 내 자리에서 작은(?!) '낭만'을 경험했다.  밤 10시쯤 중년의 러시아 아저씨가 혈변을 누었다며 놀라서 응급실로 왔다. 환자에 맞는 검사와 평가를 마치고 헤모글로빈 수치가 현저하게 떨어진 상황이라 수혈 치료가 급선무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환자는 한국어도 영어도 못하고 아무도 이해못하는 오직 러시아어로 자신이 답답하다며 수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수혈을 받지 않으면 위급한 상황이라 꼭 수혈 처치가 필요했고, 나와 담당 간호사는 열심히 구글 번역을 켜서 러시아어로 소통했다. 겨우 겨우 설득해서 수혈을 한 번 받게 연결하였으나 이어서 수차례의 수혈팩을 연결해야했다. 그 때마다 환자는 싫다고 거부했고, 그 때까지도 전혀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빨리 수혈을 연결하고 다른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잠시 멈추고 환자가 어디가 불편한지 지켜보니 다리를 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알고보니 사실 환자는 소변을 보지 못해 답답해서 수혈이든 뭐든 거부하고 오줌이 안나와서 힘들다고 했던 것이었다. 얼른 소변줄을 가져와서 방광 속에 있는 소변 약 1L를 손으로 꾹꾹 모두 짜내어 배출시켜 주었다. 그제서야 환자는 부처를 닮은 듯한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처음으로 한국어를 수차례 내뱉었다. '감사해요우 감사해요우 하아...' 러시아인의 따봉을 뒤로 한채 돌아가는 나에게 간호사 선생님께서 '선생님이 환자 살리셨네요' 말씀해주시는데 이런 것도 작은 '낭만'이 아닐까하며 귀여운 합리화를 해봤다.  



오늘의 이야기 세 줄 감사

1. 비록 불완전한 한국 의료 현실 일지라도 '낭만'이 살아 있어서 감사

2. 수련 과정 중 귀한 경험을 통해 진실되게 환자를 위하는 의료진들을 볼 수 있어서 감사

3.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는 과장님들 덕분에 임상현장에서 많은 지식과 술기와 경험을 배울 수 있어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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